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번역] 저자 김선희 / 출판사 교양인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인간 심리를 읽는 자가 관계를 지배한다.” 어린이책 전문 번역가로 잘 알려진 김선희가 신간 「공감하는 번역」을 출간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해외 아동·청소년 문학을 우리말로 옮겨온 번역가다. 「드래곤 길들이기」 「윔피 키드」 「구스범스」 등 다수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한국 독자에게 읽혀왔다. 번역한 책만 300여 권에 이르며 2009년부터는 ‘어린이책 번역 작가 과정’을 통해 후학 양성에도 힘써왔다. 이번 신간은 그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축적한 번역의 원칙과 철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사람마다 자주 사용하는 말투가 있듯 저자마다 고유의 글투가 있습니다. 특정 단어를 자신만의 의미로 활용하기도 하고 운율을 고려해 반복이나 대구, 수미상관 같은 장치를 활용하기도 하지요. 자유롭게 흘러가는 듯 보이는 글조차 그 이면에는 저자의 의도와 호흡이 담겨 있습니다” 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좋은 번역이 나올 수 없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저자가 숨겨둔 의도와 호흡을 읽어내는 일이며 그것이 바로 번역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역시 수상 소감에서 “제 작품이 번역된 언어가 28~29개, 번역가 수는 50명 정도”라고 언급하며 “번역가들은 모든 문장마다 함께 있고, 모든 문장 속에 함께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번역은 단순한 언어 해석이 아니라 저자의 세계를 독자의 언어로 다시 빚어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번역, “공감하는 일”
저자 김선희는 번역을 ‘공감하는 일’로 정의한다. 단순히 원문에 충실하거나 문법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찾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저자의 의도와 맥락, 문화적 배경까지 이해해야 진정한 번역이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번역가에게 필요한 자질로 언어 능력뿐 아니라 감각·감수성· 세밀한 관찰력을 꼽는다.
책에는 그가 직접 겪은 시행착오가 가감 없이 실려 있다. 스펠링을 잘못 읽은 실수, 고유명사를 일반명사처럼 번역한 사례, 문화적 배경을 몰라 생긴 오역 등 번역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를 통해 독자는 번역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동시에 작은 오류 하나가 전체 문맥을 흔들 수 있음을 배운다. 저자는 “전치사 하나, 문장 부호 하나에도 의미가 달라진다”며 번역가의 세심함과 책임감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판타지 소설, 고전 문학, 그림책 등 장르별 특성을 고려한 번역 전략을 소개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대상 독자에 따라 전달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 독자를 위한 책은 쉽고 리듬감 있게 풀어내야 하고 고전 문학은 시대적 어휘와 문체의 질감을 살려내야 한다. 이처럼 번역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작업이자 동시에 창작 행위다.
번역과 시대의 흐름
책 「공감하는 번역」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번역의 조건을 짚는다. 과거에는 사전과의 씨름이 번역의 전부였다면 오늘날에는 인공지능(AI) 번역기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기계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문맥과 감정, 그리고 공감이다. AI가 기계적으로 옮긴 문장은 결국 사람이 다듬어야 한다. 독자의 언어로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과정은 여전히 인간 번역가의 역할이다.
저자는 번역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시대가 변하면 언어와 문화 인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 번역본에서 흔히 보이는 성차별적 표현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심한 태도는 오늘날 다시 읽기에 불편하다. 따라서 새로운 감수성에 맞춘 번역이 필요하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 언어도 늙고, 새로운 문화가 등장한다. 번역 역시 시대의 언어와 감수성에 맞게 다시 쓰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간 「공감하는 번역」은 번역가 지망생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번역의 기본 원칙을 제시하는 동시에 번역가의 삶과 태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닌, 독자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는 창작 행위임을 환기시킨다.
결국 책은 번역가라는 직업을 넘어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소통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한 문장을 옮기는 일에도 ‘공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급속히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왜 인간 번역가가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책과 함께 읽을 만한 도서로는 저자 스테판 츠마이크의 ‘모든 운동은 책에 기초한다’, 저자 천성문의 ‘학위 논문 잘겅의 실제’, 저자 권현숙의 ‘생각이 자라는 그림책 토론 수업’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