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시주인가’아니면 ‘뇌물인가’”.SK에 대한 심사와 연계 10억원 시주토록 압력행사한 혐의불교계 “투명하게 이루어진 시주” 주장 속 법원 판결 주목검찰과 불교계가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토록 최태원 SK회장측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남기 전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한 법정공방 때문이다. 불교계는 ‘권선(勸善)과 적법한 시주 요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검찰은 ‘직위를 이용한 압력과 뇌물수수’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법원이 이 전위원장의 사찰 기부 권유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검찰은 지난 4월 이남기 전공정거래위원장을 구속 수감하면서 종교 기부행위를 문제삼았다. 이씨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 최태원 SK회장과 그룹측에 압력을 행사해 절에 10억원을 시주하도록 했다는 것이다.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이씨를 구속했지만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과연 SK의 10억원의 기부를 뇌물로 볼 수 있느냐는 점과 불교계의 반발 때문. 이로 인해 지난 5월 20일의 첫 공판을 시작으로 ‘종교적 권선이냐 뇌물이냐’여부에 대한 뜨거운 법정공방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우선 ‘10억원 시주에 대한 뇌물 여부’에 대해 검찰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나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검찰은 이씨가 SK측으로부터 시주 약속을 받아낸 직후인 지난해 7월 말 SK텔레콤에 대한 공정위 조사 중단 결정이 내려진 점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7월은 SK텔레콤의 KT지분매입에 따른 공정거래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이뤄졌던 시점.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2일 김창근 SK구조본부장과 만난 이씨가 SK텔레콤의 KT지분 확보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자 김 본부장이 조사중단과 선처를 부탁했고, 그 과정에서 이씨가 자신이 다니는 북한산 승가사 시주 문제를 거론하며 기부 약속을 받아냈다는 것. 이런 일이 있은 직후인 7월말 공정위의 SK텔레콤 조사가 중단됐다.

특히 이씨는 SK측이 기부를 꺼리자 8월에 다른 사람을 통해 독촉까지 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이씨가 직접 뇌물 수수는 하지 않았지만 공정위원장의 직위를 이용해 기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결론 내렸다.하지만 이씨는 이같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5월 20일 첫 공판에서 “대학 후배이며 불교신자인 최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사찰에 기부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는 KT 지분매입 조사와 무관하며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이씨는 또 “최 회장에게 사찰 시주를 요청한 것은 지난해 3월이며 SK텔레콤의 KT 지분매입으로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던 시점은 7월과는 4개월 정도 차이가 난다”며 “7월 당시 김창근 전 SK그룹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시주와 관련해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이씨측은 “SK측이 10억원짜리 수표 한 장을 이용해 영수증을 받고 연말정산에서 비용처리까지 한 돈을 뇌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실제로 승가사에 시주된 10억원은 경기도 용인시 원산면의 비구니 복지시설 공사비용과 사찰 개수, 이웃돕기 성금 등에 사용되는 등 정상적인 지출이 이뤄졌다.불교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불교계는‘검찰의 불교계 탄압,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격앙된 분위기다.이씨가 구속되자, 불교계는 일제히 ‘권선을 제3자 뇌물수수 교사로 매도하는 검찰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검찰이 진행중인 사건을 언론에 흘려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고 기부행위 자체를 봉쇄하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이번 사건을 자체 조사한 조계종은 “이씨가 불교신자로 최 회장 등에게 기부를 권한 바는 있으나 공직을 이용한 강제가 없었다”며 “당시 기부행위가 이씨와 최 회장 등 사적 채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며 승가사 신도조직과 회사간 매우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승가사와 SK는 최종현 전회장부터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에 따라 SK 사장이 직접 사찰 현장을 방문 확인했고, 사찰은 기부에 대한 답례로 SK를 위한 축원을 계속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불교계는 SK회장이 구속되는 등 상황이 변하자 SK관계자 등이 ‘강요에 의한 시주’였다고 진술하게 됐고, 검찰은 그 진술의 정황과 진의를 파악하지 않은 채 ‘뇌물’로 단정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특히 일부에서는‘정치권 음모론’까지 운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불교 신자는 “종교에 대한 기부행위를 놓고 검찰이 ‘뇌물’운운하는 것은 종교탄압”이라며 “DJ정권 당시, 언론 세무조사 등을 담당했던 이남기 전 공정위장을 구속시키기 위한 명분으로 불교계를 이용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처럼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검찰과 대립이 극한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설득력이 없는 무리한 법적용을 하고 있다”며 “아직은 검찰 수사에 대한 소명작업과 탄원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서는 2,000만 불자들의 서명작업을 벌이는 등 강력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공정위원장을 둘러싼 불교계의 ‘시주’주장과 검찰의 ‘뇌물’이라는 주장이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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