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고요한 습지에 활기 더하는 가을 ‘신풍갈대축제’ 열려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가을에 전남 장흥을 찾으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호수 위에 피어오르는 옅은 물안개와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은빛 물결이다. 장흥군 유치면 장흥댐 인근에 자리한 ‘신풍갈대 습지’는 이 계절이 주는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명소로 호수와 산,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은 오래된 수묵화 속 장면처럼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신풍갈대 습지는 장흥댐이 조성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습지다. 얕은 물과 비옥한 토양 덕분에 갈대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났고, 매년 가을이면 은빛 이삭이 바람에 따라 출렁이며 장관을 펼친다. 절정기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초로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 물결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습지를 거니는 매력은 단순히 풍경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서는 잔잔한 물결이 속삭이고 귀 가까이에서는 갈대 이삭들이 서로 스치는 사각거림이 들려온다. 이른 아침에는 물안개가 갈대 사이로 스며들어 신비로움을 더하고 해 질 무렵이면 붉게 물든 서쪽 하늘과 은빛 갈대, 황금빛 노을이 겹쳐지며 서정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가을의 절정을 알리듯 매년 이곳에서는 ‘신풍갈대축제’가 열린다. 축제 기간 동안 습지는 고요함 속에서도 활기를 띠며 지역 특산물 장터에서는 장흥 한우·표고버섯·바지락 등 신선한 농수산물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전통 음악 공연과 마당극,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 버스킹 무대가 마련돼 흥취를 더하며 어린이를 위한 체험 부스도 운영돼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사진 애호가들에게 신풍갈대 습지는 놓칠 수 없는 촬영 명소다.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데크길, 호수를 배경으로 빼곡히 선 갈대, 노을빛이 드리운 풍경은 어느 하나 버리기 아까운 장면이다. 특히 초겨울 무렵, 서리 내린 갈대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다른 계절에서는 만날 수 없는 특별한 순간으로 카메라에 담을 만하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는 준비가 필요하다. 습지 특성상 일부 구간은 습하고 미끄러울 수 있어 걷기 좋은 신발이 필수다. 늦가을에는 바람이 차갑게 불어 방한 대비도 필요하다. 여정에 여유가 있다면 인근 관광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장흥댐 주변에는 편백숲 우드랜드가 있어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매주 열리는 장흥 토요시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정과 풍미를 맛볼 수 있다. 갈대 습지를 중심으로 한 하루 일정이 알차게 꾸려지는 셈이다.

무엇보다 신풍갈대 습지가 주는 가치는 단순한 관광에 있지 않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힘, 그것이 이곳의 진정한 매력이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잔잔한 소리는 오래전 자장가처럼 마음을 어루만지고 고요한 호수 위 물안개는 사색을 불러온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니 은빛 갈대밭을 걷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계절은 바뀌어도 묵묵히 서 있는 갈대처럼 우리 마음에도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단단함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신풍갈대 습지는 은빛 물결 속에 계절의 이야기를 담아 해마다 가을이면 다시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바람과 갈대가 함께 부르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장흥의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보림사와 천관산을 추천한다. 보림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삼나무 숲길을 지나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서면 천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천관산은 남도의 가을 단풍 명소로도 이름 높아, 가벼운 산행 코스로 2~3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다도해와 남해안의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가을 산행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서울에서 방문한다면 KTX로 광주송정역까지 이동 후, 장흥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광주에서 약 1시간 20분, 목포에서는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 갈대 습지를 중심으로 보림사 산책과 천관산 산행까지 더하면 하루 일정은 풍성하고 여유 있게 채워진다. 은빛 갈대와 고찰의 고요, 그리고 산 정상의 탁 트인 풍광까지 더해진다면 장흥 여행은 어느 해보다 깊고 기억에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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