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눈물 흘리는 천안함 유족·생존 장병들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 1일 군 의문사를 조사하는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천안함 전사자 사망 원인 등에 대해 재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가 다음 날 긴급회의를 열고 각하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후 그해 5월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공식 발표를 하며 탑승했던 46명 장병은 ‘전사(戰死)’ 처리됐다. 46명 장병들의 사망 원인을 재조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사자 유족과 생존 장병 등은 법적 근거를 따져 물으며 항의 방문을 했다. 규명위의 신중치 못한 행동으로 천안함 유족 및 생존 장병들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은 셈이다. 

재조사 결정 다음 날 긴급회의 열려… 해당 진정인 자격 없다 ‘만장일치’
“좌초설 등 음모론 사건 당시 초동 조치 미흡… 교훈 삼아 바뀌어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1일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히게 된 건 천안함 사건 발생 직후부터 좌초설 등의 음모론을 꾸준히 제기해 온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이 낸 진정을 받아들이면서다. 규명위에 따르면 신 전 위원은 지난해 9월7일 천안함 장병의 사망 원인을 규명해 달라는 진정을 냈다. 진정 접수 기한 마감이 몰리기 직전에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규명위는 “기한 만료가 임박해 370여 건이 한꺼번에 접수됐고 이에 따라 일단 조사 개시 결정을 했다”며 “사전조사 결과 결격 사유가 없어 지난해 12월14일 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천안함 유족과 생존 장병들의 분노가 들끓는 등 정부를 향한 비난이 거세지자 규명위는 다음날 긴급회의를 열고 천안함 피격 사건 재조사 진정에 대해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진정인 적격 여부에 대한 위원회 회의 결과, 진정인이 천안함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들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인 ‘군 사망사고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7조(진정의 각하)’에 따르면 ‘천안함 유가족이거나 목격자거나 목격자로부터 사고를 전해 들은 사람’만 진정을 할 수 있다. 당시 조사단 위원으로 참여한 신 전 위원의 진정인 자격을 구분 짓는 명확한 법적 해석이 부족한 상황에서 진정이 받아들여져 재조사 논란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최원일 천안함 함장(예비역 대령)은 지난 1일 규명위를 방문해 ▲사건 진행 즉시 중지 ▲규명위 사과문 발표 ▲청와대 입장문 및 유가족·생존 장병에 대한 사과 등 세 가지 요구 사항을 규명위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 관계자는 지난 2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법령에 따르면 신 전 위원은 진정을 낼 자격이 없다”며 “직접적으로 목격자한테 듣고 직접 들은 걸 특정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진정이 가능한데 규명위에서조차 이 부분에 대한 법적 해석이 없어 진정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따져 보니 오류가 있었고 절차상 문제가 있어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 규명위 측에 전달했고 이후 긴급회의가 열려 (재조사 결정이) 각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원일 함장께서 청와대에 사과를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사과는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가 2010년 9월 발간한 천안함 피격 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해군 초계함 ‘천안함’은 그해 3월26일 서해 백령도 남방 해상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아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했다. 천안함 피격으로 배에 타고 있던 해군 장병 104명 가운데 46명이 숨지고, 수색 구조 과정에서 한주호 해군 준위도 순직했다.

‘천안함은 북한군 어뢰에 피격돼 침몰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신 전 위원은 대표로 재직하던 매체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관련 책을 발간하며 “천안함 침몰 원인이 조작됐다” 등의 허위 주장을 퍼뜨려 왔다. 이에 따라 2016년 2월 일부 게시물에 대해 유죄(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를 선고받았지만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선 무죄 판결이 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게시 글이 허위라는 점은 인정했으나 비방 목적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한 결과다.

앞서 규명위의 천안함 사건 재조사 결정이 났던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장은 SNS를 통해 “나라가 미쳤다. 46명의 사망 원인을 다시 밝힌단다”며 “유공자증 반납하고 패잔병으로 조용히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또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행동으로 옮길까 내 자신이 두렵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마친 후 천안함 46용사 추모비에 참배하고 있다. 2021.03.26.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마친 후 천안함 46용사 추모비에 참배하고 있다. 2021.03.26. [뉴시스]

- 11년 째 천안함 음모론 여전… 이유는?

피격 사건 직후부터 좌초설 등을 비롯한 천안함 관련 각종 음모론은 사건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29일 일요서울과 인터뷰를 진행한 전준영 전우회장은 “천안함 사건이 있던 당시 정부의 초동 조치가 미흡했던 부분이 많았다”며 “당시 시간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뀌며 신뢰가 떨어졌고 대통령이 말실수를 했던 부분, 전역한 재독들이 상황을 예단하고 인터뷰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점 등 잘못 나온 정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인식돼 지금까지 이 같은 음모론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제일 걱정인 건 앞으로 교육 받을 아이들”이라며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들을 아이들이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게 걱정돼 명확한 정보를 알리고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회장은 “우리 군이 천안함의 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며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대비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과 동일하게 교육 및 훈련을 한다면 제2, 제3의 사건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천안함 생존자 강대훈 예비역 하사는 “좌초설 등 음모론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믿고 싶은 신념대로 믿기 때문인 것 같다”며 “천안함을 정치적인 문제로만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치적 견해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들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그대로 전파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근 최원일 전 함장은 천안함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을 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최 전 함장은 SNS에 ‘악플러들에게’라는 제목을 글을 올려 “오늘도 천안함 기사에 악플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며 “현재 (천안함 폭침 사건의) 유가족들과 생존 장병들의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 시각부터 유가족, 생존 장병들이 직접 (악성 댓글을) 찾아 법적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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