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경감은 담배에 불을 붙이려 지포라이터를 철컥거리며 말했다.
“인생의 영욕이란 것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것이 모두 담배 연기와 같은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허허, 이거 왜 새삼스러운 인생론이십니까?”
변 사장은 방금 눈앞에서 벌어진 충격에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이 보였다.
“아름다운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름도 더럽게 남아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유취만년(유취만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추 경감의 말에는 음산한 기운마저 섞여 있었다.
“허허, 이거 무슨 말씀을 하시려 이러십니까? 사건에 대해 뭐 알아 오신 건 아니었습니까?”

“알아 왔습니다.”
추 경감의 말에 변 사장은 움찔했다.
“저는 지금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겁니다.”
“기회라고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끝까지 이러시는군요.”

추 경감은 담배를 깊게 빨아 들였다.
“당신이 행한 두 살인사건을 고백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겁니다.”
변 사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거 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이 아니오!”

추 경감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변 사장은 기가 질려 추 경감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보아온 복덕방 영감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기가 오싹 돌게 하는 노기 띤 얼굴이었다.

“당신은 김 박사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소. 김 박사가 자기는 제일 나중에 인삼캡슐을 먹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때문에 당신은 김 박사가 먹을 인삼캡슐을 꿔치기했소. 청산가리가 든 캡슐로.”
 “말도 안 돼요. 캡슐은 30초도 안 돼 위 속에서 녹아 버린단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서 별장까지 가서 죽어요?”
변 사장이 비명처럼 항변을 했다.

“당신은 과거에 불량 약품을 만들어 옥살이를 한 적이 있소. 그때 당신이 상당한 지구성을 지닌 캡슐을 만든 적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 경찰은 당시 재판 기록을 찾아내 그 캡슐의 성분을 알아냈고 검사기록과 일치함을 알아내었소. 당신이 김묘숙 박사한테 먹인 청산가리 캡슐은 1시간 반이 걸려야 녹게 되어 있었소. 이것이 그 캡슐 비교표요.”
추 경감은 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해도 범인은 아니오. 그때 이이사도 같이 일을 했단 말이오.”
“뭐, 그런 소릴 할 줄 알았지요. 우리가 변사장을 의심한 첫 발단은 캡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는 데부터였습니다. 그때 쭈뼛거렸던 사람은 변 사장뿐이었지요.”

“뭐요? 난 틀림없이 캡슐을 먹었다구요!”
변 사장의 얼굴은 이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지요. 모두 그걸 봤지요. 변사장이 머뭇거렸기에 오히려 증인이 확보되었던 거지요. 그건 용의주도한 계산하에 이루어졌던 거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물론 증거는 없어요. 다음으로 변 사장은 별장으로 가서 우선 주사기 케이스를 화장실 휴지통에 넣어 두었지요. 이번 살인계획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이 이사를 용의자로 보게끔 맞춰져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강형사는 캡슐에 마취제가 들어 있었고 김 박사가 정신을 잃은 후 이이사가 고무 호스 같은 걸로 위 속에 청산가리를 투여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만화 같은 소리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게 더 타당성 있는 소리 같군요.”

변 사장은 아예 냉정하게 말을 했다.
“이 이사는 여러 약점이 있었소. 경리 부정과 마약 중독, 그리고 여자관계. 파멸될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변 사장님 눈에는 파멸되어도 좋을 사람으로 ,하나의 미끼로 보였던 거지요.

오랫동안 내 머리를 어지럽혔던 것은 이번 살인극의 동기였소. 변 사장은 풍족한 부를 소유하고 있고 회사 사정도 원활한 편이었고 피해자들에 대해 특별한 사감도 가진 것이 없었소. 그러나 단 하나!그들은 갖고 변 사장은 갖지 못한 것이 있었소! 그것은 바로 명예였소. 명예! 변 사장은 이번 기사로 기분이 흡족한 모양이신데 그것으로 나의 의문은 풀리게 되었던 거요.”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훗,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요? 변사장은 장이사님의 사고 때 배양실로 들어가 보지 않으셨지요?”
“그렇소.”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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