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시달렸더니 스트레스로 몸도 아프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대장동 사건에서 이례적인 검찰의 ‘항소 포기’가 일어난 지 사흘 후,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이 한 말이다. 주범 김만배의 뇌물 혐의와 이해충돌방지법 혐의가 1심에서 무죄로 선고된 데다, 추징금도 예상보다 훨씬 낮았기에, 항소는 당연한 절차로 생각됐었다.
그런데 항소포기라니, 대장동 사건이 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임을 감안하면, 이번 항소포기에 윗선의 압력이 있었음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실제로 노만석은 이진수 법무차관으로부터 선택지 3개를 제시받았는데, “모두 항소포기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런가 하면 법무부 장관 정성호는 기자의 질문에 “(유 전 본부장이)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은 만큼 (1심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봐서 ‘신중하게 판단하면 좋겠다’고 했다”고 당당히 답변하기도 했다. 법무부가 노골적으로 대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얘기, 이에 굴복한 검찰 수장에게 비판 여론이 들끓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노만석은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항소포기가 세간에 알려진 직후에는 “대검에 항소를 포기하라고 한 적 없다. 대검이 알아서 정리한 것”이라는, 아무도 안 믿을 변명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려 했던 모양, 어쩌면 그는 지금 상황이 억울할 것이다. ‘시키는대로 했는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건 검찰총장이 뭐 하는 직책인지 그가 잘 모르는 탓이다.
뜬금없는 계엄 선포로 보수를 쑥대밭으로 만들긴 했지만, 윤 전 대통령이 과거 했던 말 중 새겨들을 말이 있다. 법무부장관 추미애의 검찰총장 괴롭히기가 절정에 달했던 10월 22일, 국감에 불려나간 윤석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무슨 말일까? “법무부 장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이다.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검찰의 수사와 소추가 정치인의 지휘를 받는다는 얘기”다. 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말을 꼭 들을 필요는 없다는 뜻,
그런데도 법무부가 총장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첫 번째 사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당시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수사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을 방문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행사’에 참가했고,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라는 글을 썼으니,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던 그 당시에는 좌파들조차 편을 들어주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천정배 법무장관이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를 명하자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수사지휘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사표를 던짐으로써 검찰의 명예를 지켰다. 두 번째 사례, 문재인 정부 때 법무장관을 지낸 추미애는 장관으로 재직하던 2020년, 무려 세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휘둘렀다. 하지만 윤 총장은 사표를 내지 않고 버텼는데, 그건 왜일까? 추미애가, 그리고 그녀를 장관으로 임명한 문재인 정권이 원하는 것이 자신들을 향해 수사의 칼날을 들이밀던 검찰을 무릎꿇리는 것이었기 때문,
하지만 윤석열은 끝내 사표를 내지 않고 버팀으로써 검찰의 명예를 지켰다. 노만석은 이 중 어디에 속할까? 이번 사건의 배후로 여겨지는 정성호는 현 대통령과 오랫동안 동지적 관계를 맺어온 이, 항소 포기 직후 그가 했다는 “대장동 사건과 이재명 대통령이 무슨 관계가 있냐?”는 말만 봐도 대통령이 왜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은 이런 이의 압력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함으로써 죄지은 이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노만석은 법무부 장.차관이 명령을 하달하자마자, 대장동 담당 검사들의 뜻을 묵살하면서까지 항소를 포기시켰으니, 그로 인해 검찰총장의, 그리고 검찰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자리에 욕심이 없다.” 항소 포기 이후 여론이 들끓자 노만석이 한 말이란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자리에 욕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자리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다는 것을. 어쩌면 노만석은 이번 일을 성공리에 수행함으로써 4개월간 공석이던 검찰총장 자리를 노렸으리라. 오동운이 여권으로부터 찍힌 상황이니, 차기 공수처장을 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빗발치는 비판에 노만석은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는데, 현재 상황으로 봐서 그가 좋은 자리로 영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토사구팽, 검찰을 배신한 이에게 딱 맞는 처분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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