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통증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흔한 증상이다. 계단을 오를 때 무릎이 쑤시고 앉았다 일어날 때 찌릿한 통증이 오며 날씨가 흐리면 유난히 시큰거린다면 이미 관절이 보내는 경고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증상의 가장 흔한 원인이 바로 퇴행성 무릎관절염(무릎 골관절염, Knee Osteoarthritis) 이다. 이 질환은 단순히 “나이 들어서 생기는 통증”이 아니라, 무릎 연골이 점차 닳고 염증이 생기면서 관절 구조 전체가 약해지는 만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뻐근함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절 주변 근육과 인대까지 영향을 받아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심한 경우 인공관절 수술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여러 연구에서 침치료가 이러한 무릎 통증을 줄이고 기능을 개선하는 데 의미 있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단순히 통증을 완화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관절 내부의 염증 반응과 신경 조절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회복을 돕는다는 것이다.

국제학술지 Annals of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된 “Clinical effect and contributing factors of acupuncture for knee osteoarthritis: a systematic review and pairwise and exploratory network meta-analysis” 논문은 이러한 침치료의 효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다. 이 연구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된 임상시험 44편을 검토해, 침치료가 무릎관절염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비교·분석했다. 분석 결과, 침치료는 무처치, 일상관리, 위약침(가짜침),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보다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은 효과를 보였다. 통증 완화, 기능 향상, 삶의 질 개선에서 모두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났으며, 특히 침을 실제로 자입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가짜침 간에도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연구진은 침의 진통 효과가 단순한 ‘플라시보’가 아니라 실제 생리적·신경학적 기전을 통해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논문은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 pairwise meta-analysis 와 exploratory network meta-analysis 두 가지 방식을 사용했다. 전자는 두 치료 방법을 직접 비교하는 분석이며, 후자는 여러 치료를 간접적으로 연결해 전체적인 효과 순위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침치료가 단순히 특정 약물이나 물리치료보다 낫다는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 치료법 중에서도 일관되게 유효한 치료군으로 평가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주 2~3회 이상, 최소 6주 이상 지속적으로 시행한 경우에 효과가 뚜렷했으며, 침의 깊이와 자극 강도가 적절할수록 통증 감소 폭이 컸다.

그렇다면 왜 침이 무릎 통증에 이렇게 효과적인 걸까? 그 답은 신경·혈류·면역의 삼중 작용에 있다. 무릎 골관절염은 단순히 연골이 닳는 병이 아니라, 관절 내 염증 반응과 혈류 저하, 통증 신호 과민이 함께 작용하는 복합 질환이다. 관절을 감싸고 있는 활막(synovial membrane)이 염증을 일으키면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분비되고, 이들이 신경을 자극해 통증을 일으킨다. 침은 이러한 신경·혈관·면역의 복합 반응에 동시에 작용한다. 자침 부위의 미세한 자극이 말초신경을 통해 척수와 뇌로 전달되면, 뇌는 엔도르핀(endorphin) 과 세로토닌(serotonin) 같은 진통물질을 분비해 통증 신호를 억제한다. 동시에 자극 부위의 혈류가 증가하여 염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빠르게 배출되고, 손상된 조직의 재생이 촉진된다.

또한 침은 단순히 ‘통증을 줄이는 신호’를 넘어서 관절의 자율조절 기능을 되살리는 치료이기도 하다. 관절은 뼈, 연골, 인대, 근육, 신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작동한다. 이 중 어느 한 부분의 긴장이나 순환장애가 생기면 전체 균형이 무너진다. 침은 이런 불균형을 회복시키는 자극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허벅지 앞쪽의 대퇴사두근이 과긴장된 상태에서 무릎이 아픈 경우, 해당 근육의 혈류를 개선하고 근막 긴장을 풀어주면 관절 압력이 완화된다. 실제로 연구에서도 침치료 후 무릎 주변 근육의 활성도와 관절가동범위(range of motion)가 개선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침의 효과가 단순히 국소 부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릎에 침을 놓더라도 신경 경로를 따라 뇌와 척수 수준에서 통증 신호를 조절하는 ‘중추 신경 조절 효과(central modulation)’가 함께 작용한다. 기능적 MRI 연구에서 실제 침 자극 후 통증 관련 뇌 영역(시상, 전대상피질, 편도체)의 활동이 감소하고, 진통 관련 회로가 활성화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침이 단순히 ‘통증 부위를 눌러주는’ 치료가 아니라, 뇌가 통증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방식을 바꾸는 치료라는 의미다.

이러한 신경학적 기전은 한의학의 ‘기혈순환(氣血循環)’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한의학에서는 무릎관절염을 ‘풍·한·습이 관절에 머물러 기혈의 흐름이 막힌 상태’로 본다. 침을 통해 막힌 경락을 열면 혈류가 개선되고, 염증이 줄며, 통증이 완화된다고 설명한다. 현대 생리학적으로 보면 이 말은 침 자극이 혈관 확장을 유도하고, 염증 매개물질을 조절하며, 말초신경의 과흥분을 완화한다는 뜻과 같다. 즉, 고대의 ‘기혈순환’은 현대 의학의 언어로는 ‘신경·혈류·면역의 조절’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또한 환자 개인의 특성도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다. 통증이 오래된 환자일수록, 즉 만성화된 경우에는 신경계가 이미 ‘통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회복이 더디다. 하지만 침치료는 이런 통증 기억(pain memory) 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다. 지속적인 자극이 뇌의 통증회로를 재조정하며, 과도하게 민감해진 신경세포의 흥분성을 낮추는 것이다. 이런 효과는 약물치료로는 얻기 어려운 부분이다.

결국 무릎 침치료의 본질은 ‘진통’이 아니라 ‘회복’에 있다.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결과일 뿐, 그 이면에는 혈류와 신경의 회복, 염증의 안정, 그리고 관절기능의 회생이 함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침치료는 단순한 대체요법이 아니라, 약물치료와 병행해 근본적인 재활을 돕는 중요한 치료로 평가된다. 특히 약물 부작용이나 위장장애가 있는 고령층에서도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가치가 높다.

무릎은 하루에도 수천 번을 구부리고 펴는 관절이다. 단 한 번의 계단, 한 번의 쪼그림이 쌓여 수십 년의 사용 흔적으로 남는다. 침은 그동안 쉬지 못한 무릎의 신호를 읽고, 다시 순환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치료다. 작은 바늘 하나가 무릎 속 깊은 곳의 혈류를 깨우고, 뇌로 향하는 통증 신호를 완화하며,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되살린다. 스테로이드 주사나 진통제는 통증을 잠시 멈추게 하지만, 침은 통증이 사라지는 몸을 만든다. 무릎 통증을 단순히 ‘나이 탓’으로 넘기지 말고, 그 원인을 바로잡는 치료로 접근해야 한다. 침은 그 출발점이다. 몸은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고, 침은 그 힘을 깨우는 열쇠다. 

< 수원바를정 한의원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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