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해외순방 징크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묘하게도 국내를 비우면 범여권발 악재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최근 남아공 G20정상회의 참석차 중동·아프리카 해외순방은 물론 앞선 해외순방 때도 유사한 일이 속출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해외순방 성과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익 최우선의 실용주의 외교로 합격점을 받아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와 한미·한중정상회담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대통령의 글로벌 행보 때마다 뜻하지 않게 당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는 여전하다.

이 대통령 내외 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 뉴시스
이 대통령 내외 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 뉴시스

취임 이후 대통령 외교행보 합격점관세협상 타결·APEC 성공 개최
- 해외순방 때마다 민주 강경파 돌출행동...순방성과 가리게 만드는 악재
- 비속어 파문·윤창중 성추행·기자폭행 등 역대 대통령들도 순방 징크스

[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해외순방 잔혹사는 이 대통령의 문제만이 아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 바이든 날리면사태를 비롯해 해외순방 때마다 외교참사 수준의 징크스가 되풀이됐다. 이는 문재인·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은 물론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력이 강력하다. 임기 초반이라 레임덕 우려도 전혀 없다. 다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차별화 움직임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순방정치 딜레마를 짚어봤다.

대통령, 해외순방 합격점에도 하필이면 범여권발 악재 속출

이 대통령의 외교성적표는 무난하다. 지난 6월 취임 이후 5개월여간 다양한 외교무대를 경험했다. 성과 또한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과 10월 경주 APEC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 이후에는 국정수행 지지율이 수직상승하는 효과도 맛봤다.

역대 대통령들처럼 해외순방 현지에서 발생한 외교적 참사는 사실 없었다. 물론 지난 6월 캐나다 G7정상회의에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이 무산되기도 했지만 이는 중동사태의 급변에 따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국 여파였다. 아쉬운 것은 국내 정치상황이었다. 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마다 여권 안팎의 악재들이 불거졌다. 일종의 내부 권력투쟁으로 볼만한 예민한 사안들이었다.

대표적인 게 정청래 대표의 좌충우돌 행보와 민주당 강경파로 구성된 국회 법사위원들의 돌발행동이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이후 글로벌 외교전쟁에서 한미 관세협상 타결, 핵잠수함 도입, 북미대화 중재 한중 2단계 FTA 추진과 통화스와프 추진 한일 셔틀외교 복원 등 굵직굵직한 외교적 성과를 기록했다. 다만 순방 기간 중 발생한 민주당 강경파 정치인들의 자기정치로 순방 성과가 퇴색됐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의 중동·아프리카 순방과 동시에 당원 11표제 및 100% 권리당원 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제시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을 겨냥한 것이었다. 민주당 안팎에서 즉각적인 비판이 터져나왔다. 당원 권한 강화를 명분으로 정 대표가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자기정치에 몰두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당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대의원과 당원 투표 비율을 11로 개선하겠다는 것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을 높이는 조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 강경파들이 포진한 국회 법사위원회도 말썽이다.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이 대통령이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당시 이른바 조희대 청문회의결로 논란을 빚었다. 강성 지지층은 환호했지만 이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지워냈다. 당시 당 지도부는 추미애 법사위원장에게 구두경고를 줬다. 이어 10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는 대통령 재판중지법 추진으로 논란을 빚었다. 민주당 법사위 소속 강경파 의원들은 중동아프리카 4개국 순방 도중에도 일을 벌였다. ‘대장동 항소포기사태로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고조되는 와중에 아랑곳없이 이른바 항명 검사장 18명 고발이라는 메가톤급 사고를 쳤다. 당 지도부는 사전 공감대가 없었던 돌출행동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엎지러진 물이었다. 아울러 전현희 최고위원은 위헌 시비로 사실상 논의가 중단된 내란전담재판부재설치를 촉구하면서 용산 대통령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원내사령탑인 김병기 원내대표는 발끈했다. 김 원내대표는 법사위 소속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돌출행동과 관련, “대통령 순방 기간에는 논란될 만한 일을 자제하자고 공개 당부했지만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못한 것이다. 김 원내대표는 강경 의견을 빙자해 자기 정치하려는 일부 의원들 주장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윤석열, 외교참사 수준 잔혹사역대 대통령들도 순방징크스 경험

이 대통령 유엔총회 안보리 회의 주재. 뉴시스
이 대통령 유엔총회 안보리 회의 주재. 뉴시스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국정운영의 호재다. 특히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정상회담은 취임 이후 통과 의례였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기반을 다지면서 안보경제통상·문화는 물론 글로벌 협력까지 논의했다. 미중 패권갈등 격화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다소 소원해졌지만 한중정상회담과 한러정상회담의 중요성도 이에 못지 않다. 한중정상회담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대로 한중간 경제협력은 물론 문화적 교류를 위해 중요한 행사다. 마지막으로 한일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사 문제를 직시하면서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설정을 위한 중대 이벤트였다.

