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전북 임실을 얘기할 때 이 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967년 한국 최초로 자연 치즈를 만든 ‘임실치즈의 아버지’다. 아니 ‘대한민국 치즈의 선구자’다.
- 디디에 세스테벤스(한국명 지정환), 임실치즈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치즈의 선구자
-‘저지종 숙성치즈’ 유단백과 유지방 함량 높아 ‘영국 황실 납품용’ 유명세
임실치즈가 시작된 곳은 가난하고 척박한 산골이었다. 6·25전쟁 이후 한국인의 삶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산골 오지의 임실은 더 혹독했다. 오직 먹고살기 위해 무엇인가 해야 했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지정환 신부였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산골사람을 위해 산양 사육이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벨기에 출신이다.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산업혁명을 겪은 나라다.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 산양 사육 아이디어 출발
당시 벨기에는 섬유만이 아니라 축산업도 선진국이었다. 산양유 가공 산업이 발달해 있었다. 지정환 신부가 본 임실의 입지는 나쁘지 않았다. 사방이 구릉진 산이다. 거기에 싱싱한 풀이 자라고 있었다. 산양치즈로 삶의 기틀을 잡도록 도와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산양 2마리를 구입해 키웠다. ‘산양의 꿈’은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임실의 사람의 사람다운 삶이었다. 산양의 젖으로 만든 치즈가 꿀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하지 않았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실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지정환 신부는 치즈제조에 문외한이었다. 벨기에와 프랑스, 스위스로 기술습득을 위한 ‘순례’에 나섰다. 어느 누구도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았다. 절망은 빛이 들어오는 통로라고 했던가.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만난 한 기술자가 빛이 되어줬다. 제조 기법을 기술한 ‘한 권의 노트’를 전해줬다.
하지만 기술(記述)은 기술(技術)이 되지 못했다. 가치 있는 치즈가 되기까지 실행착오는 반복됐다. 무엇보다 기술은 도구가 만든다는 것을 몰랐다. 치즈 탱크를 약탕기나 비누통로 대체할 수 없었다. 치즈 숙성실이 없어서 굴을 팠다. 곰팡이가 굴에서 무럭무럭 자랄 수 없었다. 꿈으로 가는 길은 멀고멀었다. 실패는 멈출 줄 몰랐다. 결국 프랑스 치즈 제조전문가를 초빙해야 했다. 그의 도움이 컸다. 첫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드디어 1967년에 치즈공장도 세워졌다. 지역민의 경제적 자립 발판이 됐다. 지정환 신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지역민을 위해 내놨다. 자신의 권리를 지역 청년들과 산양협동조합에 넘겼다. 그게 치즈마을의 출발이었다. 1972년 치즈 재료를 바꿨다. 산양을 젖소로 대체했다. 임실에서 첫 젖소의 개인 소유자가 임실에서 탄생했다. 사업전환이 제시한 비전에 부응한 결실이었다.
1967년 치즈 공장 들어서 산양에서 젖소로
산양 젖 대신 소젖으로 대체했지만 가공 치즈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숙성치즈(카망베르)만을 생산했다. 쉽게 말하면 덩어리 치즈만 만들 수 있었다. 점차 치즈의 품질은 개선됐다. 생산도 안정됐다. 생산성도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 우리나라 원유(原乳) 생산량의 6.4%가 임실에서 난다. 하루 평균 치즈생산량이 5t이다. 84가구로 구성된 임실치즈마을에서 치즈와 요거트 등 다양한 유제품을 만들고 있다. 카망베르, 체다, 케소 블랑코, 모차렐라 치즈, 발효유, 무가당 요거트……. 지난해 대형 숙성치즈를 선보인데 이어 올해에는 ‘대한민국 치즈 수도’라는 명성을 더하는 신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저지종 원유를 활용한 숙성치즈를 임실치즈축제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저지종 숙성치즈’는 유단백과 유지방 함량이 높아 ‘영국 황실 납품용’으로도 잘 알려진 프레미엄 치즈다. 이들 상품은 임실치즈의 공식브랜드인 ‘임실N치즈’로 판매된다. 임실치즈의 제품은 목장형 유가공 제품이다. 공장형 유가공과는 다르다. 매일 새벽에 직접 짠 신선한 원유를 가공해 유제품을 만든다. 지정환 신부는 한국에 선교사로 온지 꼭 50년만인 2019년 선종했다. 그는 ‘임실치즈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는 그 칭송에 부담스러워했다. “누구를 위해서 한 것은 없다. 단지 그들과 함께 한 것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지난해 6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축제 즐겨
이게 임실치즈의 탄생 스토리이다. 치즈가 만들어지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충과 역경은 임실의 생명력이 되고 있다. 지정환의 치즈이야기가 임실의 희망이 되고 있다. 희망의 싹은 지정환 신부의 희생,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임실 주민의 의지였다. 희생과 의지가 만들어낸 눈물겨운 이야기가 새로운 임실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의미 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미래로 눈을 돌려야했다.
