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모르네. 속단은 금물이야. 자네는 그 사람의 전력을 확실히 조사해 보도록 해. 난 최 주임을 만나 볼 테니까.”
“예. 알았습니다.”

강 형사는 경쾌하게 걸어 나갔다. 수사는 이제 종결단계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강 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추 경감의 미간에는 아직도 곤혹감이 서려 있었다.
“강 형사, 너무 좋아하지 말게.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이 많으니.”
추 경감은 나이와 비례하여 걸어야 한다는 듯이 무겁게 발을 끌며 배양실로 내려갔다.

“최 병탁 주임이십니까?”
“예.”
40대의 스마트한 얼굴의 사내가 대답했다.
“저, 시경의 추 경감입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는지요?”
“예, 그러시지요.”

추 경감이 워낙 무게 있게 말을 이끌자 최 주임은 불안하게 대답을 했다.
“긴장하지 마시고 밑의 지하다방으로 가시지요.”
최 주임은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뭐 바쁜 일이 있으신가요?”
“아니, 아닙니다.”
“그럼 가시지요.”

추 경감은 이미 그런 모습에서 하나의 확신을 얻었다. 이제 중인이 확보되면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아직도 찌뿌드드한 이 감정은 무얼까? 왜 아직도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는 것일까? 추 경감은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경감님! 이것 좀 보시지요.”
강 형사가 막 배달되어 온 석간신문을 들고 와 추 경감 앞에 보여 주었다.
“뭘 갖고 그래?”

시큰둥하게 신문을 받아 든 추 경감도 신문의 제목을 보자 눈이 휘둥그래졌다. 1면 톱으로 실린 기사는 무진의 신개발품에 관한 것이었다.
<유전공학의 신기원, 사과가 열리는 장미나무>라고 제목이 달린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2000년 이미 <배추당근>이라는 신제품을 내놓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주식회사 무진에서 이번에 다시 <사과가 열리는 장미나무>를 개발하여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뒤로는 까다로운 학술적 설명이 뒤를 잇고 있어서 추 경감은 하품을 하며 몇 줄씩 건너  뛰며 기사를 훑었다.

....더구나 이번의 쾌거는 그 동안 무진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한 연구팀의 의문의 죽음들을 극복한 장거라 더욱 깊은 뜻이 있다. 지난 23일 연구팀을 이끌던 김 묘숙 박사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본보 24일자), 뒤를 잇기라도 하듯이 25일은 장 주석 기술이사가 험 배양실에서 역시 의문의 살해를 당했다(본보 26일자). 그러나 이러한 연속된 역경에도 연구팀은 기술 한국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며 주식회사 무진의 대표이사 변 국보 사장을 중심으로 일어나 이번 신기원을 이룩해 내고 말았다.

신문에는 호박이 열리는 장미나무의 사진과 함께 변 사장의 사진도 실렸다.
“허허, 이거.....”
“경감님, 재밌지요?”

강 형사가 싱긋이 웃으며 추 경감의 어깨 너머로 기사를 보고 있었다.
“변 사장, 대단하지요? 이 마당에 기자들을 모아 놓고 턱 신개발이다 하고 발표를 하고 있으니......덕분에 이번 살인사건이 해결되면 회사에 더욱 악선전이 될 수도 있는데.

“흠, 그런가......”
사회면에도 변 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하. 변 사장, 되게 출세하고 싶었던 모양이군요.”
강 형사는 계속 헤죽헤죽 웃어댔다.

“자네, 오늘 되게 즐거운 모양인데 기분 망치게 해서 미안하네만 날 좀 쫓아와 보게.”
추 경감은 신문을 덮으며 일어났다. 무슨 궂은일을 시키려고 저러나 하며 강 형사는 추 경감을 쫓았다. 추 경감은 옆의 증거물실로 강 형사를 데려갔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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