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게으르고 산에 오르는 것을 벅차하는 필자는 ‘어차피 깊은 산중의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단풍은 내게 호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산을 오르는 대신 천년고찰을 찾아 나섰다. 오래된 사찰, 유명한 사찰치고 주변 경관이 훌륭하지 않은 곳이 없어 단풍을 일부러 찾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보는 단풍도 나쁘지는 않았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단풍도 아니었기 때문에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먼발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꽤 눈에 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주변에는 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국회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본 코너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했던 적이 있던 그 국회의원이었다.
매주 정치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필자에게 이들이 모습은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였다면, 서울의 고급 호텔에서였다면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는 만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만나고 있는 사찰은 두 사람의 연고지와는 아주 먼 곳에 위치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도 필자처럼 단순히 단풍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19일 국회에서 창당 7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1955년 해공 신익희 선생 등이 창당한 민주당을 자신들의 뿌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인 필자의 전문적 견해로 본다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이 아닐 수 없으나, 민주당이라는 이름에서 뿌리를 찾는다면야 뭐라 나무라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치학자의 견해로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를 찾아 준다면,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그들의 뿌리일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화민주당 이래 자신이 만들었던 여러 정당에서 신익희의 민주당을 전신 정당으로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김대중은 호남이 주류인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민주당은 호남에서 PK(부산·경남)로 주류가 이동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역감정 극복의 결과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마저 탄생시킴으로써 PK 전성시대를 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으로 정권을 잃고 당내 중심 세력도 이재명 대통령 중심의 비주류가 주류로 등장하였다. 손가락 혁명으로 일군 이재명 시대의 도래였다.
이인영 의원은 작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내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는데도 마지막까지 공천을 받지 못해 애태웠던 기억이 있다. 이재명 대표가 잠재적 경쟁자로 이인영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인영 의원은 그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이인영 의원도 스스로 입증하지 않으면 자신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주류로 대통령이 된 김대중, 노무현(문재인), 그리고 이재명은 모두 자신들만의 투쟁의 결과로 당을 장악했고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정치인 이인영과 최근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단풍놀이 명소인 천년고찰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유추는 해 볼 수 있다. 포스트 이재명 문제, 문재인 정부 세력들의 통합문제, 조국혁신당과의 관계 설정 등등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면, 그들도 필자처럼 단순히 단풍 나들이 삼아 이곳까지 온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이인영은 정치를 접고, 문재인은 자숙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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