예정된 연설 취소 등 일련의 정부행사서 배제되는 모습 뚜렷 대표적 중국통 불구, 노 대통령 방중 수행단서 이름 빠지기도 손길승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최근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 청와대 사퇴압력설로 다시 한번 곤욕을 겪고 있다. 이러한 소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13일 손 회장이 분식회계와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으면서부터다. 이후 일련의 정부 행사에서 손 회장이 배제되는 듯한 모습이 일부 나타났고 이에 재계 일부에서 손 회장 거취와 관련해 청와대 압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문이 일부 언론을 통해 거론되자 청와대와 전경련은 서둘러 ‘사실무근’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등 이의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그 파장은 아직까지 쉽사리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손 회장이 청와대 퇴진압력설과 관련, 그룹 내 행사에 참석해 “전경련 회장직에 미련이 없다”고 입장을 밝히는 등 압력설은 현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문의 발단은 청와대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된 손 회장을 재계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며 퇴진을 요구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지난달 30일 정부가 주최하고 전경련에서 후원한 행사에서 대표 연설이 예정됐던 손 회장이 돌연 일정상의 이유로 조석래 효성 회장이 연설을 대신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 소문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참여정부의 경제비전에 대한 국제회의’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손 회장은 관례상 전경련 회장으로 재계를 대표해 연설할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손 회장이 일정상의 이유로 기조연설을 할 수 있는 사정이 못돼 조 회장에게 대신해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해명했지만 그동안 손 회장이 전경련 행사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인 만큼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오히려 분식회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손 회장이 정·관·재계 인사들 앞에서 기업투명성 등과 관련해 역설한다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청와대측에서 이를 만류했다는 얘기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더해 7일 떠난 노 대통령의 중국방문 수행단 명단에 ‘중국통’으로 알려진 손 회장의 이름이 빠지면서 손 회장과 청와대의 ‘이상기류’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청와대측에서 30대 그룹 위주로 하지 말라고 지시해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청와대는 “청와대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 이와 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도 이번 방중 수행단에서 빠졌는데 유독 손 회장 참석여부만을 놓고 사퇴압력설을 운운하는 것은 억지 추측에 불과하다”며 “손 회장은 원래부터 이번 노 대통령의 방중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중국방문은 원래부터 최고경영자(CEO) 중심으로 가기로 원칙을 세웠다”며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노 대통령의 현지공장 방문이 잡히면서 수행단에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 회장은 그동안 노무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동북아 경제협력체제’를 주장해왔고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군사위 주석을 만나는 등 경제계 인사 가운데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알려져 있어 이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과 청와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해도 대표적 ‘중국통’으로 알려진 손 회장이 이번 방중 수행단에서 제외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최근 일련의 상황을 감안할 때 청와대가 손 회장의 거취문제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손 회장의 ‘자격’을 문제삼음으로써 손 회장의 대외활동을 어느 정도 제약,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손 회장은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본사에서 열린 SK구조조정본부 해단식에 참석, “전경련 회장직에 미련이 없다”며 사퇴압력설과 관련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손 회장은 “다만 전경련 회장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는 데다 회원사에서 뽑아준 자리인 만큼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혀 이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일련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은 손 회장의 사법처리가 확정될 때까지는 손 회장 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손 회장의 청와대 사퇴압력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임의단체인 전경련 회장의 거취에 대해 정부에서 간여할 수 없는데다 아직 그런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 일부에서는 손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 지속여부에 대해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대안도 없이 퇴진할 경우 재계 대표로서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일부 비판이 일 수도 있고, 반면 전경련 회장으로 윤리경영과 투명경영을 진두지휘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따를 것이라는 시각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이와 함께 정부가 손 회장을 재계의 대화파트너로 삼는데 대해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고 있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경련과 청와대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근 손 회장이 노 대통령의 방중 수행단에서 제외되고 전경련 후원 행사에서 재계대표 연설을 거부당하는 등 일련의 일들에 정부의 의중이 어느 정도 반영됐을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특별한 대안이 없는 이상 전경련이 당분간 손 회장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로서는 손 회장이 회장직을 포기하기도, 그렇다고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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