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EC 전후로 번진 ‘혐중 시위’… 국격 훼손·혐한 부메랑 논란
-. ‘혐중 시위’ 논란 우리 사회 민주적 자유와 혐오 규제 선택 과제
지난 9월부터 서울 명동·대림동 등 주요 도심과 관광특구를 중심으로 중국인을 겨냥한 혐오성 시위가 급증했다.
특히 10월 말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차이나 아웃(China Out)’ 구호가 확산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국격을 훼손하는 자해적 행위”라고 지적했으며 시민단체와 국민여론도 혐중 시위에 대한 비난과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시위는 소상공인 영업에 지장을 주는 자해적 행위”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국격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 윤호중 장관도 경찰위에 ‘혐오집회 대응 안건’을 직접 부의하며 경찰의 ‘엄정 대응 방침’을 확정했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만 고려한 핀셋 안건이 아니냐”는 반발이 이어졌다. 일부 위원들은 “2019년 반일(反日) 시위에는 소극적이었는데 이번만 다른 대응을 보이는 것은 일관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14배 급증한 혐중 시위… 관광산업 타격 및 사회 갈등 심화
민형배(광주 광산구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올해 서울 명동 일대 집회의 30%가 중국인을 겨냥한 혐오성 시위로 파악된다”며 “지난해 4건이던 관련 시위가 올해 56건으로 14배 이상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욕설과 폭언, 태극기 깃대 폭행 등 물리적 충돌을 일으켜 외교 마찰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관광공사는 “관광특구가 혐오 시위 장소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도 ‘관심 단계’ 모니터링에 그쳤다. 서영충 사장직무대행은 “특정국 혐오 확산은 해외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혐중 정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대만인들이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는 배지를 착용하고 한국을 여행하는 사례가 확산되며, 국내외 여론은 “혐오 확산이 한국 이미지에 타격을 준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혐오 발언 처벌법’ 추진… 양부남 의원 형법 개정안 발의
이 같은 혐중 시위의 확산 속에, 더불어민주당 양부남(광주 서구을) 의원은 지난 4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특정 국가·국민·인종을 대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 및 모욕 행위를 명예훼손·모욕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현행법은 피해자가 특정돼야만 명예훼손이 성립되지만, 개정안은 ‘특정 집단’ 전체를 명예훼손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이에 따라 ‘특정 국가 국민 전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나 모욕도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개정안은 제307조의2(특정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와 제311조의2(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를 신설해, 각각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 에 처하도록 했다.
양 의원은 “집단을 상대로 한 혐오와 허위사실 유포로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며 “국제적 신뢰를 해치고 외교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정치권 반응, “국격 수호 vs 표현의 자유 침해”
민주당은 “APEC을 앞두고 벌어졌던 ‘짱개송’과 욕설이 난무한 집회를 방치할 수 없다”며 법안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흔드는 악법” 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충형 국민의힘 대변인은 “외국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는 국민을 징역형에 처하겠다는 건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반미 시위는 놔두고 반중 시위만 막겠다는 건 편향된 검열”이라고 비판했다.
주진우(부산 해운대구갑) 의원은 7일 SNS에서 “홍콩이 중국 모독죄를 도입하며 자유를 잃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그보다 더 센 ‘중국모독처벌죄’를 만들고 있다”며 “중국을 비판했다고 감옥에 가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 내부에서도 ‘핀셋 대응’ 우려… 행안부·경찰위 갈등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경찰위에 ‘혐오 집회 대응 안건’을 직접 부의(상정) 했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위에 안건을 직접 낸 것은 2018년 김부겸 장관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이에 대해 경찰위원들 일부는 “혐중 시위만을 특정해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 침해로 비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결국 경찰은 단계별 대응 지침을 마련했다. 집회 신고 단계에서 ‘위험성 평가’를 거쳐 제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현장에서는 혐오 구호 발생 시 경고방송 후 제재하기로 했다. 동시에 온라인상 확산되는 혐중 음모론 대응을 위한 TF를 발족했다.
“혐오 현수막 불쾌하다” 79%… 중국인 혐오, 외교위기 부메랑 우려
이해식(서울 강동구을) 민주당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혐중 현수막을 본 적이 있으며 79.4%가 불쾌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또한 66.9%는 “혐중 현수막이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고 응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격을 떨어뜨리는 혐오 행위를 방치하지 않겠다”며 “공존과 존중의 사회를 위한 대응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중국대사관 100m 이내 집회를 전면 금지하고, 욕설·폭행 등 마찰 유발 행위를 제재하기로 했다.
한편,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중국의 공자학원과 시진핑 자료실을 폐쇄하라”며 반중 공세를 이어가면서, 여야의 대립은 ‘혐중 대응법’이 아닌 ‘중국을 둘러싼 정치전’ 으로 번지고 있다.
‘혐오 규제 vs 표현 자유’ 경계선에 선 한국 사회
APEC을 계기로 폭발한 혐중 시위는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 외교 관계, 정치 이념이 충돌하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양 의원의 법안은 혐오 확산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시도지만, “중국 정부 비판까지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부는 “혐오 표현의 규제가 국제 인권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정치적 검열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반발 중이다.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또 다른 갈등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혐중 시위’ 논란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민주적 자유와 혐오 규제의 경계선에서 어떤 방향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