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서귀포시 도시민유치지원센터. 이곳엔 오전부터 상담을 받으려는 이들로 북적였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정착 농지를 알아보려는 귀농인, 노후를 제주에서 보내려는 중장년 부부까지. 센터 관계자는 “요즘 하루 여러건의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제주로 오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실제로 정착까지 이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귀띔했다.
-‘인구절벽’ 파도와 맞서다..“떠나는 섬 아니라 머무는 섬으로”
-“저출산·고령화의 파고 속 제주, 새로운 인구 생태계 설계”
- 관광지서 생활지로, 제주가 걸어가는 인구정책의 실험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제주에 왔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요”. 서울에서 두 아이와 함께 내려온 김지연(38·가명) 씨는 상담을 마친 뒤 기자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울살이가 너무 팍팍했어요.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제주를 선택했죠. 환경은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집값과 생활비는 예상보다 훨씬 높아요. 그래도 출산지원금이나 돌봄 서비스는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제는 보육 인프라가 조금만 더 안정되면 오래 살고 싶어요”.
통계는 냉정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제주 주민등록 인구는 66만6000여 명. 불과 한 달 사이 399명이 줄었다. 제주시에서 151명, 서귀포시에서 248명이 빠져나갔고, 27개월 연속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제주 출생아 수는 3162명, 9년째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율 저하에 청년층의 도외 유출까지 겹치면서, ‘인구절벽’의 그림자가 제주를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신혼부부, “지원금도 좋지만 결국 주거안정이 제일 중용”
제주도내 인구 감소 원인은 출생아 뿐만 아니라 청년층이 일자리를 찾아 도외로 빠져 나간 것도 한 몫 한다. 이에 제주도는 신규 인력을 유입하기 위해 워케이션, 런케이션, 미래 먹거리 산업 마련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놨고, 한편에서는 아이 낳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 육아 정책을 쏟아 냈지만 결국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도는 첫아이 출산 가정에 500만원, 둘째 이상은 1000만원을 5년간 나눠 지급하며 지원금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현실의 체감도는 엇갈린다. 제주시 연동에서 만난 신혼부부 박성호(33·가명)씨는 아기를 안고 이렇게 말했다. “지원금도 좋지만 결국 주거 안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혼부부 임대주택 신청을 넣었는데 대기자가 너무 많아 언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안정된 집이 있어야 아이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잖아요.”
제주도는 항공우주·에너지 전환 산업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워 오는 2029년까지 5만3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여전히 고민이 많았다.
제주시 노형동의 카페에서 만난 청년 오지훈(32·가명) 씨는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 때문에 서울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주가 고향이자 미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청년들이 정착하려면 단순히 일자리만 있는 게 아니라, 주거와 문화, 교육이 함께 갖춰져야 합니다. 그래야 남고 싶은 섬이 되죠.”
한편 농촌 현장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구좌읍에서 당근 농사를 짓는 양철호(58·가명)씨는 “이주민 유입 덕에 마을이 활기를 찾은 건 사실이지만, 땅값이 오르고 생활 방식이 달라 마찰도 많다”며 “단순히 사람을 불러들이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이웃으로 잘 어울리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주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이주민 증가율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장기 정착률은 낮은 편이다. 일부 이주민들은 의료 인프라 부족, 교통 혼잡, 높은 물가를 이유로 다시 육지로 떠나고 있다. 서귀포 강정동에서 만난 장혜원(45·가명) 씨는 5년 전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 고민 중이다. “처음엔 바다와 자연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선택할 수 있는 학원이나 문화 공간이 적은 게 큰 불편이더라고요. 교육 인프라가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가운데 제주도는 지난 2월 ‘인구행복도시 제주 도민실천단’을 출범시켰다. 청년, 학부모, 중장년, 전문가 등이 함께 모여 인구정책을 논의하는 구조다. 단순히 행정이 아닌, 도민 참여형 정책 추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주도는 이주민 유입으로 급등한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1만 호 공급을 목표로 세웠다. 이와 함께 가족친화인증기업 180곳을 지정해 맞벌이 부부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침이다. 도는 도민 참여형 인구정책을 확대하고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방침이다. 도는 이를 위해 지난 1월 인구정책을 전담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인구정책담당관을 신설하는 등 추진체계도 강화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인구문제는 출산·양육뿐 아니라 일자리, 주거, 공동체 전반과 맞닿아 있다”면서 “도민 목소리를 반영한 제2차 인구정책 종합계획을 바탕으로 청년 유출을 막고 정주환경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담대한 혁신, 제주형 인구정책 2차 종합계획 실험대
전문가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양재운 한국은행 제주본부 경제조사팀 과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높지만, 육아와 가사 분담은 여전히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며 “출산율 회복을 위해선 주거·보육·고용 정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주도는 지금 ‘이주민 유입의 성공 신화’와 ‘정주 불안정’이라는 두 얼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생활인구 85만명, 청년인구 16만명이라는 목표는 단순한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된 일자리, 주거, 돌봄과 문화가 어우러져 삶의 질과 공동체가 회복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한때 ‘살고 싶은 섬’으로 귀농·귀촌 열풍을 이끌었던 제주는 이제 ‘머무는 섬’으로서의 조건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제주 서귀포 중문동에서 만난 청년 김동욱(34·가명)씨의 말은 그 상징처럼 들렸다. “제주에 오면 잠시 살다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안정된 일자리와 집, 그리고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죠. 그게 갖춰져야 제주가 진짜 ‘살고 싶은 섬’이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