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부동산투자·뉴질랜드 서 유통업으로 떼돈벌어소버린 펀드의 대주주 챈들러 형제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인물들이다. 역외펀드의 특성상 자금이나 자금의 정체 등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대주주와 그의 정체 역시 불가사의하기 마련이다.이런 점에서 챈들러 형제는 오히려 많은 부분이 노출됐다. 챈들러 형제에 관해 국내에 알려진 바로는 뉴질랜드 태생이며 이름은 리처드와 크리스토퍼이다. 45세와 42세이며 소버린이 근거를 둔 모나코에서 매년 각국 증권사 인사를 초청해 테니스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챈들러 형제는 5∼6명의 펀드매니저를 두고 있다. 제임스 피터 최고경영책임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의 출생이나 자금 운용형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규명이 된 상태지만 그들의 자금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SK(주)에 150만달러를 투자하는 등 도박과 같은 투자를 할 정도면 어지간한 자금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일요서울>은 그들의 자금에 관한 정체를 취재하던 중 그들의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챈들러 형제의 아버지가 과거 홍콩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정준 전무가 챈들러 형제를 접촉하기 위해 모나코를 방문했을 때 이에 동승한 일행으로부터 이 말을 전해들었다고 했다.챈들러 형제의 아버지 이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그는 과거 홍콩에서 양복점을 경영했다.

그의 양복 제단 솜씨는 홍콩에서 매우 유명한 수준이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홍콩 유명 인사들 상당수가 그가 지은 양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그러면서 챈들러씨는 홍콩 내 경제나 정치, 사회적인 고급 정보를 상당량 축적했다. 챈들러씨가 거물급 사교계 인사로 발돋움한 것은 물론이다.저명 인사들과의 친분으로 축적된 정보로 챈들러씨는 재테크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챈들러씨가 주로 사용한 기법은 부동산 투자라고 한다.단숨에 홍콩 사교계 인사들로부터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쥔 ‘황금의 사나이’로 불리던 챈들러씨는 그 다음부터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어느 날 홍콩을 떠나버린 것. 챈들러씨의 갑작스런 증발은 저명 인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그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챈들러씨가 간 곳은 다름 아닌 뉴질랜드. 뉴질랜드에서 그는 유통업에 손을 뻗쳤고 여기에서 비로소 거부(巨富)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축적해놓은 부를 바탕으로 아들 챈들러 형제는 모나코에 펀드를 조성, 아버지와는 별개로 사업에 나섰다. 그들의 아버지가 부동산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재테크의 귀재였다면 챈들러 형제는 보다 앞선 금융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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