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직원, 중국 공업단지에 숨어 활동…국내 범죄 조직 연루

국정원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추적해 배후가 북한 IT 조직임을 파악하고, 국내 범죄 조직의 연루 사실도 확인해 냈다. 2022년 기준 연간 매출 규모가 10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국정원]
국정원이 불법 도박 사이트를 추적해 배후가 북한 IT 조직임을 파악하고, 국내 범죄 조직의 연루 사실도 확인해 냈다. 2022년 기준 연간 매출 규모가 102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글=이창환 기자, 사진=국정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중국 랴오닝성 소재의 대규모 공업단지 내에서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제작해온 북한 조직원 실체를 공개했다. 유엔 대북 제재 등으로 외화수익 창구가 막힌 가운데 북한 조직원들은 중국인으로 신분 위조 후 수천 개의 사이버 도박 사이트를 제작해 무려 100조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범죄조직과의 거래 정황까지 포착됐으며, 한국인의 개인정보 탈취와 해킹 등 추가 범죄까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 IT 조직원, 중국 단둥시 의류 공장 체류 중국인 신분 위조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 통해 외화벌이 국내 사용자 정보 탈취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17년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채택했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의한 외화수익을 막기 위한 것으로 북한 내에서 해외로의 거래는 물론 북한인 신분으로는 중국에서 일감 수주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한 조직 구성에 나섰다. IT 전문가로 둔갑한 이들은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 포털에 노출된 중국인 신분증을 합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인 개발자로 위장하고 텔레그램·위챗 등 SNS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일감을 물색했다. 

국정원 입수 사진과 영상 등에는 북한 IT 조직원의 이름과 소속 신분 등이 노출됐으며, 중국인으로 가장하는데 사용한 위조신분증까지 확보돼 있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해당 조직은 중국 단둥에서 활동 중인 ‘경흥정보기술교류사(경흥)’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개인 비자금 조달 및 관리를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직이다. 

해당 조직의 단장은 대남 공작을 담당하는 정찰총국 소속으로 39호실에 파견돼 15명의 조직원과 체계적인 분업시스템을 갖춰 성인, 청소년 대상 도박사이트 운영 및 제작·판매해 매달 1인당 통상 500달러씩 평양에 상납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들 ‘경흥정보기술교류사’는 조선족 대북 사업가 소유의 랴오닝성 단둥시 소재의 한 의류 공장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둥시는 북한 접경지로, 지난 20여 년간 북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중국 의류 생산기지로 성장한 곳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유엔 제재를 받는 북한의 불법 외화벌이 조직의 비밀 체류지로 부상한 셈이다.

중국공민으로 신분 위장한 북한 조직원. [국정원]
중국공민으로 신분 위장한 북한 조직원. [국정원]

한국 범죄조직은 ‘왜’ 북한 IT 조직 손잡았나?

국정원은 이번 불법 도박 사이트 파악과 더불어 한국의 범죄조직들이 ‘경흥정보기술교류사’ 등 북한 IT 조직과 거래한 정황을 포착했다. 바꿔 말하면, 불법 사이버 도박 사이트 등의 범죄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한 증거를 확보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 IT 조직에 수천 개의 도박 사이트 제작을 의뢰하고, 이를 판매해 수조원대 수익을 올린 한국인 범죄조직에 대해서도 경찰과 실체를 규명중이다.

국내 범죄조직이 ‘경흥’ 등의 북한 IT 조직을 이용하는 이유는 불법 도박 사이트 제작비용이 한국이나 중국의 개발자에 비해 30~50% 저렴해서다. 특히 해당 조직이 북한 소속인 줄 알면서도 한국어 소통이 가능해 지속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불법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IT 조직이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천 개의 불법 도박 사이트 등을 포함해 매출 규모는 2016년 기준 약 70조 원에서 2019년 81조 원, 2022년 102조 원으로 크게 확대됐다. 특히 8만4000여 개의 불법 도박 모니터링 항목 가운데 99%인 8만3300여 개가 온라인 도박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 14일 취재진에게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의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 등과 관련해서는 오래 전부터 파악된 것”이라면서 “정황과 증거 모두 확보된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서는 “올해부터 국정원 수사권이 폐지되고 경찰만 수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현재 국정원은 해당 내용에 대해 경찰과 함께 실체 규명 중에 있다.

국정원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 IT 조직인 ‘경흥’은 앞서 언급했던 단둥시 현대공업단지 소재 ‘금봉황 복식 유한회사’의 공장 기숙사 건물에 거주 중이었다.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 소속임을 자술한 SNS를 확보하고, 자금 수수에 이용한 위챗페이와 페이팔 등 전자상거래 시스템도 확인했다. 

더불어 제 3국의 불법 소프트웨어 제작 의뢰인을 통해 ‘경흥’ 소속 조직원들의 신원 증명이 이뤄지던 과정을 포착, 경흥의 단장을 비롯한 북한 소속 조직원들의 신상을 파악해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 박사 등으로 신분을 위조하고, 중국인 공민증까지 보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은 이번 공개된 자료를 두고 “최근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 도박 범죄의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공개된 최초 사례”라고 밝혔다.

한편 국정원이 북한 IT 조직의 불법 외화벌이에 주목하는 것과 관련 UN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2022년 UN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북한의 로케트공업부 산하 IT 조직 ‘비류강해외기술협조사’ 단장 송림의 보이스피싱 해킹앱 밀매 관련 내용을 수록하고 “北 군수공업부와 연계된 IT 인력이 다수의 해외 서버를 운영하며 보이스피싱 해킹앱을 판매해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정원이 입수한 북한 IT 조직원의 SNS 대화 내용. [국정원]
국정원이 입수한 북한 IT 조직원의 SNS 대화 내용.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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