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남, 의원웰빙, 기득권, 보스 중심 보수 병폐 겨냥 구조적 실험
-. ‘반탄 횡재·찬탄 횡사’ 지방선거 공천 혁신 장동혁 실험의 분수령
-. “의원 개인 중심 웰빙 보수를 다시 ‘이념 정당’으로 되돌리는 것”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 100일(12월 3일)을 앞두고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게, 그러나 적지 않은 국민의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여의도 정치분석가들은 짧게는 40여 년, 길게는 60여 년 만의 ‘한국 보수 정치 혁신’ 실험으로 보고 그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거침없는 右편향 행보’와 ‘당 체질 개선’으로 집약할 수 있는 장동혁의 ‘보수혁신실험’.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수 정치의 분기점’ ‘보수정당의 정상화’로 보는 평가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첫 호남 방문…“국민의힘, 호남과 함께 미래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지난 6일 당 대표 취임 이후 첫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에 대해 당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장 대표는 광주 방문에 앞서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 간 5월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머리 숙인다”며 “5·18 정신이 대한민국의 긍지이자 역사의 자부심이 되도록 국민의힘은 진심을 다해 호남과 동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당 강령에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과 근대화 정신을 동시에 계승한다고 명기돼 있다”며 “이 두 정신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위대한 두 기둥”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장 대표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국민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방침이다.
강성 행보에서 ‘호남 구애’로 선회
7개월가량 남은 지방선거에 대비, 전국 정당 대표의 호남 방문은 당연함에도 여러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이번 방문 결정이 직전까지 보인 강경 우파 노선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 상대의 허(虛)를 찌르는 예측 불가의 유연한 공세로 볼 수 있지만 냉탕·온탕 식 임기응변의 졸속 대응은 꿩도 닭도 놓칠 수가 있는 만큼 장 대표의 노선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와 장외투쟁 등 강경 노선을 이어가던 장 대표가 돌연 “매월 한 차례씩 호남을 방문하겠다”고 밝히며 12월 중 현장 최고위원회를 광주에서 개최할 것을 긴급 지시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30일에는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진상 규명을 여권에 요구해 국정조사 관철을 이끌었으며, 유가족을 만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달라진 행보에 대해 국민의힘 내에서는 대체로 내년 6·3 지방선거를 겨냥한 중도·수도권 외연 확장의 전략적 포석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장 대표 측 관계자는 “이번 광주 방문은 장 대표가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를 마친 뒤 강성 지지층 중심 행보에서 벗어나 중도 확장을 모색하는 신호탄”이라며 “장 대표는 ‘웰빙 정당’으로 상징되는 보수정당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혁신, 새로운 보수, 새로운 정당으로 혁신시키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역대 보수정당의 문제점은 ▲영남 ▲웰빙 ▲기득권 ▲보스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장치 고관여층이 아니어도 한국 정치에 약간의 관심만 있어서도 누구나 지적하는 것이다.
영남 보수에서 중부권 보수로 — 지역정당의 탈피 실험
장 대표의 첫 실험은 지역 기반의 탈(脫)영남화다. 오랜 기간 국민의힘의 정치적 무게중심은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에 있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보수가 전국 정당이 되지 못하면 정권교체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울과 경기, 충청권을 ‘보수의 제2 심장’으로 세우겠다는 전략 아래 ▲서울 나경원·신동욱 의원 ▲경기 김민수 최고위원·최수진 의원 ▲충청 성일종 의원 등을 중심축으로 재편했다. 비서실장도 서울 출신 박준태 의원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제 영남이 주도하고 수도권이 따라가는 시대는 끝났다. 장 대표는 ‘정당의 권력 구조’ 자체를 수도권 중심으로 옮기려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영남권 중진들의 시선은 미묘하고 심사는 복잡미묘하다. 내놓고 반대는 않지만 흔쾌하지는 않다.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하면 “장, 동핵이 저 얼라가 지금 뭐라카노?...마, 할라문 단디 해라케라” 정도 아닐까.
영남 한 중진 의원은 “수도권 확장은 필요하지만, 보수의 근간을 부정해선 안 된다”며 속도조절론을 폈다. 대구·부산 일부 당협위원장들은 “영남을 소외시키면 지지층이 흔들린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웰빙보수에서 원칙·실전보수로, “싸우지 않는 보수는 죽은 보수”
장 대표의 두 번째 실험은 ‘웰빙(Wellbeing) 정당’ 탈피다.
