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입찰한 유통사가 제출한 제조사의 공급 확약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유통사와 제조사 간의 입찰과 판매를 둘러싼 의심스러운 거래 정황이 나타나 관계 당국의 엄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이창환 기자, 사진=뉴시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유통사와 제조사 간의 입찰과 판매를 둘러싼 의심스러운 거래 정황이 나타나 관계 당국의 엄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이창환 기자, 사진=뉴시스]

조달청, 직접 지자체 입찰까지 단속 나섰나…입찰 취소 후 모니터링 끝났다
오미크론 확산 이후 자가검사키트 공급 나선 제조사와 유통사 간 비밀관계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시작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둘러싼 생산 및 판매와 유통 사이, 관계 부처의 암묵적인 압박과 유통업계 사이 국민들의 피해만 키웠던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관계 부처의 눈과 규제를 피해 유통사와 공급사 간의 의심스러운 거래 정황도 있어 관계 당국의 조사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 1월을 기점으로 코로나19 오미크론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대규모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일평균 수십만 명까지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부분의 자치단체나 지역 보건소를 비롯한 코로나19 진단검사소는 코로나19 진단을 받기 위한 시민들로 밤늦게까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긴급하게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한 검사가 가능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이용하는 방법은 보건소 등에서 진행하던 진단검사에 비해 정확성이 떨어지긴 했으나, 보건 인력 수급 문제와 더불어 진단검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증폭하면서 진단검사소를 늘리다 못해 차선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상태에 있던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업체의 제품에 한해서만 공식적인 판매가 가능했다. 각종 테스트기 및 진단기기 업체로 알려진 에스디바이오센서, 휴마시스, 래피젠 등 세 곳 업체의 제품이 그 대상이었다. 

정부의 결정 이후 온라인에서는 마스크 사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자가검사키트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개당 1700원~3000원 사이를 오가던 가격이 하룻밤 사이에 5000원을 넘어섰고, 웃돈을 얹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른바 유통업체의 사재기와 공급사의 물량봉쇄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조달청 등록을 통해 국내 관공서 및 교육청 등에 대한 판매만 가능케 하고 유통업체는 약국 판매가 가능하도록 창구를 조절했다. 시민들은 편의점과 약국에서만 최대 5개까지 구매가 가능했으나 개당 6000원으로 고정가격이 정해졌다. 대부분 관공서와 공공기관 및 교육청 등은 조달청을 통해 개당 2420원에 물품을 구매했고, 정부는 유통시장을 틀어막았다.

공식적으로 2월13일부터 4월2일까지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의 수출 등 유통 통제가 이어졌고, 2월13일부터 생산·주문하는 모든 키트는 20개 이상의 덕용포장으로만 가능케 했다. 특히 조달청 조달 물품은 1000개 단위 계약이 가능케 했다. 그렇게 2개월이 흐르는 동안 문제는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증가하는데 국민들에게 닿는 검사키트는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6곳 업체의 식약처 승인을 추가하고 수급 확대에 나섰지만 해결은 쉽지 않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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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은 무슨 이유로 지자체 입찰 관여했나

전국 각 기초단체와 지자체 등에서는 조달청에 주문을 넣어도 물품을 받을 수가 없었다. 지자체에서 조달청으로 직접 전화 연락을 취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지자체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허가받거나 사전 협의된 건에 대해서만 보건복지부의 공문을 첨부한 뒤 조달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실정이었다. 그 외의 주문은 전부 반려됐다. 

검사키트의 품귀 현상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줄 물품이 부족했던 울산광역시 산하 기초자치단체는 정부의 조달 관련 규제가 마무리 되는 시점을 개찰일로 정하고 지난 4월6일 나라장터에 23만 세트(총 46만 개)에 대한 공개입찰을 올렸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앞서 키트 규제(2월13일)가 있기 전 공고 가격 수준(8000원 대)으로 맞춰 2개짜리 세트에 대한 입찰기준가를 책정했다”라고 말했다. 

2개짜리 한 세트에 8700원을 기초금액으로 정하고 입찰공고가 올랐다. 수십 곳의 업체가 응했고, 그 중 A업체가 2개 세트를 3694원에 판매하겠다고 써내면서 낙찰됐다. 2개 세트가 3694원이면 1개 기준 1847원이라는 의미였다. 유통업체가 써낸 가격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가격. 공급사가 조달청을 통해 개당 2420원 기준으로 판매하는데 A업체는 어떻게 이런 가격을 써냈을까. 

조달청으로 이런 사실이 전해지면서, 담당 부서인 쇼핑몰단가계약과 관계자가 해당 지자체에 연락해 관련 사실을 캐물었다. 지자체에 따르면 조달청 담당자가 해당 입찰 건에 대해 모니터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찰 공고에 올린대로 낙찰 가격에 계약을 할지 어떨지 확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조달청 관계자의 모니터링은 해당 지자체에서 최종적으로 공고를 취소할 때까지 이어졌으나,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조달청이 지자체나 기초자치단체의 개별 입찰에 관여할 권한이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조달청이 관리하고 있는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입찰을 원칙으로 하더라도 조달청이 지자체 등 관공서의 입찰에 관여할 권한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해 일요서울이 조달청 해당 부서에 답변을 요구했으나, 즉답을 피한 상태다. 

A유통업체 입찰 가격, 공급사와의 비밀 거래?

취재 도중 A업체의 이런 입찰 참여에는 더욱 의심스러운 면이 포착됐다. 해당 지자체의 입찰 공고가 올라오던 시기는 지자체 관계자 말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가 품귀현상을 빗던 시기 직후다. 유통 업체가 23만 세트나 되던 2개짜리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를 보유하고 있기 힘든 때다. 

앞서 에스디바이오센서, 휴마시스, 래피젠 등 업체가 1개 또는 2개짜리 제품 생산을 멈추고 덕용 제품만 생산해왔고, 이후 승인받은 업체들은 덕용제품 생산·판매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2개짜리 23만 세트를 A유통업체 단독으로 지자체에 공급할 여력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상위 세 곳의 물품 총판을 한 바 있는 유통업체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23만 세트나 되는 물품을 유통업체가 조달가보다 싸게 응찰하고 최종 낙찰 됐을 것이란 사실이 업계에 전해졌다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며 “이 정도 수준의 유통 판매처가 있다는 생각은 하기 힘들다. 유통업계에 진흙탕을 만들고 물을 흐리는 일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도 “유독 싼 가격으로 올라오긴 했다. 하지만 납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라면서 “입찰에 나선 A유통 업체에 제조사가 해당 가격으로 공급이 가능하다는 확약서를 써줬다”고 말했다. 

A업체는 어떻게 해당 제조사로부터 조달청 가격보다 저렴한 1800원 대에 공급 약속을 받을 수 있었을까. 총 23만 세트 약 2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의 물품이다. 여타 유통업계 관계자들도 “공급사와의 비밀 거래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유통업계와 코로나19 국면의 국민 건강을 담보로 생산, 판매, 유통하는 시장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사정 당국의 엄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체온을 측정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체온을 측정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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