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액 9천억 현금반환” 해외채권단 요구가 돌발변수로 작용국내채권단 “끌려가지 않겠다” 단호히 거절 법정관리 최후통첩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했던가. SK글로벌의 국내·외 채권단과 SK(주) 등 관계사간 신경전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 각자는 시한폭탄과 같은 SK글로벌을 붙잡고 금융 대출 채권 또는 매출 채권 등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도의 심리전을 펴고 있다. SK글로벌 사태 발발 초기부터 칼자루를 쥐고 있던 국내 채권단은 해외채권단과 채권 동결 협상이 틀어지자 SK글로벌의 법정관리를 추진 중이다. 내 손해는 감수하면서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 없다는 심산이다.

‘풍전등화’에 몰린 SK그룹은 어떻게 될 것인가.SK글로벌 채권단은 얼마 전까지 SK(주)의 출자전환안을 기본으로 워크아웃을 기정사실화 했다. 워크아웃은 채권단과 주주가 협력해 부실기업을 살려내고 채권단은 밀린 채권을 회수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이때 채권단은 채권 기관 각각의 채권을 일정 기간 동안 묶어두는 약정을 체결한다. 채권단 입장에서 워크아웃은 모든 채무를 동결시키고 법정관리인이 경영을 하는 법정관리보다는 유리한 채무자 회생 수단이다. 무엇보다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먼저 고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하거나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남기 때문.

워크아웃에서 법정관리행 급선회

이것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 앞에서 무엇이 유리한지를 저울질해야 하는 채권단의 가장 일반적인 이해타산이지만 SK글로벌의 경우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SK글로벌에 1조3,600억원대 매출채권을 쥐고 있는 SK(주)와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SK(주)는 매출채권 말고도 SK글로벌에 대해 38.6% 지분을 쥐고 있는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또 영업에 있어서는 전국 3,700여 SK 주유소 가운데 3,200여곳이 SK글로벌 소유여서 양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 있다.당초 SK글로벌이 워크아웃으로 방향을 잡게 된 데는 SK(주) 전체 매출채권 가운데 8,500억원에 대한 출자전환 결정이 큰 역할을 했다. 매출채권이 자본으로 전환돼야 부채를 낮출 수 있고, 부채를 낮춰야 하루라도 빨리 워크아웃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채권단이 SK(주)에 압력과 회유를 번갈아 넣은 결과였다.출자전환안이 이사회를 통과하는 때를 전후해 SK(주)의 노조와 소버린, 헤르메스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안(案)은 그대로 시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해외채권단이 결국 장애 요인이 되기 시작했다. 해외채권단이 전체 채권액 9,200억원 모두 현금으로 돌려 받겠다고 버티자 국내채권단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법정관리. 해외채권단에 보내는 최후 통첩인 셈이다.

빚쟁이끼리 이전투구

채권단은 법정관리에는 회생형 법정관리와 청산형 법정관리 등 두 가지 형태를 제시했다. 회생형은 법정관리인이 경영을 하되 워크아웃 형태에 가깝다. 반대로 청산형은 궁극적으로 기업을 청산해 거기서 나온 돈을 각각 나눠 갖는 형태다.회생형 법정관리는 법원에 의해 채권이 묶이기 때문에 국내 채권단이나 해외 채권단 모두 손해다. 그러나 과거 대우사태에서 보여지듯 해외채권단에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게 국내 채권단의 심산이다.국내 채권단과 해외 채권단의 기싸움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발발 초기부터 충분히 예상에 넣었던 부분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 사이에 도미노 부실이 발생하며 국내외 채권단 사이에 공평한 손실 부담이 줄곧 논란이 되어왔다.SK글로벌의 처리는 ‘해외 채권단은 별 손실을 입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관행을 뒤집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해외 채권단에 맞서 과감히 법정관리 선전포고를 하는가 하면 개별 기관을 상대로 회유에 나서는 각개 격파 작전을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국내 채권단은 상당수 해외 채권단이 그들의 대표격인 스탠더드 차타드 은행을 불신하고 있다고 판단, 해외 채권 금융 기관을 상대로 회유에 나섰다. 법정관리와 워크아웃 중 과연 무엇이 실익이 있는가를 선택하게끔 하면서 채권을 현금으로 매입하는 CBO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채권단이 제시한 CBO 프로그램은 개별 해외 채권 기관에 평균 회수율 48%를 제시하고 그들에게 응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근 전략이다. 반면 이를 거부할 경우 사전정리계획에 따라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고 해외채권단은 21% 회수율만 보장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채찍 전략인 셈이다. 과거 생떼나 버티기 작전으로 손해를 최소화했던 해외 채권단은 사뭇 다른 풍경에 당혹해하고 있다.

공은 다시 SK에

SK글로벌 해법에 관한 나머지 열쇠를 쥐고 있는 SK(주) 등 계열사들의 판단도 중요한 문제다. SK(주)는 얼마전까지 워크아웃에 따라 채권단 공동 관리 형태로 나간다는 전제 아래 진통 끝에 출자전환에 관한 이사회 결의를 마친 바 있다. 그러나 법정관리 문제에 와서 SK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채권단은 SK글로벌 처리에 대해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 ▲계열사의 협력을 전제로 한 법정관리 ▲계열사의 협조가 없는 법정관리 ▲청산 등 네 가지 방법을 놓고 숙고 중이다. 네 가지 방법 중 뒤로 갈수록 SK나 채권단 모두에게 나쁜 것이다.SK글로벌 처리는 해를 넘길 가능성이 점차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SK나 채권단 모두 이제 더 이상 돌출 변수들이 없다고 믿고 있으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버린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SK(주) 노조도 여차하면 들고 일어설 태세다. 채권단 등 세력과 함께 외국인 대주주까지 가세한 형국에서 SK사태의 확고부동한 해법은 ‘조만간’나올성 싶지 않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