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법치주의 시험대 된 상고심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18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을 심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7월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가 사건을 접수한 이후 약 14개월 만의 일이다.

이번 심리에서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조성하고 은폐한 비자금이 개인 재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대법관들이 집중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이번 상고심의 결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지난 정부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란을 ‘완전히 척결되지 못한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 여러 차례 “내란 세력을 제대로 종식하지 못해 내란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라며 “내란 세력은 끝까지 척결하고, 그 자산에 대해서도 법을 바꿔서라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이 주중 대사로 내정되면서, 국민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핵심 인물로, 민주주의를 열망한 광주 시민과 국민을 무력으로 제압한 뒤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초기 “전 재산이 5억 원뿐”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수천억 원대의 비자금을 불법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전액 추징 판결을 받고 국고로 환수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자금 중 일부가 개인 재산으로 인정된 판결이 나오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SK오너 일가 이혼소송 재판 과정에서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가 핵심 증거로 등장했고, 노 관장 측은 해당 자금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SK그룹의 성장에 이바지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인정하며, 총 1조 3808억 원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비자금이 개인 재산으로 인정된 사례로 해석되며,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노 관장이 “당사자들만 아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라고 진술하며 비자금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이를 개인 재산으로 판단했다. 이는 내란 세력의 청산을 바라는 국민 정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항소심 재판부와 피고인 간의 특수관계 의혹도 불거졌다. 노 전 대통령과 항소심 재판장이던 김시철 판사의 부친 고 김동환 변호사는 학교 선후배 사이였으며, 군사정권 시절 요직을 맡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재판장의 형과 노 관장이 같은 학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특수한 인연으로 평가되고 있다.

0 내란의 후손, 주중대사 내정 논란]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이사장을 주중대사로 내정하자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내란 세력의 척결을 주장하며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내란 세력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란 세력은 끝까지 척결해야 한다. 노태우 등 내란 세력에 대한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않아 내란의 역사가 반복됐다”라며 “내란의 자손에게 불법 상속된 자산이 있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환수해야 한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 약속과는 달리, 내란 세력의 수장인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을 외교 요직에 내정한 것은 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비판이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란 세력 척결을 외쳤던 대통령이 스스로 원칙을 깬 것”이라며 “국민적 저항을 자초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5·18기념재단과 5·18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도 지난 9월 11일 성명을 통해 “학살 책임자의 직계 가족을 외교의 요직에 앉히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민 전체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이는 내란 세력을 두둔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5·18은 국가 폭력에 맞서 국민이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의 뿌리이며, 오늘의 민주 정부는 그 정신 위에 서 있다”라며 “이번 인사는 국민적 열망을 저버린 배신이자 역사의 아픔을 짓밟는 폭거”라고 밝혔다. 광주 시민을 대표하는 재단과 단체들은 내정 철회를 요구하며, “국민 앞에 사과하고 5·18 정신 존중을 약속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 시민단체 “불법 상속·비자금, 끝까지 추적해야”

내란 종식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염원하는 국민은 이번 대법원 상고심이 단순한 법리 판단을 넘어, 역사 정의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불법 비자금을 개인 재산으로 인정한다면, 이는 내란 세력에 대한 최종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특히 대통령 인사와 맞물려 “사법부마저 내란 세력에 굴복한다면 국민적 저항은 불가피하다”라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결, 불법에 대한 단호한 청산만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이번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이 이혼 소송에서 개인 재산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이다. 다시 말해, 범죄수익이 합법적 재산으로 둔갑할 수 있는지를 가리는 것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불법 자금을 개인 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은 대법원이 과거 판례와 법체계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내란 세력의 청산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군사정권 범죄수익 국고 환수 추진위원회(환수위) 역시 수차례 성명을 통해 불법 비자금의 철저한 환수와 상속세·증여세 누락 의혹에 대한 조사를 촉구해 왔다.

환수위는 “노태우 일가가 은닉·상속한 재산은 범죄수익일 뿐 개인 자산이 될 수 없다”라며 “사법부는 법에 따라 추징·환수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여론 역시 환수위의 입장에 힘을 실어, 최근 조사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비자금 전액을 철저히 조사하고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재계의 한 원로는 본지에 “이번 대법원의 판단은 단순한 이혼 및 재산분할 분쟁을 넘어, 대한민국이 내란이라는 비극적 과거와 철저히 단절하고 미래를 향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원칙을 지켜낼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사법부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역사는 다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라며 “국민은 언제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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