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경감과 조준철은 숨을 죽이고 캄캄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제일 밑에는 정채명 장관, 그 뒤는 서종서 차관, 그리고 그 뒤는
곽 경감과 조준철이 미행을 하는 꼴이 되었다.

캄캄한 지하 일층을 지나자 불빛이 계단으로 새 들어왔다. 지하 2층은 넓은 주차장인데 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었다. 텅 빈 넓은 주차장에는 구석구석에 자재 찌꺼기들이 쌓여 있고 가운데는 커다란 트럭과 지프차 한대가 서 있었다.
그 가운데로 정채명 장관이 내려섰다.

“아니, 저 사람은 무엇입니까?”
조준철이 곽 경감의 귀에 입을 바싹대고 물었다.
“저 사람은 내무 장관 정채명이란 사람임에 틀림없어.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곽 경감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미행하던 서종서 차관은 정채명이 눈치 채지 않게 주차장으로 재빨리 내려선 뒤 계단 그늘에 숨어들었다.

“서종서 차관이 정채명 장관을 미행하고 있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곽 경감이 다시 중얼거렸다. 정채명 장관은 그의 뒤를 줄줄이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정채명 장관이 주차장 가운데 있는 지프차 앞으로 가서 섰다.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가 한참 기웃거리고 있는 동안 서종서 차관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곽 경감과 조준철은 숨을 죽인 채 계단 틈으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2~30초나 지났을까? 지프차 뒤에서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지프차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차 뒤쪽에 있는 옆방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지하 주차장 오른쪽 벽에는 철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다른 공간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저 사람은...”
곽 경감이 깜짝 놀랐다.

“아는 사람 이이에요?”
조준철이 놀라는 곽 경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틀림없어. 저 사람은 백 장군, 아니 백성규 대령이야. 그때 한강 유람선에서 똑똑히 보았거든. 틀림없어.”
“뭐요?”
조준철이 너무 크게 말하는 바람에 그들의 위치가 노출 될 뻔했다.
“쉿! 틀림없어.”

백성규 대령은 정채명을 보자 차렷 자세를 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정채명이 약간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은 뒤 손을 내밀었다. 백성규는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정채명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총재 각하!”
백성규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말이 튀어 나왔다.
“총재라니요?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조준철이 믿기지 않는 듯 곽 경감의 귀에 대고 비명을 지르다시피 말했다.
“세상은 참 믿을 것이 못돼!"

곽 경감도 너무 놀라 자신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소리를 내뱉었다. 두 사람은 백성규와 정채명 장관의 대화에 온 신경을 모았다.
“위의 사정은 대단히 좋지 않아. 여기는 큰 문제는 없겠지?”
정채명 장관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시대로 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노출될 염려는 전혀 없습니다.”
“민독련 아이들과 남독련 학생들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녀석들이 일을 그르치는 것 아닐까?”
“아직 결정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들어가실까요?”
백성규가 정채명을 그가 나온 문 쪽으로 안내를 했다.
“정채명 장관님!”

그때 계단 그늘에 숨어 있던 서종서가 돌연 주차장 가운데로 나왔다.
“아니...”
곽 경감과 조준철이 숨을 죽이고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 서종서 차관도 한편이란 말인가?
“이거 서 차관이 웬 일이오?”

정채명이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관님도 결국 한 패거리였군요. 난 어쩐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역시 그랬군요. 이 나라의 내무 장관이 범죄 조직의 괴수라... 아니 작년 사무실에서 여비서 두명 벗겨놓고 2대1 플레이 하면서 오르가슴 3합창하던 짓거리 생각나네요. 나라가 여잡니까? 그 잘난 물건 두 구멍 드나들게... 하하하...”
서종서 차관은 서슴없이 말을 뱉어 냈다.

“서 차관! 말씀 조심하시오. 우리는 이 나라를 독재의 신음 속에서 살려 내려는 사람들이오.”
옆에 서 있던 백성규가 서종서 차관을 가로막고 나서며 말했다.
“오라. 당신이 바로 가짜 장군 백성규라는 사람이군 그래. 국무 위원 사모님들은 지금 어디 있어요?”

“서차관도 빨리 우리 정 총재님을 도와야 합니다.”
“어림없는 소리 마시오. 지금 이 빌딩은 어마어마한 병력으로 포위되어 있어요. 내가 소리만 한번 지르면 모두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거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는군. 당분간 우리하고 같이 좀 있어야 되겠군요. 인질이 한 사람 더 늘게 되었네...”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는군. 당분간 우리하고 같이 좀 있어야 되겠군요. 인질이 한 사람 더 늘게 되었네...”

그러나 그 순간 서차관이 백성규의 턱을 번개처럼 후려갈겼다.
“서종서 차관은 젊은 시절에 주먹깨나 쓰던 사람이었어요. 아마 저 두 늙은이는 당하지 못할 걸요.”

밑의 흥미진진한 광경을 보고 있던 조준철이 속삭였다.
“음...”
­턱을 얻어맞은 백성규는 고개를 몇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린 뒤 옆구리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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