지정환 신부와 만나는 ‘과거의 기억’과 치즈로 발전하는 ‘임실의 미래’의 교집합을 찾아야 했다. 그게 2014년 시작된 임실치즈축제다. 스토리를 이벤트로 꾸몄다. 지정환 신부의 삶을 기리는 이벤트로 만들었다. 기왕 즐겁고 행복한 놀이로 만들고 이를 즐기기 위해 전국, 전 세계에 관광객이 함께하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성공했다. 지정환 신부의 이야기는 역사상품이 됐다. 반백년의 대한민국 치즈 역사가 된 임실치즈는 문화상품이 됐다.
지난해 제10회에는 60만 명에 육박하는 관광객이 축제를 찾았다. 대한민국 3대 최우수 문화관광 축제로도 선정됐다. 특히 축제 프로그램 속에 임실치즈 이야기가 녹아있다. 임실N치즈 에끌로 퍼레이드가 대표적이다. 한국 치즈의 탄생을 의미하는 지정환 신부님의 치즈이야기를 담은 조형물 퍼레이드다. 임실관내 공연단을 비롯한 군민과 관광객도 함께 하는 개방형 프로그램이다. ‘임실N치즈 숙성치즈 굴리기 & 탑 쌓기’는 숙성치즈를 굴리고 탑을 쌓아 숙성치즈 속 순금을 찾아보는 이벤트다. 임실N치즈를 맛보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경매 이벤트와 할인행사도 진행한다. 임실치즈를 시중가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만이 아니다. 임실치즈는 테마관광자원이 됐다. 지정환 신부의 발자취와 치즈 제조공정을 담은 역사문화관과 유럽형 공원인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조성, 광관 명소로 거듭났다. 축제의 핵심 무대인 임실치즈테마파크는 2023년 ‘한국 관광의 별’ 지속가능한 프로그램 부문에서 선정됐다. 지난해에만 256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임실을 찾았다고 한다.
올해 11회째인 임실치즈축제는 오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닷새 동안 열린다. 올해는 ‘임실 방문의 해’이다. 그만큼 임실만의 특별한 매력과 풍성한 즐길 거리를 담아 치즈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다. 임실의 축제 개막식은 8일 천만송이 국화가 만발한 임실치즈테마파크에서 열린다. 개막식에 이어 ‘이제 임실! 함께해요 치즈!’라는 주제로 10개 분야 70여개의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임실 곳곳에서 열린다. 당연히 임실 전체가 거대한 치즈마을로 변신한다.
올해 11회째 축제...10월8일부터 12일까지 개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임실N치즈 쭉쭉 늘려 내치즈 만들기’, ‘임실N치즈 디저트 퐁뒤체험’, ‘국가대표 임실N치즈 대형 쌀피자’ 등이다. ‘임실N치즈 쭉쭉 늘려 내치즈 만들기’는 건강, 사랑, 행복, 그리고 모든 윤택한 삶의 염원을 담아 스트링치즈 1,000m 두 줄을 한 번에 완성시키는 한마당 프로그램이다. ‘임실N치즈 디저트 퐁뒤체험’은 숙성치즈 200kg을 소재로 도시민이 간단하게 체험하고 맛보는 대규모 참여프로그램이다. ‘국가대표 임실N치즈 대형 쌀피자’ 치즈를 이용하여 대규모 쌀피자 만들기 체험 진행이다.
임실군은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지정환홀과 치즈역사문화관 입구에서 저지종 원유로 만든 숙성치즈와 무가당 요거트를 맛볼 수 있는 시식회를 연다. 기존 치즈와 차별화된 맛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숙성치즈 외에도 임실 암소한우와 12개 읍·면 생활개선회가 준비한 ‘엄마표 향토음식’에 치즈를 곁들인 퓨전간식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만나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