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인식이 현지를 방문하면서 크게 달라져 주목되고 있다. 그에게는 그동안 ‘반미주의자’, ‘미국 혐오자’, ‘중립주의자’ 등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는 5월 중순 미국을 방문하면서 ‘찬미주의자’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그는 “제가 미국에 올 때 머리로 호감을 가졌으나 와서 이틀이 지나면서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노대통령은 미국이 “1776년 버지니아선언, 남북전쟁, 2차대전 등에서 자유인권 국민통합 등 보편적인 가치와 민주주의를 내걸고 승리했다”며 “미국은 대단히 부러운 나라이고 정말 좋은 나라”라고 격찬하였다.그밖에도 노대통령은 “53년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실상 6·25남침 때 미국의 희생적 도움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잔혹한 공산독재체제로 적화통일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자유체제에서처럼 공산독재 지배하에서도 노동 인권운동을 하였을 경우, 그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거나 독재자 김정일에 의해 처형당했을 지도 모른다.노대통령은 비로소 대한민국을 구해준 미국의 은혜에 따뜻한 감정을 잔잔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같다. 특히 노대통령은 한국의 “촛불시위에 참석한 젊은이들을 잘 이해한다”면서도 “그런 일로 미국을 비난해서 (재미동포) 여러분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돌아가서 각별히 설득하겠다”고 다짐까지 했다.노대통령의 미국에 대한 진솔한 소회 피력은 자신이 그동안 미국을 잘못보고 있었음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 아메리카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미국에 대한 노대통령의 인식변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번째이다.첫 번째는 그가 재야 노동운동 변호사 시절의 미군철수 주장을 수정한 변화가 그것이었다. 그는 재야 때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했었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제도권 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된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다.그는 ‘비주류의 자조적 냉소적’ 입지를 벗어나게 됨으로써 사물을 ‘사시’아닌 ‘정시’로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첫 번째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는 주한미군철수에서 지지자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두 번째 노대통령의 미국인식 변화는 대통령으로서 이번 방미 기간중의 아메리카 재발견이다. 그는 미국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미국이 ‘정말 좋은 나라’일 뿐 아니라 ‘대단히 부러운 나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이처럼 노대통령이 미국을 찬양하자 친북반미 세력은 열 받고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아양떠는 듯한 모습에 부끄럽고 속상하다”, “미국에 굽실거리지 않는 대통령이 되겠다던 기백은 다 어딜 갔냐”는 등 인터넷에 비아냥의 글을 올렸다. 심지어 전남 광주에서는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굴욕외교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노대통령의 5·18기념식 정문입장을 봉쇄하기까지 했다.노대통령의 방미외교는 ‘굴욕외교’가 아니고 ‘실용주의외교’였고 ‘반북탄핵외교’였으며 ‘자유체제 선양외교’였다.미국은 노대통령도 정중히 표현한대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고통스러운 전쟁에 수없이 뛰어든 나라이다. 미·스페인 전쟁, 세계 1,2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코소보전쟁, 걸프전쟁, 이라크 전쟁 등이 그것들이다. 미국은 귀중한 생명과 천문학적 재산을 희생시켰으면서도 승전후 지난날 일본이나 프랑스 또는 소련처럼 점령지를 대부분 자국지배로 강제 편입시키지 않았다.미국은 서부 개척시절에도 대부분의 영토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으로부터 강탈하지 않고 돈 주고 샀다. 이런 나라를 ‘민족 압살자’로 배척하고 독재자 김정일을 ‘통일 대통령’으로 옹호하란 말이냐고 묻고 싶다.노대통령이 미국을 뒤늦게나마 현지 방문을 통해 객관적으로 간파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차제에 반미친북세력에 대한 노대통령의 감싸기 인식에도 객관적인 재발견이 있기를 기대한다.■ 본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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