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도이며 민주사회주의자인 조란 만다니의 미국 뉴욕 시장 당선은 미국의 오랜 정치적 관례를 깨트렸다. 이슬람교도 만다니는 미국의 백인과 기독교 지배 천정을 깨고 당선되었다. 만다니는 다양한 인종•종교•문화를 하나로 녹인다는 용광로 (멜팅 팟:melting pot)에 녹아들기를 거부하고 이민자 고유의 원색을 지켰다.
미국은 1607년 영국 이민자들이 버지니아 주 제임스타운에 정착하기 시작한 이민의 나라이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비롯한 각기 다른 인종, 종교, 문화 집단이 한데 모여 사는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1893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프레더릭 잭슨 터너 교수는 ‘미국 역사에서의 프런티어 의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미국인들이 서부로 개척해 가면서 미국 특유의 이념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해 갔다고 했다. 32세의 젊은 터너 교수는 미국인들이 거칠고 험준한 서부로 나가면서 자신들이 살던 유럽 고유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국적 이념•공동체를 형성해 갔다는 것이다. 이어 후세 학자들은 프런티어 개척 과정에서 ‘거친 개인주의(rugged individualism)’가 형성돼 갔다고 했다.
58년 후인 1951년 오스카 핸들린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저서 ‘뿌리 뽑힌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 사회의 특이성을 분석했다. 핸들린 교수는 이 책에서 각기 이질적인 사람들이 뒤섞여 살면서 서서히 하나의 동질적 공동체로 녹아들어 간다고 했다. 모든 걸 녹여 하나로 만드는 ‘멜팅 팟’이 된다는 것이었다. 실용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등으로 영글어갔다.
하지만 만다니의 뉴욕 시장 당선은 더 이상 미국 이민자들이 미국 공동체로 녹아들지 않고 각기 자신들의 고유 정체성을 내세우는 게 아닌가 엿보게 했다. 만다니를 지지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슬람교도 이며 인도계와 중남미 출신들이다. 물론 그의 당선은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 상승, 임대료 급등, 켜지는 빈부격차 등에 대한 저소득층의 반발에 기인한다. 만다니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연소득 100만달러 초과 소득층에게 2% 세금을 추가로 걷는 부유세 신설, 시운영 식품점 설치, 아동 무상보육제공, 공공주택 임대료 동결, 버스를 비롯한 공공서비스 무료제공 등을 내걸어 저소득층의 마음을 잡았다. 특히 그는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했다. 공산주의 폭력 혁명이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른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주목케 하는 대목은 뉴욕 시민 830만 중 60%가 인도와 중남미 이민자 본인이거나 그들의 자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계 이민자이며 아버지가 명문 컬럼비아 대학 교수 가정에서 성장한 만다니가 유세 중 자신이 무슬림임을 적극적으로 띄웠다는 것도 그가 미국의 주류가 아닌 지류로서도 다수 득표에 자신감을 보여준 사례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만다니가 히스패닉(남미계)이 다수 거주하는 구역에서 20%, 흑인 다수 거주구역에선 30% 차이로 상대편을 압도했다는 데서도 비주류의 위력을 입증한다.
만다니 당선은 터너의 프런티어와 핸들린의 ‘멜팅 팟’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나 들여다 보게 한다. 뉴욕 시민 60%를 차지하는 흑인, 라틴계, 인도계, 아시아계 등은 이제 ‘멜팅 팟’으로 녹아들기를 거부한 게 아닌가 생각게 한다. 하지만 프런티어 이주자들이 체질화한 ‘거친 개인주의’와 이질적 이민자들을 하나로 녹여낸 ‘멜팅 팟’은 계속 미국의 특성으로 작동하리라 믿는다. 또한 기독교•자유시장경제•자유민주도 소수 이슬림과 민주사회주의에 가볍게 밀려 닐리 없다. 이미 만다니의 시운영 식품점에 대해 뉴욕인들은 “소련식 배급제”냐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만다니의 이슬람과 민주사회주의도 끝내 미국 특유의 ’멜팅 팟‘에 녹아들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