순방 일정을 마치고 나면 대통령의 지지율도 수직상승했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국익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보답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순방 이후 국가원로, 여야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에게 순방 성과를 설명하고 국정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묘하게도 역대 모든 대통령들은 혹독한 순방 징크스를 경험했다. 일분일초로 허투루 쓰지 않으면서 강행군에 나섰지만 뜻하지 않은 악재로 순방 성과를 파묻히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악의 순방 징크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은 말그대로 잔혹사였다. 메가톤급 악재가 속출하면서 외교참사라는 표현마저 등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해외순방만 다녀오면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였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가 각인된 건 바로 바이든 날리면사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마다 성과를 뒤덮은 초대형 악재가 빈발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의 해외순방 일정에서는 대통령 전용기에 사적 지인이 동행하면서 비선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방문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불참 논란이 불거졌고 동남아 순방에서는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배제로 홍역을 치렀다. 이밖에 UAE순방 당시 아크부대를 찾은 자리에서 형제국의 안보는 바로 우리의 안보다. UAE 적은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는 실언으로 논란을 샀다. 아울러 명품샵 방문 등 김건희 여사의 해외순방 중 부절적한 행동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윤 전 대통령의 못지않은 징크스를 겪었다. 압권은 임기 첫 미국순방이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인턴 여직원 성추행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귀국 직후 윤 전 대변인은 즉각 경질됐고 사태 수습을 위해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임하기도 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청와대 주변에서는 한동안 금주령이 내려질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다. 2015년 중동순방 일정 중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 도심에서 피습당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중남미 순방 당시에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후폭풍으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20118월 중앙아시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의 여파로 서울시장직을 사퇴하는 격변이 발생했다. 2011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순방에 나섰을 때는 부산저축은행 로비 의혹으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201210월 미국순방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내곡동 사저 논란이 불거지면서 순방 효과는 빛이 바랬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다를 바 없었다. 취임 첫해 중국순방에서는 저자세 외교와 혼밥논란으로 비판받았다. 특히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공식일정 취재 중 중국측 사설 경호원들에게 폭행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거지기도 했다. 이 문제는 한중 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된 것은 물론 청와대 순방기자단의 항의에 문 전 대통령이 사과하기도 했다. 또 임기 중반에도 해외순방에서는 조국사태로 홍역을 앓았다. 2019년 가을 아세안정상회의 참석차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올랐지만 세간의 관심은 온통 조국 전 법무장관이었다. 국론을 양분한 조국사태 앞에서 문 전 대통령의 순방 성과 역시 빛이 바랠 수밖에 없었다. 이밖에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해외순방 과정에서 북한의 간첩선 침투 시도와 옷로비 의혹이 터지면서 곤혹을 겪기도 했다.

글로벌 외교무대 총성없는 전쟁터대통령 비서실장, 역할론 대두

이 대통령 G7 정상회의 참석해 캐나다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 대통령 G7 정상회의 참석해 캐나다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은 글로벌 외교무대의 주인공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은 물론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방위산업의 우수성과 케데헌으로 대표되는 문화파워 탓에 대한민국과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제 매달 해외순방 일정에 나서야 할 정도다. 다만 해외순방 때마다 발생하는 크고작은 돌발악재는 부담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면서 공직기강이 상대적으로 해이해지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 때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는 특별 공직기강 점검에 나섰지만 상황은 그때 뿐이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에는 아찔한 순간도 없지 않았다. 20035월 미국순방 당시에는 청와대 전화 먹통 사건이 불거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로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비서실 당직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심각한 공직기강 해이였다.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의 사례가 언제든지 재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우면 용산 대통령실은 물론 주요 부서의 공직기강이 무너질 수 있다. 당장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이 이 대통령의 부재를 틈타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 강훈식 비서실장의 역할론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정 운영과 비상 상황을 총괄해서 컨트롤해야 하는데 강훈식 실장이 자꾸 해외순방에 동행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역대정권의 관행과도어긋나는 일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왠만하면 국내에서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세간에서는 강훈식 실장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또는 충남지사 선거에 나서기 위해 이 대통령의 후원 아래 정치적 체급을 키우기 위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뼈있는 농담이 나온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글로벌 외교무대는 총성없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

이념이나 정파와 관계없이 오직 국익을 위해 역대 대통령들이 잠을 설쳐가면서 강행군에 나선 이유다. 국민들도 응원과 박수를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순방에서의 예상치 못한 악재와 국내 정치상황의 돌출변수로 순방효과가 반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대통령이 부재 중인 사이 빈발하는 민주당 강경파의 자기정치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분열과 몰락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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