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크크크...”
은실은 오 주사와 열심히 그 일을 하고 있는 여자가 당연히 종심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밤도 아닌 대낮에 집에도 아니고 왜 대나무 숲에 와서 아이를 만들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 만에 오 주사는 일을 끝내고 일어섰다. 바지를 추슬러 입었다. 누워있던 여자도 치마를 내려 시뻘겋게 들어났던 엉덩이를 가렸다.
"어? 강남이 엄마다.”
경욱이가 은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정말. 강남이 엄마네.”
은실이도 놀랐다. 강남이 엄마란 윗담에 사는 젊은 여자였다. 얼굴이 곱상하고 피부가 하얗고 가느다란 몸매로 마을 남자들의 눈길을 항상 모으던 여자였다. 강남이 아버지는 소금장수로 오일장을 떠돌아 다니는 가난한 남자였다. 남자가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고양이 이마만한 채소밭도 강남이 엄마가 혼자 강남이를 업고 다니며 가꾸곤 했었다.
"강남 애비는 집에 없지?”
오 주사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예. 거창 장에 가서 낼이나 올걸요.”
강남이 엄마는 옷매무새며 헝크러진 머리를 부지런히 손질하며 대답했다.
"강남이는 집에서 자나?”
"고모가 데리고 갔어요.”
“지금 남세 밭에 가는 길인가?”
오 주사가 곁에 놓인 망태기를 보며 말했다.
"소풀(부추) 좀 베어다가 김치 담그려고...”
강남이 엄마가 망태기를 집어 들었다.
오 주사는 조끼 주머니에서 가죽 지갑을 꺼내더니 1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강남 엄마 손에 쥐어 주었다. 강남이 엄마는 겸연쩍은지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돈을 받아 쥐었다.
"나 간다.”
오 주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팔을 휘휘 저으며 대나무 숲 사이로 사라졌다.
은실이와 경욱은 동네의 비밀을 함께 간직했다는 야릇한 마음으로 숲을 나왔다.
어느 날 아침을 먹느라고 온 식구가 둘러앉은 자리에서 강남 엄마 이야기가 나왔다.
"강남 네를 어제 읍내 장에서 만났는데 코티분을 사들고 나오더라고. 코티분이 얼마나 비싼 데 제 주제에...”
엄마가 말을 꺼내자 아버지가 받았다.
"요즘 오 주사가 그 집을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오 주시가요?"
그 때 은실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전에 마을 뒤 대나무 밭에서 오 주사 어른과 강남이 엄마 보았어.”
"뭐야? 대나무 밭에서?”
아버지가 놀라서 되물었다.
"우연히 가다가 만났겠지요. 은실이 너 그런 쓸 데 없는 소리 함부로 하면 혼난다.”
오빠가 말을 가로 막았다. 은실이가 더 이상 두 남녀의 정보를 흘리지 못하게 할 속셈이 틀림없었다.
그 뒤로 대나무 밭의 유부녀와 유부남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동네의 화제가 되었다.
“강남네의 그 생글생글 웃음치는 얼굴이 예사롭지 않더니.”
“그러게 말이예요. 얌전은 혼자 다 빼면서 뒷구멍으로 호박씨나 까고.”
“뒷구멍인지 앞 구멍인지 어떻게 알아. ㅋㅋㅋ..."
“강남 아버지가 알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아마 낫 들고 덤벼들 걸.”
“쉿. 함부로 그런 소문내다가 벼락 맞는 수가 있어.”
그러나 소문은 점점 번져 나갔다.
13. 찔레꽃 아래서
은실이와 경욱은 동네의 비밀을 함께 간직했다는 야릇한 마음으로 만나면 빙긋 웃었다.
이듬해 늦봄 어느 날 은실이와 경욱은 개울가에서 놀다가 찔레꽃이 하얗게 핀 숲 사이로 들어갔다. 야들야들한 찔레 새 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기고 입에 넣으면 풋풋하고 달콤한 맛이 났다. 두 사람은 입술이 퍼렇게 되도록 찔레 순을 먹고는 숲속 풀밭에 나란히 누웠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솜털처럼 하얀 구름 사이로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조각이 보였다.
"은실아.”
"응?”
"우리 오 주사 놀이 한번 할래?”
"오 주사 놀이? 헤헤헤.”
둘은 대나무 숲에서 본 남녀의 이상한 짓을 오 주사 놀이라고 불렀다. 물론 두 사람만이 통하는 암호였다. 어른들이 집밖에서 대낮에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렇게 나쁜 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경욱은 은실의 치마를 훌렁 걷어 올렸다.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무명 속옷이 드러났다. 고무줄을 넣어 만든 속옷은 일본식 사루마다와 비슷했다.
은실은 부끄럽기도 하고 약간은 겁이 났다. 다리를 오므리고 눈을 감았다.
경욱은 무턱대고 은실을 껴안고 볼에다 입맞춤을 해댔다.
"아파!”
은실은 너무 세게 껴안은 경욱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재미없어?”
경욱이 얼굴을 찡그린 은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응.”
"나도 그래. 아무 재미도 없어.”
경욱은 은실을 풀어주며 말했다.
"우리 애기 생긴 것 아닐까?”
은실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결혼도 안했는데 애기가 생길라고?”
"네가 날 막 껴안았잖아. 남자와 여자가 껴안는 것이 아기 만드는 일이라면서?”
"그건, 같이 자야 되는 거래.”
"너, 그럼 우리 집에 와서 자지마. 놀다가 늦어도 그냥 가는 거야.”
"알았어 걱정 마.”
경욱이 태연스럽게 말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은실은 걱정이 되었다. 혹시 애기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경욱은 열한 살, 은실은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걱정만 하던 은실은 어느 날 식구들이 둘러 앉아 아침 상아침상을 받은 날 결심하고 걱정거리를 털어 놓았다.
"엄마. 남자와 여자가 끌어안고 자면 아기가 생겨?”
"뭐?”
어머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험!”
식구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할머니와 함께 겸상을 차리고 따로 아침밥을 먹던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돌렸다.
"입 닥쳐. 이 맹추야.”
용주 오빠가 은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누가 그렇게하던?”
할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경욱이가 그랬어요.”
은실은 식구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공연한 말을 꺼냈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버지는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고 사랑채로 나가버렸다.
"경욱이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자세하게 말해보아.”
어머니가 은실이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나한테 치마 걷어 올리라고 하고는 오 주사 놀이 하자고 해서...”
은실은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털어 놓기 시작했다.
"오 주사 놀이가 뭐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경욱이가 오 주사 놀이하자면서 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나를 막 껴안고 입도 맞추었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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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