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과 전한길이 대한민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여야 모두 극단적인 유튜버 팬덤정치의 광풍이 거세다.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진행자인 김어준 씨는 막강 파워 그 자체다. 한국사 일타강사 출신의 전한길 씨는 국민의힘과 우파진영을 대표하는 스피커다. 현실정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야 대표나 유력 정치인을 넘어설 정도다. 김 씨는 사실상 진보정치의 교주라고 불릴 정도다. 전 씨 또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좌지우지하는 큰손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유튜브 팬덤정치의 명암을 짚어봤다.
- 김어준, ‘뉴스공장’ 223만명 구독자 막강파워로 진보진영의 교주 역할
- 강유정·안귀령 배출 인재 공급소…강훈식·전재수 등 고위직 부르면 콜
- 전한길, 한국사 일타강사서 비상계엄 이후 대표적 ‘우파 스피커’ 부상
- 전씨 구독자 55만명…국힘 전대 장동혁 당선에 막강 영향력
여야 모두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유튜버 팬덤정치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직접 민주주의을 구현해왔다.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현실정치에 곧바로 반영된다. 다만 최근에는 폐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보다는 혐오와 조롱이 일상이다. 때로는 정치적 파트너를 완전히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다. 이제는 여야 기성 정치인들조차 제어하기 힘든 괴물로까지 진화한 상황이다.
나꼼수후 10년간 진보의 교주…민주당, 김어준 정치적 영향력 굴복
진보진영에는 3명의 대통령이 있다는 우스개가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현직 대통령인 이재명 대통령,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 다음은 ‘충정로 대통령’으로 불리는 김어준 씨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진영 전반에 미치는 의제설정 기능이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이다. 유튜버 방송인, 딴지일보 총수, 뉴스공장 공장장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김 씨는 진보진영을 배후조정하는 실질적인 대주주 위치다.
김 씨는 90년대 말 안티조선 운동을 시작한 딴지일보 총수였다. 2012년 대선을 전후로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로 맹활약했다. 이후 천안함 폭침, 부정선거, 세월호참사 음모론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문재인정부에 이어 이재명정부 탄생 이후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거쳐 유튜브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은 친(親)민주당 성향의 유튜브 채널의 대명사가 됐다. 매불쇼, 이동형쇼, 새날 등 다양한 친여 채널 중 원톱 수준이다.
김 씨의 막강한 영향력은 민주당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의제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정치적 기능을 상실한 채 김 씨의 영향력에 굴복했다는 혹평마저 나올 정도다.
김어준 파워의 원천은 유튜브 구독자수와 민주당 의원들의 출연 횟수다. 뉴스공장 유튜브 구독자수는 223만명이다. 동시접속자수도 실시간 방송때마다 수십만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표 체포 때에는 무려 66만여명에 달했다.
김 씨의 파워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전후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과 안귀령 부대변인은 뉴스공장의 고정 패널이었다. 22대 총선을 거쳐 원내 진입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뉴스공장의 외교안보 패널이었다. 사실상 뉴스공장의 출연자가 여권 안팎의 인재공급 역할을 도맡은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공천을 희망하는 수많은 정치 지망생들이 뉴스공장의 문을 노크하기도 했다.
뉴스공장 출연진도 화려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직전,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전당대회 전후 출연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인사청문회 직전에 출연한 바 있다. 22대 총선 이후에는 현역 의원들의 고정 출연이 이어졌다. 민주당 현역 의원 3분의 2에 해당하는 무려 106명이 1회 이상 방송에 출연했다. 비상계엄 이후 군 출신인 김병주 의원과 국정원 출신인 박선원 의원은 무려 40회 이상 출연했다.
현역 의원만이 아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장관 신분으로 출연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역시 현역 의원일 때는 출연하지 않다가 비서실장 신분으로 출연한 바 있다. 현역 의원은 물론 장차관 고위직 인사마저 김 씨의 출연요청을 흔쾌히 수락했기 때문이다.
계엄탄핵 국면서 윤어게인 주도…전한길 막강파워, 전대도 공천도 좌지우지?
전한길 씨는 강성 보수진영의 상왕이다. 과거 공무원시험 한국사 일타강사로 유명했지만 사실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동안 공개된 강의를 살펴보면 진보보수를 넘나들면 중립적인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사태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 동조 영상을 올리면서 커밍아웃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전 씨는 정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이후 정치적 영향력은 그야말로 수직상승했다. 한국사 강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강성 친윤으로 변신했다. 12.3 비상계엄 옹호는 물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비판 등 보수진영의 초강경 모드를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진영의 대표 스피커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진보진영과 비교할 때 유튜브 공간에서 보수의 상대적인 열세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면서 정치적 우군도 늘어났다. 보수의 전사로 일당백의 역할을 한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았다. 탄핵 이후 윤 전 대통령과의 직간접적인 만남만도 수 차례였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이른바 ‘윤(尹) 어게인(again) 운동을 주도하면서 우파 진영의 반(反)이재명 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온라인매체 전한길뉴스도 창간했다. 구독자만도 53만여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힘 당원 가입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1대 대선 이후 본인도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정치유튜버에서 정당인으로의 변신도 시도했다.
