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이게 웬 쓰레기 더미예요?”
강 형사가 비명을 질렀다. 거기에는 신문지 쓰레기, 그것도 휴지통에서 건진 듯한 꾸깃꾸깃하거나 더러운 물이 밴 신문지 더미가 있었다.
“용의자들 각 집에서 수거한 신문지 더미일세. 여기서 활자에 가위질을 한 것을 찾는 것이 자네가 할 일이네.”

추 경감은 난색인 강형사의 얼굴을 보더니 씩 웃으며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자네는 양호한 거야. 쓰레기 더미에서 신문지를 분류한 증거반원들 고생을 생각해 보게.”

“하지만, 경감님. 범인은 이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오래 전에 세웠음이 틀림없는데 이 쓰레기를 뒤진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강 형사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그건 그렇네만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잖은가? 그리고 각 동네 쓰레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치워 가게 되어 있더군. 그건 물론 동네마다 틀린데 우연히도 변사장과 이이사집은 모두 월요일과 목요일 새벽에 치워 가더구먼. 사건이 일어난 23일 수요일에 이 쓰레기들을 다 수거해 왔던 걸세. 또 그 이후 쓰레기도 포함이 되어 있지.”
추 경감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을 하더니 다시 이야기했다.

“물론 미스 구나 김박사의 경우는 아파트에 사는 까닭에 쓰레기를 수배할 수가 없었네. 음, 그리고 자네 의문 말인데......내 생각에는 이 사건이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다 해도 본격적인 살의를 띤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여겨져. 따라서 의혹의 성과가 있을는지도 모르네.”
“아니, 경감님, 본격적인 살의가 나타난 지 얼마 안 되었으리라는 건 무슨 근거로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응. 이건 정말 개인적인 추리에 불과한 것이라 말하기가 좀 뭐하군. 하지만 강형사가 그렇게 물어 보니 말해 보겠네.”
추 경감은 담뱃불을 붙여 물었다.
“지퍼라이터, 성능이 좋아졌습니다.”
강 형사가 놀리듯이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음...... 우선 강형사 자네, 김묘숙 박사 핸드백에서 나온 쪽지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기억나나?”
“반으로 접혀 있었지요. 띠처럼 생겨서 언뜻 눈에 안 띌 정도였어요.”
강 형사는 하찮은 질문에 의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랬어. 강형사, 이 쪽지 한번 접어 보겠나?”
추 경감은 꼭 그때처럼 생긴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강 사는 피식 웃으며 쪽지를 반으로 접었다.
“보게. 종이가 다시 약간 벌어지지?”
추 경감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예. 그렇군요. 그게 뭐 대단한 일입니까?”
“그럼, 이 종이를 보게. 내가 수첩 속에 일주일간 끼워 뒀던 종이일세.”
추 경감은 그러면서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강 형사에게 건네주었다.
“어라? 이거 복권이군요. 경감님도 이런 걸 사십니까?”
“강 형사, 종이나 살펴보게. 뭐 다른 점이 없나?”

“이건 벌어지지 않고 양면이 딱 들러붙어 있군요......아! 알겠습니다. 김 박사의 핸드백에서 나온 종이는 제가 지금 접은 종이처럼 들떠 있었어요. 경감님은 그 때문에 살의가 생긴 것은 얼마 안 되었던 것이라고 여기신 것이군요.”
추 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강 형사는 잠시 후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경감님, 범인이 종이를 접지 않고 갖고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 그렇다네. 그래서 내가 개인적인 추리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것 외에 이유는 또 있어.“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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