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초,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출근 시간대임에도 놀이터엔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과 갓 돌 지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아직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각이지만 근처 ‘아이돌봄센터’에는 벌써 다섯 명의 아이가 보호자 없이 맡겨져 있었다. 놀이터 옆에는 ‘아이돌봄센터’ 간판이 선명하게 붙어 있다.
- “출산율 0.6시대, 경기도는 왜 다른 길을 택했는가”
-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지자체가 만드는 새로운 표준
- 3년 새 출산율 ‘반등’...숫자보다 큰 변화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센터 내에서는 보육교사 한 명이 분주히 책을 읽어주고, 또 한 명은 간식을 챙기고 있었다. 낯선 아이도, 낯선 공간도 아닌 듯 아이들은 편안한 표정이다. “며칠 전엔 둘째 아이 예방접종 때문에 오전 내내 병원에 있었는데, 큰애를 여기 맡겨놓고 다녀왔어요. 진짜 이런 공간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안 돼요.”
이곳을 이용 중인 전업주부 김소연 씨(33, 가명)는 첫째를 낳고 직장을 그만뒀지만,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 갈 일 있으면 오전 시간에 돌봄센터에 맡기고 다녀올 수 있다”면서 “응급상황에도 연계가 빠르고,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서 믿음이 간다”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을까’에서 ‘이곳이라면 낳아도 되겠다’는 판단으로 바뀐다는 것.
“누구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시로” 실험중
경기도는 수도권이지만, 출산과 양육에서 서울만큼의 ‘기반’을 누리지 못하는 지역도 많다. 그래서 고양·화성·남양주 등 주요 기초지자체들은 ‘누구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며 각기 다른 전략을 실험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출산율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얼마나 출산·양육을 ‘가능한 일’로 만들어주는지의 문제라는 인식에서다. 경기도는 31개 시군이 다양한 여건 속에 놓여 있다. 과밀한 수도권이면서도, 고양·성남·화성·남양주 등은 자체적인 인구정책 실험장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고양특례시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를 구호가 아닌 정책 시스템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고양시 인구정책과 관계자는 “출산장려금은 대부분의 지자체가 하고 있는 사업”이라며 “하지만 고양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임신·출산·양육·교육·돌봄까지 모든 주기를 끊김 없이 연결하는 ‘공공 양육 인프라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작은 시작은 ‘아이돌봄플랫폼’이었다. 고양시가 2022년부터 운영 중인 ‘고양 아이돌봄플랫폼’은 임신 초기부터 출산 후 1년까지, 전 과정을 전담 코디네이터가 함께 관리한다. 임신 확인 시 등록하면 산전 건강검진 연계, 출산 병원 예약, 출산용품 키트 제공, 산후도우미 연결, 초기 부모 교육 등 일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제 막 출산한 박소이 씨(31·덕양구, 가명)는 “첫 출산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산후 도우미 신청도 어렵지 않고 모유 수유 상담도 예약제로 받아서 정말 도움 됐다”라며 “병원에서 퇴원할 때부터 시 담당자가 먼저 연락 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출산 후에도 이어진다. ‘아이돌봄센터’, 시간제 어린이집, 워킹맘 안심케어’ 등으로 양육 지원 체계가 설계돼 있다. 경기도 내 출산율은 대부분 전국 평균 수준인 0.6~0.7명대에 머무르지만, 고양시의 경우 2021년 0.66에서 2023년 0.74로 소폭 반등했다. 더 주목할 점은 산후 재임신률과 거주지 유지율이다.
고양시 출산율, 경기도 평균 수준이 이상 0.74 반등
고양시는 “첫째 출산 후 이주하지 않고 둘째를 이 지역에서 출산하는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정주형 양육 인프라’가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경기도는 또 다른 실험도 병행 중이다. 화성시는 몆년 전부터 ‘공공산후조리원’을 운영하고 있다. 관내 거주 산모라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으며, 전문 간호사와 상담심리사가 상주해 출산우울증과 초보 부모 불안을 관리해준다.
산후조리원 이용자 김영자 씨(29, 가명)는 “민간 조리원은 2주에 수백만 원도 넘는데, 여긴 100만원 미만 대로 시설도 좋고 간호사 선생님이 육아법까지 챙겨 준다”라고 했다. 또한 화성시는 ‘아빠 유가휴직 장려금’을 도입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도 늘리고 있다. 2023년 기준 시 지원금 수령 건수는 전년 대비 2.5배 증가했다.
양육의 부담을 나누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경기도 지역내에서는 ‘마을돌봄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동네 단위의 ‘돌봄활동가’를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 센터장이자 활동가 양성 담당인 임혜경 씨(49, 가명)는 “마을에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퇴사하는 부모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을 어른들과 청년을 돌봄 리더로 키우고, 공공 공간에서 순환식 돌봄이 가능하도록 연결해요”라고 설명했다.
실제 퇴근시간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오후 6시 이후 돌봄반’, 엄마가 병원 가는 동안의 임시돌봄, 돌봄 리더의 퇴근 후 야간 순찰 서비스 등이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 지역 한 주민이자 워킹맘인 윤지은 씨(38, 가명)는 “도시형 공동 육아라 생각한다”면서 “내 아이만 맡기는 게 아니라, 동네 전체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느낌이라 안심된다”라고 전했다.
특히 전국 최초로 남양주시가 진행하는 지자체형 초등돌봄센터인 ‘남양주 상상누리터’가 지난해 개소해 관심을 끌었다. 돌봄 수요가 많지만 시설이 부족해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적 돌봄 체계를 조성하는 전략적 돌봄 사업이다. 기존 다함께돌봄센터의 설치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해 주민공동시설이 부족한 원도심의 돌봄 환경을 개선한 상호보완적 모델이란 점이 눈에 띈다.
경기도 내 지자체들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배경에는 인구의 도시 간 이동이라는 현실이 있다. 서울에서 밀려나거나 외곽으로 이주한 젊은 세대들이 양육 여건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정착지를 고르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경쟁력은 곧 ‘아이를 키우기 좋은가’로 직결된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지자체가 더 이상 출산장려금만으로 인구 유입을 끌어올릴 수 없는 시대”라며 “도시는 결국 ‘함께 사는 공간’이 돼야 한다. 아이, 부모, 지역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얼마나 설계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인구위기대응 출산독려에서 정주와 양육 인프라 전환”
경기도 사례는 인구 위기 대응을 단순한 ‘출산 독려’가 아닌, 정주와 양육 인프라 전환을 통해 풀어가려는 접근이다. 청년이 남는 농촌이 전남의 실험이라면, 부모가 떠나지 않는 도시는 경기도의 실험이다. 출산율이 아닌 ‘삶의 흐름’에 주목한 기초지자체의 도전은 전국 어느 지역이든 참고할 수 있는 모델로서 그 가치가 있다.
고양·화성·남양주 세 도시의 경우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서비스를 받는 부모들의 표정’이었다. 지친 얼굴 대신, “이 정도면 버틸 수 있다”고 말하는 안도감. 그리고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는 작은 희망. 한 경기도 담당자는 말했다. “우린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모든 시간’이 행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표예요.”
어쩌면 저출산 시대의 해답은 화려한 출산장려금도, 인센티브 경쟁도 아닌, “당신이 아이를 낳기로 한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함께할게요”라는 메시지를 얼마나 진심으로 전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