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중 총리이하 국무 위원들은 숨을 죽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변일근 장군이 무전기와 유선 전화를 동원해 숨 가쁜 지휘를 하고 있었다. 사방의 건물에서 일제히 병력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때까지 백성규의 납치범 측 병력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 마당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유치원 지붕에 육박하던 육군 헬리콥터는 갑자기 커다란 굉음을 내며 포탄 같은 것을 유치원 마당에 쏘았다.
“아니!”

숨죽여 바깥 모양을 보고 있던 국무위원들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성이 나왔다.
헬리콥터에서 쏘아낸 것은 황색의 연막탄이었다. 순식간에 유치원은 황색 연기로 뒤덮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황색 연기가 신기하게도 유치원의 2층 건물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 사이 무수한 병력이 사방의 담을 넘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방독면을 쓴 병사들도 꽤 많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마당에 쫙 깔렸다. 그리고 2,3분이나 지났을까? 유치원 문이 열리고 지프차 두 대가 들어와 멎었다.

저격병들이 마당의 나무 뒤에 숨어 총을 유치원 건물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지프에서 서너 사람의 장교가 내렸다. 그들도 방탄조끼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무전기를 든 병사가 뒤따르고 있었다.

장교의 지휘를 받는 십여 명의 병사가 유치원 건물 쪽으로 들어갔다. 황색 연막 때문에 그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김교중 총리와 정일만 장관은 곧 격렬한 총격전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치원 건물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전혀 저항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웬 일일까요?”
정일만 장관이 총리를 돌아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변장군과 조민석 장군은 이미 현장으로 달려가고 없었다.
“우리가 헛짚은 것은 아닐 테지?”
총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절대로 정보가 새 나갈 수는 없습니다. 비대위 멤버밖에 이곳을 몰랐거든요. 그리고 인질을 트럭에 태우고 이곳에 도착한 것도 확인했던 것 아닙니까?”
그때였다. 유치원 건물 안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인 총성이었다. 곧 이어 제2차 공격조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 이상 총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제 황색 연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연막이 걷히자 유치원 안팎은 무장한 병력으로 가득 찬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몇 방의 총성 외에는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병사들은 돌부처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건물 안에는 20여 명의 무장 병력이 들어갔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백장군 병력이 몇 명이나 된다구요?”
김교중 총리가 정일만 장관을 보고 다시 물었다. 조금 전 6~7명이라고 한 말을 잊은 것 같았다.
“백성규는 장군이 아니고 예비역 대령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납치한 인질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들은 6~7명뿐입니다. 다른 곳에도 무장 병력이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정일만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들이 애초에 사모님들을 납치 할 때의 병력은 몇 명이나 되었지요?”
총리가 다시 물었다. 백성규가 의정부 북방 국도 상에서 국무위원 사모님 22명이 탑승한 버스를 납치해 갈 당시에 김교중 총리는 육군 장관이었다.
그리고 산정 호수에서 구출 작전을 펼 때도 그가 지휘를 했었다. 따라서 당시의 병력 수는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이었다.
“그때는 10명 미만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열 명도 안 되는 반역자들 때문에 정부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끌려 다닌단 말인가?”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유치원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여자 두 명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사색이 되어 앞에 나오고 그 뒤에 총을 겨눈 병사들이 나왔다. 두 여자는 마당 잔디 위에 나와 꿇어앉았다. 두 손을 높이 들고 앉아있는 두 여자의 모습은 마치 벌을 서는 여학생 같았다.

“저게 뭐야? 백성규 놈은 어디 갔어? 아니 국무위원 부인들은 모두 어디 갔어?”
총리가 중얼거렸다.
마당에서 벌서고 있는 여인들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들이었다. 한 여자는 잠옷 바람이라 가슴과 허연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났다. 여자들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포로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병사들도 얼굴이 굳어 있었다. 유치원 마당에서는 그 이상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곧 이어 조민석 육참 총장이 총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거요?”
총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정일만 장관은 사태를 짐작한 듯 창밖의 하늘만 쳐다보았다.

“실팹니다.”
그가 간단히 말했다.
“실패라니? 아니 그럼...저 여자들은 뭐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사모님들이나 백성규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저 여자들은 유치원 보모들입니다.”
“이런, 이런....”
총리가 낭패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63. 비밀한 곳을 벌집 쑤시듯

“이 유치원이 틀림없다고 하지 않았나?”
한참 만에 김교중 총리가 입을 열었다. 모두 실망스러운 얼굴이라기보다는 비탄에 가득 찬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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