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지평선의 추억’이 있다. 2000년 초 어느 봄날이었다.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에서 러시아와 접한 중국 국경지대 도시, 우다롄츠(五大连池)시에 갔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버스로 11시간이나 걸렸다. 버스에서 본 것은 하나 밖에 없다. 끝없이 펼쳐진 콩밭과 콩밭 사이에 병풍처럼 선 방풍림뿐이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들녘, 버스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도 언제나 제자리 같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펼쳐진 평야는 가로막힐 줄 몰랐다.
-‘지평선 너머’ 꿈을 꿀 수도 없는 세상을 접하다
- 지평선전국농악경연대회 전국축제경연중 유일한 ‘대통령배’ 대회
광활한 초록빛 카펫에 여러 개의 가로선이 그어진 듯했다. 평야를 막아선 것은 하늘과 닿아있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지평선이다. 거기에는 직선으로 늘어선 방풍림, 방풍림 따라난 농로, 거기다가 흐트러진 구름까지 지평선에 닿으면서 사라졌다. 거대한 자연이 그린 신비로운 경계선이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였다. 황홀경이다. 너무 아름다운 탓일까. 경외감이 들었다. 너무나도 멀고 아득한 탓이었을 것이다. ‘지평선 너머’는 감히 꿈을 꿀 수도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 호남평야 ‘유명’
필자의 추억을 부르는 축제가 열린다. 김제지평선축제다.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놓친 수많은 축제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필자에게 ‘지평선’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렇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김제는 우리나라의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갖고 있다. 호남평야의 중심엔 만경평야가 있다. 그곳에 김제가 있다. 황석영은 소설 《아리랑》에서 만경평야를 옛날에 ‘징게’, ‘맹갱’ ‘밋돌’이라고 불렸다면서 “호남평야 안에서도 만경벌(만경평야)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제 지평선은 사시사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신록벌판이 초록벌판으로, 다시 황금벌판으로 바뀐다. 지평선축제로 손님을 맞는 가을걷이 때 황금들판이 만들어내는 지평선은 가히 비경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제의 지평선은 중국의 들판과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만나는 특별한 곳이기 때문이다. 서해의 일몰의 최고 명당으로 알려진 진봉산 망해사에서 보는 지평선과 서해 푸른 바다와 섬, 그리고 환상적인 낙조는 한마디로 표현불가다.
여기에 더하여 김제에는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고대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다. 벽골제는 1700여 년 전 백제 비류왕 330년에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벼문화의 발상지다. 농경문화를 꽃피운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벽골제가 축제를 탄생시켰다. 축제도 김제 벽골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평선이 축제 명칭이 됐다. 지평선축제는 오는 10월 다음 달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동안 진행된다.
1999년 시작...올해 26회째 63개 프로그램과 컨텐츠 ‘풍성’
김제시민의 날 행사를 대체한 지평선축제는 1999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로 26회째를 맞는 다. 지평선축제의 슬로건은 ‘축제의 빛, 지평선을 밝히다’이다. 63개 프로그램과 콘텐츠로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지평선축제의 특징은 뚜렷하다. 농경문화의 주제가 프로그램에 잘 녹아 있다. 한국의 농경문화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석줄다리기’(정월보름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민속놀이), ‘벽골제 전설 쌍룡놀이’(농사의 근원지인 삼한시대의 최고의 저수지인 벽골제의 설화에서 착안한 전통놀이), ‘만경들노래’(추수 때 선조들이 모내기하면서 불렀던 들노래)가 대표적 사례다. 특히 벽골제 전설 쌍룡놀이와 입석줄다리기는 지역주민에 의해 발굴된 민속놀이여서 축제의 의미를 배가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이 축제의 손님이던 지역주민을 손님을 맞는 주인으로 만들었다고 틀리지 않다. 당연히 축제의 킬러콘텐츠이자 간판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대통령배 지평선전국농악경연대회, 아궁이 쌀밥 짓기(가족과 함께 소형 아궁이에서 직접 가마솥밥을 지어 먹는 체험), ‘지평선 굽스(고구마, 콩 등 지역농산물을 구워 먹는 체험)’, ‘지평선 연날리기(전국 최대 규모의 연날리기 프로젝트로 다양한 연을 동시에 날려보는 프로그램)’, 벼 수확, 새끼 꼬기, 가마니 짜기 등 한국 고유의 전통 농업문화를 직접 손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특히 지평선전국농악경연대회는 전국 축제 경연대회 중 유일한 대통령배 경연대회로 전국 지역 농악을 대표하는 팀들이 참가하여 우리 전통 농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대회다. 이 같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농업을 문화관광산업으로 성공시킨 대표적 문화축제로 인정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대한민국 명예대표 문화관광축제 중 유일하게 전통농경문화를 주제로 치러진다.
레이저, 조명, 불꽃, 멀티미디어 결합 파이널판타지쇼
축제의 주제만이 아니라 축제를 통한 ‘이탈의 쾌감’을 즐길 수 있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프로그램과 콘텐츠도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LED 대지아트’(한복을 입은 싸리콩이가 지평선의 풍성함과 정겨움을 담아 맞이하는 모습을 표현한 대지아트에 축제의 주제에 부합하는 조명을 설치해 야간경관 조성), ‘싸리콩이 곤포 아트전’(축제의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곤포 아트전으로 싸리콩이 캐릭터부터 인기 캐릭터들까지 다양한 그림들 전시), ‘지평선 파이널 판타지쇼’(화려한 축제의 밤과 대규모 야간 볼거리로 레이저, 조명, 불꽃, 멀티미디어가 결합 된 파이널 미디어 쇼) 등이 방문객의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야간 시간대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새빛광장 웰컴존’ ‘LED 대지아트’ ‘달빛보트’ ‘판타지 멀티미디어쇼’ 등도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콘텐츠다.
축제가 10월8일부터 12일까지 개최돼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연휴기간과 일부 겹치는 만큼 가족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통게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그램인 ‘한가위 가족오락관’,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민속놀이로 재해석한 ‘싸리콩이 게임’, ‘싸리콩인 달고나 만들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싸리콩이 게임’은 오는 10월 9일 국내 대항전과 이튿날 글로벌 대항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참가자에게는 기념 티셔츠와 지역 상품권이, 국내 대항전 우승자에게는 순금 1돈이 시상될 예정이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먹거리. 지역특화음식 부스에서는 김제 대표 음식과 맛 집을 선정한 ‘맛보자고 컴페티션’을 통해 김제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지평선 마중거리’에서는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는 간식을 판매한다. ‘농특산품 직거래장터’에서는 김제에서 생산된 농축수산물 원물 및 가공품, 특산품 등 판매하다. 이틀 코너를 이용하면 할인 혜택은 물론 페이백 보너스도 받을 수 있다.
추석명절과 겹쳐 순금한돈주는 가족참여프로그램도 마련
지평선 축제를 통한 지역문화 및 관광자원과 연계한 패키지 관광 상품도 다양하다. 금산사와 연계한 산사 및 농경문화 체험인 템플스테이, 전통유교 문화화 학성강당과 연계한 선비 및 농경문화체험 스테이, 외국인에게 한국농촌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농가홈스테이. 마을 회관을 이용한 지평선 팜스테이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