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호ㆍ 최민정ㆍ 김동관 등 “군 장교 선택으로 책임과 전략 보여주다”
[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지난 15일 해군 학사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다.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나 복수국적자였던 그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선택했다. 병역 의무를 피할 수 있는 길을 두고도 장교로서 군 복무를 택한 이지호 씨의 결정은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일부 재벌가 자제들의 병역 면제·비리 논란과 대비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사례로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재용 회장 장남 이지호 씨, 미국 시민권 포기하며 해군 장교 입대
-재벌 3·4세, 장교 복무로 사회 신뢰와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
지난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139기 해군 학사사관후보생 입영식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군 생활을 시작했다.
이날 오후 이 씨는 검은색 미니밴을 타고 진해기지사령부로 들어갔으며, 모친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과 여동생 원주 씨가 동행했다. 부친 이재용 회장은 업무 일정으로 아들을 배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기수 입영 인원은 남자 63명, 여자 21명 등 총 84명으로, 후보생들은 가족과 함께 생활관과 훈련장을 둘러본 뒤 입소했으며, 입영식 종료 후에는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훈련에 돌입했다.
이지호 씨는 11주간 기초군사훈련과 장교화·해군화 과정을 마친 뒤 오는 11월 28일 해군 소위로 임관할 예정이다. 소위는 위관급 장교 중 가장 낮은 계급으로, 그는 함정 통역장교로 보직이 정해졌다.
200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한국과 미국 복수 국적을 가진 그는 병역 의무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복수국적자가 사병이 아닌 장교로 복무하려면 외국 시민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해군 장교로 복무를 선택한 그의 결정은 일부 재계 오너가 자제들의 병역 면제 논란과 달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처럼 이지호 씨가 ‘미국 시민권’ 대신 ‘군 복무’를 택하며, 과거 재계 오너가 자제들의 군 복무 사례도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적 변경이나 질병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재계에서는 오히려 일반 병사보다 복무 기간이 긴 장교 과정을 선택하는 흐름이 눈에 띈다.
재계 변화의 바람, 병역 기피보단 장교 선택
국내 주요 그룹에서도 장교 출신 경영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화그룹 김동관 부회장은 하버드대 졸업 뒤 공군 통역장교로 39개월간 복무했고, 동생 김동원 사장 역시 공군 장교 출신이다.
HD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ROTC 출신으로 특공연대에서 복무했으며, 동국제강 장세욱 부회장은 육사 출신으로 10년간 복무했다. 그의 장남 장훈익 씨 역시 공군 장교로 근무하며 전통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SK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가 해군 장교에 지원해 화제를 모으면서 ‘재벌가 장교 복무’ 흐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행보를 단순히 국방의무 이행 차원을 넘어 ‘경영 수업’으로 본다. 장교 생활을 통해 조직 운영 방식과 리더십을 몸소 배우고, 위기 상황에서 판단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지호 씨의 보직인 통역장교는 국제 회담이나 다국적 훈련에 참여해 해외 고위 관계자와 교류할 기회도 많다. 실제로 김동관 부회장은 장교 시절 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통역을 맡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군 장교 경험, 경영 후계자로서 리더십과 전략적 자산
해외 재벌가의 경우 장교 복무는 더욱 확고한 전통으로 자리 잡아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은 170여 년 동안 5대째 해군 장교 복무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경영 참여의 필수 조건으로 삼는다. 미국의 록펠러 가문 후손들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장교로 참전해 사회적 존경 받았고, 페덱스 창업주 프레드릭 스미스도 해병대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기업가로 성공했다.
독일 밀레 그룹은 후계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군 장교 복무와 외부 기업 근무를 거치도록 제도화했다. 중동 왕가 또한 장교 경험을 지도자의 필수 덕목으로 여기며,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출신 인사들이 정계와 경제계 핵심으로 성장했다. 두바이와 사우디 왕세자 일가 역시 장교 복무를 거친 사례가 대표적이다.
재계에서는 재벌가 자제들의 장교 복무는 단순한 국방 의무를 넘어 경영 후계자로서 리더십과 조직 경험을 쌓는 기회로도 해석된다. 사회적 신뢰 확보는 물론 향후 경영 활동에도 긍정적인 자산이 된다고 분석한다.
특히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해야 하는 3·4세 경영자들에게는 군 장교 경험이 강력한 네트워크와 실무 감각을 제공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 조직 내 리더십 경험과 해외 고위 관계자와의 접촉 기회가 향후 사업 확장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호 씨의 선택 역시 병역 회피 대신 책임을 택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새로운 세대 재벌가 후계자들이 사회와의 신뢰를 회복하고, 동시에 글로벌 경영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에 대한 반기업 정서는 여전히 강한 가운데 병역 기피, 세습 경영, 특혜 논란 등으로 재계가 사회적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는 장교 복무와 같은 책임 있는 선택은 기업 브랜드와 후계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