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임과 현실 사이의 법적 공백
올해 9월, 육군은 훈련 중 모의탄 폭발 사고로 장병 5명이 부상한 사건을 계기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이는 법 제정 이후 군 조직을 포함할 수 있을지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첫 시도다. 그러나 단순한 법 적용 여부를 넘어서, 군 조직의 구조, 책임체계, 안전관리 수준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부터 시행된 법률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형사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이 법이 군사 조직, 특히 훈련과 작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이에 따라 “법적 공백”과 “현실의 괴리”가 겹치는 지점에서 심각한 논쟁이 시작됐다.
군의 가장 큰 특수성은 지휘계통 중심의 위계구조다. 일반 사업장과 달리 군에서는 “경영책임자”라는 개념을 누구로 특정할 수 있을지가 모호하다. 또 훈련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동반하며, 민간의 산업재해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지휘관에게 전가될 경우, 훈련의 실효성과 유연성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군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안전사고—폭발, 추락, 총기 사고 등—는 더 이상 단순한 우발이 아니다. 특히 민간 외주업체가 장비를 납품하거나 훈련장을 관리하는 경우, 도급 책임 관계도 발생한다.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재의 법 체계로는 어느 누구도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거나 책임이 희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의 군 적용은 단순한 법 확장 문제가 아니다. 적용 가능성을 논의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핵심 요소들이 있다. 첫째, 군사훈련과 작전 중 발생하는 사고를 일반 산업재해와 구분할 수 있는 법적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둘째, 지휘계통과 행정 책임자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여 형사책임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셋째, 실질적인 예방 중심의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군 자체의 안전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국방부는 이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제도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을 ‘적용’할지 말지를 넘어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설계다. 국민의 생명과 장병의 안전이 걸린 문제에서 더 이상 법의 사각지대는 용납되지 않는다. 동시에, 법의 잣대가 훈련과 작전 수행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경계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법과 제도의 정교화, 그리고 실효성 있는 실행력이다. 군 내부의 특수성과 국민적 요구 사이에서, 법은 단지 형벌이 아니라 신뢰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