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허...봉달라는 거나 봉주려는 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허허허...”
“아이 아저씨두 호호호...”
나봉주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모처럼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우리 나가서 사철탕이나...”
“예?”

“아니, 아니야. 따로 국밥이나 하면서 이야기 좀 할까? 보아하니 그냥 놀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이렇게 해서 나봉주는 하 경감과 함께 경찰서 앞의 단골 아구탕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 곽 경감은 잘 계신가?”

하경감이 나봉주에게 자리를 권하며 입을 열었다.
“곽 경감님 수배 당해 도망 다니는 것 모르세요?”
나봉주가 좁고 불편한 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걸치며 말했다. 식당치고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글쎄 말이야. 그 사람이라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여학생을 고문했다니 믿기지 않는단 말이야.”
“경감님도 그렇게 생각 하시는군요. 순전히 모함이에요.”
“그 함정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지?”

“시간이 가면 해결되지 않겠어요.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건 그렇고..어때요? 아구탕을 할까, 따로 국밥을 할까?”
곽 경감이 나봉주의 불룩한 앞가슴을 흘깃 보면서 말했다. 봉주는 나이 들어도 역시 남자는 남자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두 사람은 함께 따로 국밥을 시켰다.

“그래 보아 하니까 그냥 놀러 온 곳 같지는 않고....”
“저도 도망 다니는 몸이에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수배 당한 처지는 아니니까 신경 쓰시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그런데?”
하 경감이 눈을 크게 뜨고 이번에는 하얀 목덜미를 쳐다보았다.
“조은하 선생의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려고요.”
봉주의 입가에 약간의 웃음이 맴 돌았다.

“미스 나는 짐작 가는 사람이 있나요?”
하 경감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주 엉뚱한 사람일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고문직 교장 같은 사람...”
“뭐야?”

하경감이 대단히 놀랐다.
“터무니없나요?”
“아니야. 사실은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야. 지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거든.”
‘예? 그게 정말이에요?’
이번에는 나봉주가 깜짝 놀랐다.
“틀림없는 것 같아.”

‘이유가 뭐예요?’
“이유? 글쎄. 확실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사랑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렇지요? 고문직 교장은 조은하 선생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조 선생은 그 것을 무시하고 있었던 거예요”

하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봉주는 자기가 평소에 느낀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문직 교장은 아주 엉뚱한 데가 있는 사람이에요. 그는 외곬으로 빠진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고문직 교장이 조은하의 책을 자기 집에 가져다 두고 보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 했었지요. 나이 환갑에 가까운 사람이 한 여인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일이라구요.”

하경감은 그 책에서 고문직 교장의 DNA 아니 정액을 발견했다는 구과수의 감식 결과를 들었다. 짝 사랑이 변태로 변해 조은하의 책을 끼고 변태적인 정사, 자위를 하다가 흘린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봉주한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봉주가 큰 눈을 껌벅이며 말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랑의 감정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경감이 빙그레 웃었다.

“사랑과 미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아요? 고문직 교장의 외곬 사랑이 결국 일을 저질렀군요. 불쌍한 살인자...”
하경감이 조사한 고문직 교장의 사랑과 미움은 어떻게 보면 안타깝기까지 한 사연이었다.
조은하가 애초에 별다리 마을의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오게 된 것은 고문직 교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은하는 서종서와 마지막이자 처음인 사랑을 나눈 뒤 애절한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그의 곁을 떠났었다. 조은하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으나 조은하의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 세상에서 자기의 흔적을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66. 립스틱을 바른 듯
 
조은하는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가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가본 일이 있는 경주로 갔다. 조은하는 토함산 고개의 석굴암 앞에서 보던 장엄한 광경이 생각났다. 갑자기 그 감동에 젖어 보고 싶었다. 그 장엄한 모습이란 바다를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태양의 모습이었다.

그날도 조은하는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달려가서 그 태양을 껴안고 싶었다. 두 뺨에 눈물을 흘리며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뛰어갔다. 언덕에서 뛰어내려 바다에 풍덩 빠졌다.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숨이 막혔다. 태양은 간 데 없고 짜디짠 바닷물이 기관지에 차들어 왔다.
“살려줘요!”

조은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종서씨! 살려 줘요.”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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