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선출 권력 우위론을 주장하며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가운데 여권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 지도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회동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야당에서는 삼권분립 훼손을 우려하며 이 대통령의 탄핵까지 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서도 재판 독립성 침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조 대법관 사퇴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 대통령의 재판이 재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민에 빠진 조희대 대법관. 뉴시스
고민에 빠진 조희대 대법관. 뉴시스

정청래 대표-추미애 법사위원장 압박속 대통령실 원칙 공감
- 대법원, “충분한 논의 필요원론적입장 속으론 '부글부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며 이른바 선출 권력 우위론을 앞세워 사법 개혁 필요성과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에 범여권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사퇴 공세를 시작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15조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조 대법원장은 반()이재명 정치 투쟁의 선봉장이 됐다고 밝혔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조 대법원장이 내란범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며 사퇴론에 가세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도 조 대법원장 사퇴에 대해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냐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서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 개혁 정당성 거론하며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압박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계기는 12·3 비상계엄과 조기 대선 국면 때문이다. 실제 대선을 한달 앞둔 지난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통상적으로 ‘6·3·3 규정’(선거사범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전심 후 3개월 내 선고)을 고려하면 두 달 가까이 앞당겨 나왔다. 민주당으로서는 조 대법원장이 이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박탈하기 위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의심하고 있다. 나아가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 취소 등도 한몫했다.

이로 인해 범여권은 사법 개혁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사법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은 3대 특검 종합대응 특별위원회가 내란·국정농단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발의했다. 특위 전현희 위원장은 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논란이 된 위헌 소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중점을 뒀다삼권분립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을 수용해 국회를 법관 추천에서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민주당은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에 국회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위헌 논란 차단을 위해 국회 추천 몫을 제외하기로 했다.

나아가 조 대법원장이 윤 전 대통령 탄핵 직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회동했다는 의혹을 부각하며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직후 한덕수 전 총리 등 특정 인사들과 만나 이 대통령을 알아서처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도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익명 제보 녹취록을 공개하며 같은 주장을 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조 대법원장이 44일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가 끝난 뒤 한 전 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충식(윤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집사로 알려진 인물)씨 등과 점심을 먹으며 이 대통령 사건 판결을 알아서 처리해주겠다고 말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조 대법원장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여권에서는 자진 사퇴를 하지 않을 시 탄핵소추안 발의까지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특검 수사 필요성도 거론했다. 정 대표는 “(조 대법원장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을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빨리 해야 했는지의 입장을 지금이라도 밝혀야 된다고 생각한다억울하면 특검에 당당하게 출석해서 수사를 받고 본인이 명백하다는 것을 밝혀주면 될 일이 아닌가라고 조언을 드린다고 했다.

, 삼권분립 훼손 비판하며 대통령, 재판 재개 우려

윤 대통령이 조희대 신임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이 조희대 신임대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야권에서는 여권의 사법부 때리기는 삼권분립 훼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압박,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움직임 등이 사실상 사법 통제로 귀결될 수 있고, 나아가 삼권분립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삼권분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조 대법원장이 내린 판결이 너무 빨라서 문제라고 지적할 수는 있지만 무죄로 내릴 사안을 유죄로 만든 것인지는 대통령의 결단으로 재판을 속개해 봐야만 아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했다고 탄핵을 들먹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윤 전 대통령의 내란죄 재판이 이제 7개월쯤 지났다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빨리해야 한다라고 주장할 거라면, 기소된 지 3년이 넘은 이 대통령의 지연된 공직선거법 재판은 정의롭나라며 더 황당한 건 내란전담특별재판부라는 이름의 정치재판소다. 특검 셋으로 축구 경기를 하다가 골이 안 들어가면 내 마음대로 골대를 들어 옮기겠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삼권분립이 거추장스럽다면 이재명 대통령도 개헌해서 대통령 겸 대법원장 겸 민주당 총재를 맡으면 될 일이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재판이 재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사법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금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중단됐는데, 내란특별재판부를 밀어붙이면서 혹시나 이 재판이 재개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결났기 때문에 대법원에 가서 유무죄가 바뀔 가능성은 0%”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10년 미만 양형에 대해서는 상고 이유도 대지 않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된다면 그것은 곧바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지금 공범들의 판결을 어떻게든 무죄로 만들기 위해서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탄핵 추진에 대한 법적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6헌법이 보장한 삼권 분립과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배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이 대통령의 탄핵까지 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을 물러나게 하려는 대통령실 발언 등 이 대통령의 헌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합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했다.

특히 녹취록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이 익명의 제보 녹취를 제시하며 조 대법원장에 대해 한 전 총리 등의 비밀 회동 의혹을 제기한 해당 녹취록이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제보라는 것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개인의 목소리 또는 변조되거나 AI가 만들어낸 목소리일 뿐 조 대법원장과는 아무런 관련조차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조 대법원장을 향한 정치 공작,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즉각 형사상 고발 조치하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국정조사요구서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사들 부글부글에도 여권 개혁의지 드러내

2024년 정부 신년인사회 참석한 윤 대통령, 조희대 법원장, 한덕수 총리. 뉴시스
2024년 정부 신년인사회 참석한 윤 대통령, 조희대 법원장, 한덕수 총리. 뉴시스

전국 대법원장들도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전국 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을 위한 사법부의 중대한 책무이자 시대적 과제이므로,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추진돼야 하며, 이를 위해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여당의 사법부 공격이 도를 넘어섰다는 반응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명백한 잘못이 있으면 (조 대법원장이) 사퇴하고, (사퇴를) 하지 않으면 (국회에서) 탄핵소추하면 된다. 그런데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걸 들이대면서 공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도권의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에 대한 외부의 공격은 사법부 전체의 위기다. 사법부에 대한 대통령과 여당의 인식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원이 이 대통령의 재판을 속행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여당의 입장은 완강하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은 민주당이 개혁의 첨병이 되라는 의미라며 어떤 고난에도 여당은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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