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7월 초순,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신풍리 마을. 오래된 폐교 건물에서 망치질 소리와 페인트 냄새가 어우러진다. 이곳은 곧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돌봄 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 돌봄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된 이 마을은 충남도의 고령친화·세대융합 전략이 집중되는 핵심 현장 중 하나다.

김태흠 충남지사 저출산 대책 발표 장면. 뉴시스
김태흠 충남지사 저출산 대책 발표 장면. 뉴시스

- 돌봄과 공존의 실험, 충남 농촌에서 미래를 짓다
- 세대가 함께 사는 마을, 인구 위기의 해법 묻다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폐교였던[이 공간이 이제는 어르신 돌봄과 청년들의 창업 거점이 되는 거죠. 그냥 집만 있는 마을이 아니라, 삶이 이어지는 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현장에서 만난 주민 김정례 씨(74, 가명)는 담벼락에 기대어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 마을의 고령친화 마을 만들기 추진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저출산 시대의 반격, 충남 마을이 답했다"

충청남도는 몆년 전부터 장곡면을 포함해 고령화율이 35% 이상인 지역을 중심으로 돌봄 공동체 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한 노인 복지시설 설치가 아니다. 마을에 남아 있는 청년과 이주민, 귀촌인들이 어르신과 함께 살아가며 상호 교류하고, 일자리와 돌봄이 연결되는 '생활형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홍성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장곡면에는 사회적 농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지역 청년들이 중심이 돼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며 어르신들에게 간단한 일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농장은 단순한 생산의 공간을 넘어, 매주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밥상 모임, 생활 건강 교육 프로그램 등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축 역할도 하고 있다.

청년 농부 김주현 씨(32, 가명)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서 일할 때보다 수입이 많진 않지만, 내가 필요한 곳에서 뭔가를 만든다는 감각이 있죠. 농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마을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돼요. 여기선 노인도 동료고, 아이도 이웃이에요."

이처럼 충남의 고령친화 마을은 '복지 시설'을 넘어서 '지역 공동체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청양군에서는 더욱 독특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청양군은 지난해부터 행정리 단위로 마을 돌봄이를 지정, 매달 수당을 지급하며 독거노인 안부 확인, 반찬 배달, 병원 동행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는 15개 마을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만족도는 90%를 넘는다.

돌봄이로 활동 중인 이선화 씨(59, 가명)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는 제 일을 그냥 '심부름'이라고도 말해요. 하지만 어르신들에겐 그 심부름 하나하나가 삶을 잇는 끈이에요.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고맙다', '오늘도 와줘서 다행이다'예요."

충남도는 이러한 마을 단위 돌봄 실험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한국행정연구원과 함께 정책모델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 결과 해당 모델을 적용할 경우 연간 약 10억여원의 사회복지 예산 절감 효과와 함께, 주민 만족도 9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의 이런 실험의 중심엔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철학이 자리한다. 김 지사는 인구 절벽 시대를 맞아 국가 책임 돌봄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현금성 지원을 넘어 실질적인 육아 인프라 구축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김 지사는 "저출산 문제는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존립 자체가 걸린 문제"라며, 단순한 출산장려금이 아닌 구조적 돌봄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화려한 공약보다, 생활형 정책 실험

충남노인회 회원들과 간담회 갖는 김태흠 지사. 뉴시스
충남노인회 회원들과 간담회 갖는 김태흠 지사. 뉴시스

그 일환으로 충남도는 전국 최초로 24시간 아동돌봄 거점센터와 야간 어린이집을 내포신도시 등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공휴일이나 야간 근무가 잦은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도입 이후 돌봄 공백 사례가 현저히 줄었다는 평가다.

또한 충남도는 공직사회 내 '·가정 양립'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자치단체 최초로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 대상 '4일제'를 도입했다. 현재까지 약 1400명이 이 제도를 활용 중이며, 도는 이를 민간 부문까지 확산할 계획이다.

김 지사는 최근 정부에 임신·출산 가정과 다자녀 가정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특별공급 비율을 현행 60%에서 100%까지 확대해달라고 공식 제안했다. 도는 앞서 도내 LH·충남개발공사 등과 연계해 출산 가정에 대해 분양 전환형 임대주택이나 전세형 주택을 우선 배정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같은 정책은 단발성 지원을 넘어 출산과 양육이 쉬운 환경을 만들겠다는 도의 의지를 반영한다. 김 지사는 돈만 준다고 아이를 낳는 시대는 지났다. 결국 돌봄과 주거, 교육 등 삶의 질을 높이는 토대가 갖춰져야 한다충남형 돌봄 정책은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닌 인구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이제는 지역이 돌봄의 최전선이 돼야 한다면서 기존처럼 시설 위주의 돌봄은 한계가 명확하다. 마을 안에서, 생활 속에서 돌봄이 이뤄져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충남의 모델도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촌 공동화로 인한 정주 인구 감소, 일부 지자체의 행정 역량 격차, 중앙정부의 단기 재정 지원 구조 등은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충남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간 균형 있는 지원과 중간지원조직의 기능 강화, 지자체 간 정보 교류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안한다. 충남도도 이에 대응해, '고령친화정책 거버넌스 협의체'를 구성 중이며 정부에 장기적인 재정지원 체계 마련을 건의하고 있다.

충남 내포신도시 인근에서 만난 40대 귀농인 정현우 씨(가명)는 말했다. "처음엔 낯설었어요. 서울과는 모든 게 달랐죠. 그런데 여기선 이웃이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농사짓고, 아이 키우고, 할머니랑 장 보러 가고. 그런 일상이 특별해졌어요.

김태흠 도지사,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 실험은 이제 시작"

정 씨의 말처럼, 충청남도의 고령친화 마을 실험은 단순한 행정 사업이 아니라, 일상과 지역의 재구성이다. 그곳에는 정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 충남이 던진 해법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주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 실천과 실험이다. 그 해법이 다른 지역, 전국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까. 해답은 여전히 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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