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결합 심사 아직도? 코로나19 발목 잡고 EU‧일본 눈치보고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등으로 부진했던 수주 목표량 달성을 위해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창환 기자]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등으로 부진했던 수주 목표량 달성을 위해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어디까지 왔을까.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속 조선시황이 나빠지며 수주 절벽으로 치달았던 국내 조선업이 해가 바뀌면서 숨통이 트이고 있다. 지난해 목표 수주량 달성률이 60~70%에 머물렀던 만큼 올해 수주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 현대중공업그룹이 중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을 만들면서까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진행해 온 과정은 거의 중단된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 글로벌 선사를 보유한 국가들도 한국의 기업결합 보다 자국 내 조선업 시황이 더 큰 관심이다.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도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며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경쟁 국가 승인 결정 여부 상관없이 심사 진행할 것
현대중공업그룹 및 대우조선해양, 디지털 조선소 전환 등 수주 안간힘

2019년 3월8일.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양측 노조의 거친 반발 속에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10여 년간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으나, 수차례 불발로 끝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빅3를 빅2로 만들겠다는 빅딜을 계획했다.

그간 불발됐던 인수 계획은 대부분 다른 분야에 주력 업종을 가진 그룹사 또는 기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데 초점을 맞췄었다. 이에 동종업계에서 인수 대상자를 찾아 딜을 성공시킨 셈이다.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그룹은 당시 공정거래법에 의한 기업결합 승인 문제와 방산 독점 등에 대한 법적 걸림돌을 지속 연구하며 빅딜을 성사시켰다. 

노조의 반대는 지속 이어졌으나, 노조 문제는 양측의 인수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중간지주사 탄생을 위한 현대중공업그룹의 물적 분할이 안건으로 올랐던 주주총회에서 노조원들과의 충돌이 예상된 상황에 이른바 날치기 주총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조선사 탄생을 위한 초석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스마트 조선소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대우조선해양은 스마트 조선소로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창환 기자]

순탄하지 않았던 계약 과정 지나왔는데

그 이후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소속 노조원들은 현대중공업그룹의 현장 실사를 필사즉생의 각오로 막아섰다. 노조는 연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본사를 찾아 반대시위를 이었다. 급기야 같은 해 9월 해외 원정 투쟁을 위해 벨기에 소재의 국제통합제조산업노동조합(인더스트리올)까지 찾아 힘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인더스트리올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은 세계 조선소 수주 잔량의 절대 다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재벌이 통제하는 ‘한국조선해양’은 독점 지위를 이용해 세계 조선 시장의 공정 거래와 경쟁을 제한할 것”이라고 경고한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카자흐스탄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심사에서 승인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8월에는 싱가포르가 승인을 결정했고,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됐던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 마저 심사요청 1년5개월 만에 “중국 반독점법 26조에 따른 검토 결과 두 기업 간 결합으로 인한 시장경쟁 제한이 없음”이라며 승인 판단을 내렸다. 

다만 경쟁 부문 관련법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EU는 지난해 1월 “심사 인력 동원과 현장 조사에 차질이 있다”며 한 차례 기일을 미룬 이후 2월, 6월 등으로 세 차례나 미뤘다. 코로나19에 다른 심사 난항이 이유였다. 현재는 심사 종료일을 아예 미정 상태로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선사들은 코로나19에 따른 발주 축소에 돌입했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및 대우조선해양은 수주 감소에 따른 대응 방안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주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며 조선업 구조조정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3사는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 등 환경오염물질 배출 기준에 맞춘 친환경 선박 개발과 홍보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12월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조선시황은 올 들어 이달까지 수주 실적 정상 수치를 회복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 목표 달성을 위해 글로벌 선사들과 협력 관계 확대에 나섰고, 대우조선해양은 이중연료 추진엔진(ME-GI) 적용 차세대 초대형원유운반선 등을 수주하며 첨단 디지털 기술을 선박 생산에 접목시킨 스마트조선소 전환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발주가 이어지고 있어,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수주 목표 달성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최대 조선사 탄생 계획도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양사의 결합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업계 상황 변화 등을 살펴야한다”며 “최종 결론까지 수개월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업결합 EU 및 일본 눈치만 보고 있나

앞서 2019년 기업결합심사를 마무리 짓겠다던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사장의 의지와 각오는 이미 두해를 넘겼음에도 아직 그 종점을 예정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 국내 공정위는 남아있는 EU와 일본의 승인 결과에 따라 심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EU의 심사일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우선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의 경우 2019년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등 무역분쟁과 위안부 문제의 한국 대법원 판단 등으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기업결합심사에서 긍정적인 결과만을 바랄 수가 없어 마냥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를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측에 따르면 EU심사와는 별개로 국내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자체적인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EU나 일본 등의 승인 판단 여부에 상관없이 공정위 심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심사 마무리 단계까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주춤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수주 하락에 따른 올해 목표량 달성을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한 6개 국가 가운데 한 곳만이라도 승인 반대가 나오면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또 다시 불발될 수 있기 때문에 조속한 결과를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해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계 최대 고객인 글로벌 선사들이 EU에 가장 많이 몰려 있는데다 일본과는 정부 차원에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어 양국의 결정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창환 기자 shin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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