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수화설비공사 입찰 경합과정서 서로 상대방 로비 의혹 제기쿠웨이트 행정법원에 소송 … “3년전 빅딜 후유증 나타난 것”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이 과거 DJ정권 시절 ‘빅딜’ 정책에 쌓인 앙금을 결국 쿠웨이트에서 폭발시켰다. 현대중공업와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쿠웨이트의 한 국영기업이 발주한 담수화설비 공사 입찰 과정에서 경합을 벌이다 못해 소송전으로 치달았다. 두 회사의 대립은 현대중공업이 산업자원부에 조정명령을 요청한 것을 계기로 더욱 격해지고 있다.현대나 두산은 각자 상대에 대해 “입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발주처에 로비를 했다는 ‘심증’이 있다”며 비방전을 펴고 있다. 이들은 의혹 제기를 위한 정식 문건이나 정황 등 증거가 될만한 자료가 없어 이를 자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쿠웨이트 현지 사정이 급변함에 따라 시작만 되면 의혹 제기 등 비방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사비야(Sabiya) 프로젝트’. 현대와 두산이 입찰에 참여한 공사의 이름이다.99년 쿠웨이트 정부는 국영기업인 쿠웨이트 수전력청(MEW)을 시행청으로 하는 담수화설비 입찰고시를 냈다. 그해 9월 현대와 두산 등은 입찰에 기본 요건을 심사하는 데 필요한 입찰자격심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입찰전이 시작됐다. 담수화설비란 바닷물을 원료로 공업용수 또는 식수 등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제반 설비를 말한다. MEW는 3년여에 걸쳐 자격 심사를 한 결과 지난해 6월 현대, 두산, Italim pianti(이탈리아), Hitachi Zosen(일본) 등 4개사에 참가 자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들 4개사는 입찰에 참여한 결과 현대에 이어 두산, Italim pianti 순으로 순위가 결정됐다.그런데 8월이 되자 MEW가 중앙입찰위원회(CTC)에 발주처를 두산으로 승인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며 현대와 두산의 공방이 시작됐다.

먼저 문제제기를 한 쪽은 현대였다. 현대는 “입찰가 3억4,200만달러로 두산 3억6,000만달러보다 낮았음에도 두산에 밀린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CTC에 재심을 요구했다. CTC는 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MEW에 해명을 지시했고 MEW는 현대를 불러 탈락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중동의 유력 언론 ‘MEED’지(紙)는 2002년 8월30일자 신문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MEW가 현대를 불러 설명회를 개최한 자리에서) MEW는 가격에서 비록 현대가 Lowest지만(최저입찰가를 제시했지만) 현대의 서류적, 기술적 결함을 이유로 두산을 선두후보 계약사로 추천했다고 해명했다’.CTC는 현대의 기술력을 문제삼은 MEW의 주장을 받아들여 쿠웨이트 기술자협회(KSE)에 이 부분에 대한 평가를 의뢰했다. 그러자 KSE가 현대의 기술적 결격사유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CTC에 제출하자 분위기는 현대쪽으로 역전됐다.

기술력 결격 문제가 해결되자 CTC는 같은 해 11월 MEW의 요청을 기각하고 현대중공업으로 발주를 결정했다.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진 두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올해 4월 쿠웨이트 현지의 법적 대리인을 통해 쿠웨이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쿠웨이트 감사원(AB)에 감사를 요청했다. 발주처의 공식적인 절차상으로는 현대의 낙찰로 결론이 난 상태지만 AB가 아직 감사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AB가 CTC의 결과를 뒤집는 결론을 내릴 경우 입찰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진흙탕 싸움’으로 보도되기도 한 현대와 두산의 싸움은 현대가 산업자원부에 조정신청을 내며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현대와 두산이 이토록 감정 싸움이 치열한 이유는 지난 DJ정권 시절 빅딜정책의 후유증 때문이다. 98년 9월 DJ정부는 발전설비 일원화를 위한 발전설비 빅딜에서 국내 발전설비 시설과 사업권 일체를 두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중공업에 일원화시켰다.2000년 두산이 공룡 공기업이었던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며 두산은 빅딜 효과를 그대로 누리기 시작했다.

발전설비에 관해서는 전권이 두산에 있어 해외 공사 입찰에도 참여하지 못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부터 빅딜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빅딜 백지화를 주장하기 시작했다.현대중공업은 빅딜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며 불만이 많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자동차나 중공업을 모두 아우르는 옛 ‘현대그룹’일 당시 발전설비를 내주고 반도체를 받아낸 빅딜은 지금에 와서는 무용(無用)에 가깝다는 것. 현대중공업은 밥그릇만 내줬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두산중공업은 “재계가 모두 인정하고 정책적으로 추진됐던 빅딜을 이제 와서 부정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분이 있는 국내외 발전설비 입찰 물량을 현대중공업 등에 내주지 않는 것도 빅딜 결과에 따르는 권리를 행사하는 차원이라는 것. 입찰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면 빅딜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논리다.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과 두산중공업은 세계적으로 규모와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대립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 세계 각지에서 크고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정부 차원에서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담수화설비, 남의 얘기 아니다

쿠웨이트의 담수화설비가 향후 10년 안에 우리나라에도 들어설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유엔이 발표한 ‘세계 수자원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사용 가능 수자원량(1,491㎥)은 세계 꼴찌 수준(146등)이다. 말 그대로 ‘물 부족 국가’다.건설교통부는 우리나라가 2006년부터 한 해 동안 4억㎥, 2011년부터는 20억㎥의 물이 모자랄 것으로 예상했다.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물을 수입해서 먹거나 쿠웨이트처럼 대규모 담수화설비를 대도시마다 하나씩은 지어야 할 상황이 도래한다.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현재 쿠웨이트 담수화설비는 1일 220만명분의 생활용수를 생산해내는 규모다.현재 우리나라는 일부 섬마을 등 수도가 공급되지 않는 오지에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 시설 등은 있지만 본격적인 담수화시설은 갖춰지지 않았다. 그러나 향후 10년 안에 이러한 대규모 시설을 곳곳에서 볼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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