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누가 뭐랬습니까? 왜 뭐가 제 발 저리듯이 그래요?”
이 이사의 말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좀 고정하시지요.”

추 경감이 둘 사이를 말렸다. 강 형사는 이 이사를 데리고 나갔다.
변 사장은 여전히 씨근대고 있었다. 좀 진정이 되기를 기다려 추 경감이 물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변 사장은 이 말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제는 해야겠군요.”
그러면서 변 사장은 몸을 돌려 책상 맨 하단 서랍에서 편지를 하나 꺼냈다.
“이걸 보시지요.”

추 경감은 편지를 받아 펼쳐 보았다.
“아니! 이게 뭡니까?”
“보시다시피 연애편지지요. 문제는 이이사가 묘숙이 한테 보냈다는 데 있지요!”
“허.”
추 경감이 혀를 찼다.
“이 편지를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묘숙이가 가져왔었어요. 기가 차다면서 어쩌면 좋겠느냐고 왔었지요. 그래서 아무 관심도 보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묘숙이가 편지는 버리라고 했는데 제가 무심히 갖고 있었지요. 장 이사가 죽기 전까지는 저는 묘숙이의 죽음을 그저 자살로 여겼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영 수상쩍은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이이사가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아니 이건 어폐가

있군요. 이 이사는 질투심 같은 걸 같진 않을 테니까. 그 뭐랄까, 패배감이라는 게 겠군요. 패배감에 사로잡혀서 장 이사와 묘숙이를 살해한 것 같아요.”
“하지만 배양실에 암살 장치를 꾸밀 수가 없을 텐데요.”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강 형사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 작업을 하면 꽤 시끄러운 소리가 날 것이고, 애당초 배양실에 숨어 들어가기란 불가능한 메커니즘을 유지하고 계시더군요. 아마도 죽은 장 이사님도 그 점 때문에 맘을 탁 놓고 계셨던 듯합니다.”

“하지만 그 주사기 설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거예요. 널빤지 하나만 벗겨 내면 되지 않아요. 연장만 있다면 혼자서도 가능할 것이고 배양실은 가장 구석에 있고 방음 장치도 되어 있으니까요.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작업은 그다지 어려울 게 없어요.”

“그럴 것 같군요. 참 변사장님, 배양실에는 별다른 손실은 없었나요?”
“예. 그곳에 있던 직원들이 급히 소독을 하고 마루를 다시 맞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커다란 손실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 그것 불행 중 다행이군요.”
변 사장은 말을 하며 시계를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무슨 약속이 있으십니까?”
“예. 12시에 1신문사 기자와 인터뷰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 때문이지요.”
“작품?”

강 형사가 반문했다.
“사과가 열리는 장미나무 말입니다.”
“그럼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군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추 경감은 그렇게 말하며 물러나왔다. 
“자네 조사한 것 어때?”
추 경감이 강 형사에게 물었다.

“최 주임이란 사람하고만 짜면 거기 들어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겠어요.”
“그래? 자재부에서 알아보니까 주사기 한두 개 빼돌리는 건 하등 문제가 안 되겠더군. 이제 차츰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것 같군. 그 최 주임이란 사람을 좀 만나 봐야겠군, 그래.”

“그리고 이 이사에게 물어 보았는데 김 박사는 캡슐을 나눌 때 항상 자신은 제일 늦게  갖는다고 하더군요. 그 점에서는 제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
“허, 그런 걸 소 뒷걸음질에 뭐 잡는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 경감님, 이러시깁니까?”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