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은 한나라당(국힘 전신)을 가리켜 “웰빙의 반대말, 일빙(ill-being) 정당, 병든 삶의 개혁보다 병을 체념하고 살아가는 일빙 정당”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장 대표는 취임 전 “싸우지 않는 자, 배지를 떼라”라며 싸우는 사람만 공천받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27일에는 강원 지역 광역·기초의원 대상 연수에서 “(본인이) 이길 수 없다면 싸워 이길 (다른) 전사를 내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선거기획단(위원장 나경원)은 “경선 규칙 등 공천 기준에 당성을 반영하기 위한 세부 논의를 이어 나가고 있다”면서 “당에 헌신한 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공천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장 대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정치평론가 김성호 씨는 “장 대표의 핵심 목표는 의원 개인 중심의 웰빙 보수를 다시 ‘이념 정당’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며 “실용 보수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원칙 중심의 싸움을 택한 건 전략적 리스크이자 혁신의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장 대표 측은 이미 공석중인 당협위원장 지명에 나섰다. 당무감사위원회(위원장 이호선)는 현재 진행 중인 당무감사를 최대한 앞당겨 ‘당성이 부족한’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을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당내에서는 반대파, 즉 친한(동훈)계 당협위원장을 친張계로 교체하기 위한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장 대표 측은 “보수의 싸움은 이념전쟁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 전쟁”이라며 “웰빙 이미지를 벗겨내지 않으면 절대 중도층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풍 대표 보다 돌격대로, 돌 맞는 궂은일·태세 전환 대표 선두
리더십 스타일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보수정당 대표들은 궂은일, 곤란한 일은 측근들이 담당하고 대표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수습과 조정만 하는 ‘병풍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장 대표는 자신이 궂은일 처리에 직접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자폭이라는 비난이 예상됐음에도 면회를 강행한 것은 국민의힘의 태세 전환을 위한 불가피한 마지막 수순이었다는 설명이다. 김민수 최고위원에게 맡겨놓거나 면회 신청만으로도 충분했던 고역을 피하지 않고 직접 감당한 것이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특검 수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청사 앞에서 밤새워 기다린 것이나 이재명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하고 “이제 전쟁이다. 이번 시정연설이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고 전면전을 선포를 주도한 것도 이전 대표와는 확연히 다른 리더십이다.
생활정치와 청년정치의 결합, “보수의 체온을 올려라”
장 대표는 지난달 21일 '부동산 정책 정상화 특별위원회(부동산 특위)'를 발족하고 본인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10·15 부동산 대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대상으로 지목되는 청년들을 만나 “청년들을 생존 게임으로 밀어 넣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장 대표는 정부·여당 인사들의 고가 부동산 보유 및 갭투자 등 ‘내로남불’ 행태를 거론하며 “정작 서울에서 일하고 꿈을 키우는 청년은 도시 밖으로 내쫓는다. 이것이 21세기판 서울 추방령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정치인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정치·정책 아카데미 '코어 1기' 수강생 모집을 시작했다.
연구원은 총 6회에 걸친 커리큘럼을 통해 보수 정치의 가치와 비전을 실천할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만 45세 미만 청년 누구라면 지원할 수 있다. 총 100명 내외 규모로 구성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수강생을 '코어(CO·RE) 1기'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보수 대표(Conservative Representative)'라는 뜻과 함께 핵심의 의미, 특히 청년 정치인을 차세대 당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장 대표의 구상이 반영돼 있다.
나 교수는 “청년과 생활경제를 중심에 둔 보수 정치는 전통적 ‘안보·반공’ 중심 보수의 탈피”라며 “장 대표는 중도 보수와 사회적 약자보수라는 두 축을 합치려 한다”고 긍정 평가했다.
60년 보수 정치의 역사적 실험 물밑 내부 반발도 심각
나도은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는 “장동혁식 혁신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보수 정치의 DNA를 바꾸는 장기 프로젝트”라며 박정희의 산업화 보수, 전두환의 권위 보수, 김영삼의 민주 보수, 박근혜의 관리보수에 이어, 이제 장동혁은 ‘실전(fighting politics) 보수’를 내세운 다섯 번째 모델을 세우려 한다”고 분석했다.
정호성 정치컨설턴트는 “장 대표의 실험은 탈(脫) 보스정치, 탈(脫) 영남, 탈(脫) 웰빙의 삼중 전선”이라며 “성공한다면 향후 20년 한국 보수 정치의 방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 대표 주도의 혁신 작업이 속도를 낼수록 당내 불안도 커지고 있다. 특히 당무감사에 따른 당협위원장 교체와 지방선거 교체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가 ‘당심 공천’을 제1원칙으로 내세운 만큼 자칫 12.3 비상계엄 해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한 친한계, 찬탄파의 숙청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선이 절대적이다.
당 고문을 지낸 한 원로 보수 인사는 “보수개혁은 선언보다 지속이 어렵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영남 기득권 해체, 내부 민주주의 정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또 다른 반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 대표의 혁신은 표면적 이벤트가 아니다. 영남 중심의 구도, 웰빙형 정치, 보신주의, 보스정치라는 보수정당의 병폐를 동시에 겨냥한 구조적 실험이다.
나 교수는 “이번 실험이 성공하면 한국 보수정당은 ‘기득권의 보수’에서 ‘국민의 보수’로 전환될 것”이라며 “실패하면 다시 과거의 순환으로 돌아간다”고 경고했다.
내년 6·3 지방선거는 장동혁 실험의 ‘중간평가’다. 국민의힘이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장 대표의 ‘신보수 실험’은 성공으로 기록되고 차기 대권을 향한 결정적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