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가 미처 권총을 뽑기 전에 서종서의 발이 번개처럼 올라가 백성규의 가슴을 쳤다.
“어이쿠!”
백성규가 뒤로 넘어지면서 소리쳤다. 그는 넘어지면서도 드럼통에 머리를 부딪혔다.
“쿵!”
백성규는 서종서가 다음 공격을 시도하기 전에 기절하고 말았다. 서종서는 이어 정채명을 향해 돌아섰다.
“이봐요, 서 차관!”

정채명이 뒷걸음을 치면서 말했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될 거 같아.”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당신 미쳤소?”
정채명은 현저하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원군을 찾아보려는 것 같았으나, 불행히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정상이야!”

서종서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정채명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진정하시오, 서 차관!”
뒷걸음을 치던 정채명은 등이 벽에 닿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결국 그는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그의 손에 공사장 인부가 남기고 간 곡괭이 자루가 잡혔다.

“에잇!”
정채명이 곡괭이 자루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던 서종서는 가볍게 몸을 피했다. 정채명은 곡괭이 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곡괭이는 날아가 백장군이 쓰러져 있는 곳의 옆 드럼통에 맞았다.
“텅!”

메마른 울음소리가 지하실 안에 가득 찼다. 그 바람에 정신을 잃었던 백성규가 정신을 차렸다.
“자, 이제 바른 대로 말하시지?”
서종서는 조은하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정채명을 죽이고 싶었다.
“뭘 말하라는 거야?”
정채명이 지지 않고 대들었다.

“모두 네가 꾸민 짓이지? 납치도, 살인도... 권력에 눈이 먼 네 놈 짓이...”
서종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서종서는 갑자기 정채명의 멱살을 놓고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정채명은 공포에서 깨어나 백성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아까의 곡괭이 자루가 들려져 있었다.
“총재님, 무사하십니까?”
백성규가 말했다.
“오, 백장군. 고맙소.”

정채명은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 놈을 어떻게 할까요?”
“우리의 정체를 알았으니 죽여야지.”
정채명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65. 교장의 변태적 사랑 

백성규가 곡괭이 자루를 들어올렸다.
“잠깐!”
갑자기 조준철이 뛰어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백성규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것이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조준철의 발길질이 빗나갔던 것이다.
“뭐야?”

정채명이 소리쳤다.
“어이쿠!”
백성규는 얼굴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순간 그의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 같은 놈은 죽어야 해.”
조준철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며 백성규의 옆구리에 쇠망치 같은 펀치를 먹였다.
“으윽!”

백성규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무지막지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이봐, 젊은 친구.”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준철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깜짝 놀랐다. 정채명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네라면 가만히 있겠네.”

서울 청담동 천사 유치원 담 옆의 청산 빌딩 지하에서 지옥의 격투가 벌어지고 있는 순간 나봉주는 경주로 내려갔다. 자기를 쫓아다니는 거미부대 요원들도 싫었지만 조은하의 살인범을 꼭 캐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몇 번 별다리를 드나드는 동안 봉주는 여자 특유의 육감으로 범인이 손에 잡힐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니 육감만이 아니었다. 봉주가 오랫동안 근무한 정보기관의 날카로운 감각 훈련이 그런 방향으로 인도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번 만나 안면이 있는 곽 경감의 옛날 동지인 하영구 경감을 찾아갔다.
“아저씨. 저 기억 나세요?”

봉주는 월성 경찰서 면회실에서 하경감과 마주 앉았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을 바라보는 하경감의 얼굴은 몹시 곤혹스러워 보였다. 하영구 경감은 곽영도 경감과 동갑이라고 했지만 곽 경감 보다는, 과장해서 10년은 더 젊은 것 같았다. 키가 작고 목이 짧으며 얼굴이 주름투성이 인데다 빈대떡처럼 둥글넓적해서 약간은 미련해 보이는 곽 경감과는 딴 판이었다.

하경감은 키도 크고 목이 길며 서글서글하게 시원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착하게 보이는 그의 얼굴 인상은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특징이 있었다.

“글쎄. 난 미인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서...”
하 경감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미안해했다.
“저, 전번에 서울 곽영도 경감과 같이 왔었지요. 조은하씨 동생인 조준철씨와...”
“아, 아 맞아.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형편없어서... 그때 미스 내라고 했던가...”

하경감이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가 아니고 나예죠.”
“맞아 나봉달씨.”
“호호호...봉달이 아니고 봉주예요.”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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