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겐 면죄부, 피해자에겐 또 다른 상처

국내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사인 신성자동차의 대표가 동성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최근 대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사진 = 금속노조 신성자동차 지회[]
국내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사인 신성자동차의 대표가 동성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최근 대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사진 = 금속노조 신성자동차 지회[]

[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국내 메르세데스-벤츠 공식 딜러사인 신성자동차의 대표가 동성 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최근 대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처벌 수위에 관해 노조는 권력형 범죄의 성격에 비해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을 넘어, 권력형 직장범죄의 구조적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력형 직장범죄... 피해자 보호 부재·조직 문화 허점
-조직문화 책임 문제 확산...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 책임론까지


신성자동차 대표 A씨는 지난해 1월, 광주 동구의 한 술집에서 열린 회식 자리에서 남성 직원 3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30~40대 직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피해자들의 고소로 수사를 받았으며, 사건 초기에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최근 광주지방법원 형사3단독 재판에서 A씨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변호인을 통해 “술에 취해 벌어진 일이며 성적 목적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회식 자리에서 친밀감을 표현하려다 빚어진 일”이라는 변명성 진술을 내놨다.

이런 태도는 사건의 심각성과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에 비춰볼 때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6개월과 신상정보 공개·고지, 3년간 취업제한 명령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합의 기회를 주겠다”며 선고기일을 오는 12월 10일로 지정했다. 노동조합은 “대표의 혐의가 명백한데도 회사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며 “이번 구형이 가해자에겐 면죄부, 피해자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사건 이후 신성자동차 내부에서는 피해자 보호 조치가 아닌 보복성 인사 조치가 이어졌다. 대표 성추행 피해자 중 처벌불원서를 낸 1명을 제외한 2명과 목격자 다수가 해고됐고, 폭행 피해자 및 재물손괴 신고자 역시 회사를 떠나야 했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관리자라는 이유로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를 거부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내쫓은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진 = 금속노조 신성자동차 지회[]
[사진 = 금속노조 신성자동차 지회[]

이번 사건은 노동조합 설립(2024년 4월) 이후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랐다. 노조 관계자는 “노조가 없던 시절, 직원들은 불합리한 상황을 개인적으로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사건은 억눌린 문제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상징적 계기”라고 설명했다.

-검찰 징역 6개월 구형, “책임 회피·가벼운 처벌” 비판

노조는 사건 직후 대표의 직무 정지와 내부 감사, 피해자 분리 조치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판결 확정 전까지 조치 불가’를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노조는 상급기관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중재를 요청했으나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노조 조사 결과, 신성자동차는 2018년 이후 단 한 차례 성희롱·성추행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회식문화 개선이나 익명신고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에도 회사는 “대표의 법적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노조는 “사건을 공론화한 조합원들에게 오히려 징계와 해촉을 내렸다”며 “회사가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조직 보호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피해 노동자는 현재 해고된 상태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조는 심리치료 지원과 함께 법률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으며, 일부 조합원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 복직 투쟁을 이어가는 중이다.

노조는 “피해자 명예회복과 안전한 근무환경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며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피해자 중심의 제도개선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업 지배구조와 실질 소유주 책임 문제 대두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 대표의 일탈을 넘어, 기업의 지배구조와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책임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신성자동차는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에이에스씨의 자회사로, 조 부회장은 현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업인 자문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노조는 조 부회장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가능한 기업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기업 내 인권침해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조 관계자는 “신성자동차는 효성의 경영 네트워크 안에 있는 회사로, 이번 사건은 하청이나 딜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 구조 전반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그룹 차원의 윤리경영 점검과 피해자 명예회복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29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현장을 찾아 조 부회장에 대한 책임 이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 중이다. 노조는 “조 부회장이 APEC 의장으로서 ‘포용과 인권’을 말한다면, 그 메시지는 자신이 소유한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무대에서 말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발밑의 인권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신성자동차 사건은 조직 내 권력 남용과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다시금 확인시키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향후 사건 해결과 제도 개선 여부가, 직원들의 안전과 권리 보장에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지난 2월 신성자동차 대표이사의 ▲성추행 ▲갑질 ▲부당해고 ▲노동조합 탄압에 관해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MBK)는 “독립적인 제삼자와 철저한 조사 절차 진행하겠다면서도 독립적인 사업파트너의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라며 “내부 조사에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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