전 씨의 정치적 힘이 극명하게 드러난 계기는 국민의힘 전당대회였다. 전대 초반 예상과는 달리 장동혁 대표 체제의 탄생이라는 파격의 연출자였다. 대선 패배 수습과 당 쇄신의 적임자로 김문수 전 대선후보를 예측한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예상과 달리 전 씨의 지지를 얻었던 장동혁 대표였다. 전당대회의 흐름을 뒤집은 것은 전 씨였다. 국민의힘 입당 순간부터 친길(친전한길) vs 반길(반(反)전한길) 논쟁이 불거질 정도였다. 당 대표를 좌우하는 전 씨의 막강 영형력에 보수진영 안팎에서는 전 씨는 다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전 씨 역시 “전한길 품은 바로 장동혁 후보가 이제 당 대표로 당선됐다”며 “전한길 품는 자가 향후 국회의원 공천 받을 수 있고 다음에 대통령까지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전 씨는 이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아스팔트 우파 일각에서는 광화문집회를 주도해온 전광훈 목사의 영향력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전 씨의 거칠 것 없는 정치적 파워는 내년 6월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할 전망이다. 실제 전 씨는 매일 1만명씩 늘어나는 전한길뉴스 유튜브 구독자들이 모두 국힘 당원으로 가입하면 공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내년 지방선거 대구시장 후부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공개 추천하기로 했다. 8월말 이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전 씨는 내년 지방선거 국면이 가까워지면 귀국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쓴소리에도 집단린치…팬덤, 내년지방선거 앞두고 전전긍긍
팬덤정치는 직접 민주주의와 가깝다. 포퓰리즘의 우려가 없지 않지만 유권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 있다. 가신정치와도 다르고 엘리트정치와도 차별점이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는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정치를 주도했다. 이후 여야 현역 의원 중심의 엘리트 정치가 대세를 이뤘지만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적이었다. 물론 노무현·박근혜정부 시절을 거치며 ‘노사모·박사모’라는 정치적 팬클럽이 등장했지만 어디까지나 엘리트 정치인의 보조재 역할이었다.
최근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특히 이념지형의 극단화와 스마트폰과 SNS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팬덤정치가 일상화됐다. 이후 여야 정치권이 기성 언론보다는 유튜브 여론에 귀를 기울이면서 팬덤정치는 그야말로 과유불급이 됐다. 가장 큰 문제점은 외부의 비판이나 쓴소리에는 무조건 귀를 닫는다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인신공격과 혐오가 넘겨난다. 거의 매일 유튜브방송, 기사 댓글, 페이스북 등 SNS 상에서는 욕설과 조롱이 난무한다. 여야 모두 모두 ‘내부의 적’을 찾아 응징에 나서는 것도 유사하다.
진보 강성팬덤은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민주당 비주류를 수박이라도 매도하거나 국민의힘과 협력하는 야합세력이라고 폄훼한다. 보수 강성팬덤은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힘 온건파를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친중좌파인 민주당으로 떠나라고 소리칠 정도다. 이러한 팬덤은 김어준과 전한길이라는 불쏘시개를 만나면서 끝없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건 아니다. 여야 모두 지나친 유튜브 팬덤의 부작용을 호소하면서 자제를 촉구하는 이들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유명한 곽상언 민주당 의원과 개혁 소장파로 유명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김어준, 전한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끊어내고 정당 중심의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이 목소리를 낸 이후에는 같은 진영 내부에서조차 집단린치에 가까운 비판과 반발이 쏘아지기도 했다.
곽상언 의원은 팬덤을 무기로 권력화한 김 씨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치적 괴물이 돼버린 김 씨의 절대권력을 꼬집은 것이다. 곽 의원은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만일 유튜브 방송이 유튜브 권력자라면 저는 그분들께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김 씨를 저격했다. 곽 의원의 충정러인 고언은 김 씨를 매개로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면 내년 선거에서 중도층 민심과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것이다.
국민의힘 쇄신파들은 전 씨와의 절연을 주장하고 있다. 전대 과정에서도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 의원과 조경태 의원은 전 씨와의 절연을 강조했지만 강성 팬덤의 극심한 비난과 조롱에 시달렸다. 소장파 의원들은 마찬가지다. 김용태 의원은 전씨 탓에 보수의 이미지가 극우로 세탁 중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탄핵 전 여러 집회에서 전 씨가 오면 중진 의원들이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며 “보수 정당이 건강해지려면 그런 분들부터 끊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의 쇄신과 부활은 부정선거와 계몽령을 주장하는 전 씨와의 단절이 일차적으로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팬덤정치는 당원들의 활발한 참여와 의사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직접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동지가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상대방을 타도의 대상만으로 삼은 이분법적 사고체계는 정치지형을 극단화시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벼랑끝 대치를 지속 중인 여야의 현 정치지형을 고려한다면 내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김어준·전한길’이라는 유튜브 팬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이들과 단절하지 못한다면 유튜브 팬덤에 대한 종속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