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분 내리기까지 9개월… 축소·은폐 의혹 제기 돼

식약처와 경인식약청이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 등의 GMP 위반 사항과 관련 행정 처분을 내릴 것으로 예고됐다. [이창환 기자]
식약처와 경인식약청이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 등의 GMP 위반 사항과 관련 행정 처분을 내릴 것으로 예고됐다.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이하 진단키트)를 생산 및 판매해 온 업체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행정처분이 예고됐다. 다만 진단키트 제조 과정상 위반사항에 대해 해당 업체가 소명 지연 및 이의제기에 나서면서 식약처 행정처분마저 미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행정처분이 내려지기 전 재고 처리를 위해 시간을 끄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업계의 지적도 나왔다. 특히 일부 제조 시설에 대해서는 식약처 조사 종료 후에 GMP 추가 승인을 받으면서, 추가 위반 의혹도 제기됐다. 

코로나19 PCR 검사대신 내렸던 자가검사키트 통한 코로나19 진단
식약처 GMP 위반 ‘봐주기’ 조사했나…징계 검토 중 추가 GMP 승인

지난해 4월22일 식약처는 코로나19 관련 신속항원검사키트 업체 28개소를 점검하고, GMP 등의 의무 위반이 적발된 업체에 대해 행정 처분을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9개월이 지났음에도 관련 징계가 내려지지 않고 있는 상황. 특히 최근 탈세 혐의로 국세청으로부터 19억 원의 세금 추징을 당한 래피젠의 행정처분 청문 과정 중 추가 위반 사항 적발로 조치가 더욱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에 따르면 행정절차상 청문절차 과정에서 업체 측에는 소명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럼에도 조치가 내려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인식약청 역시 추가 위반 사항 적발과 청문과정 등으로 다소 지연된 것은 인정했다. 

취재 결과, 징계 결정 청문 과정에서 업체 측 답변이 지연됐고, 식약처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 및 법적대응 등으로 마무리 검토까지 가는 게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처분을 앞두고 업체가 이의제기 시 일방적으로 징계를 내리지 못하고 추가적 소명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곧 해당 사안을 두고 업체 측이 시간 끌기에 나설 수도 있는 부분이다.

식약처 본부에서도 조속한 행정처리 요구했다

특히 식약처 본부에서도, 해당 사안의 처리가 지지부진하자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충분한 소명 기회와 이의제기는 허용되지만, 무려 9개월이 이르도록 결과 통보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 외부의 시각이기도 하다. 그 사이 지속적인 제품 판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경인식약청을 찾아 행정조치까지 시간이 지연되고 있는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다. 경인 식약청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본부로부터 서둘러 결과를 내리라는 권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종 검토 단계에서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을 뿐”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오래 걸리지 않아 조치를 내릴 것”이라며 이달을 넘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다만 지난해 12월27일 식약처가 공식 입장으로 “래피젠의 경우 답변(소명) 과정이 지연되면서 시간이 걸렸으나, 해를 넘기지 않으려 노력 중”이라고 답한 바 있어, 과연 이달 안에 해당 사안이 마무리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앞서 지난해 8월 식약처는 일요서울에 “래피젠의 GMP 위반 건으로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현장조사 완료 후 행정 처분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즉 조사를 완료하고도 처분에만 무려 5개월 이상의 기간이 지났다. 국민들이 확인하지 못한 사이 해당 업체 제품은 지속 판매됐다.

문제는 또 있다. 지난해 하반기 래피젠이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지속 생산해온 시설에 대해 추가로 GMP 승인이 이뤄진 것. GMP 관련 승인 신청 및 허가는 공식적으로 3년에 한번 정식 절차가 진행되지만 중간에 갱신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 경인식약청에 따르면 래피젠은 지난해 8월 갱신 과정을 거쳤고 이때 일부 시설의 GMP 승인이 이뤄졌다.

GMP 비인가 제조설비, 알고도 모른 척 했나?

경인식약청이 언급한 해당 시설은 GMP 승인이 내려지기 전부터 이미 코로나19 진단키트 부품 등 일부를 생산해 왔다는 진술이 나왔다. 결국 경인식약청의 행정처분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GMP 승인을 받지 않았던 시설에서 제품은 지속 생산돼 국민들에게 제공됐을 가능성이 높다. 식약처는 GMP 비인가 시설 혹은 비인가 업체 등으로의 위탁 생산 과정에 대해 몰랐을까.

지난해 1월부터 코로나19 진단키트로 불리는 자가검사기기가 정부에 의해 PCR을 대신하는 공식적인 ‘진단’ 수단으로 지목되면서, 긴급 조달을 위해 식약처 관계자가 상주하기 시작했다. 생산품의 해외 유출을 막고, 유통 경로 획일화 등 제조 공정 관리·감독을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위반 사항 적발에 대한 조치가 지지부진한 사이, 규정을 위반한 진단키트가 얼마나 많은 국민들에게 제공돼 왔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이는 비단 경인식약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4월22일 위반사항이 적발된 다수의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 중 행정처분이 제대로 내려진 곳이 없다. 결국 식약처가 처분 결과를 두고 업체 측과 조율해 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래피젠 등 코로나19 진단키트 업체가 자신들의 위반 내용을 타 업체와 비교하며, 일부 축소시켜 식약처로부터 약한 징계가 내려질 수 있도록 거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이에 경인식약청 관계자는 “만일, 추가 위반 사항이 있다면 심도 있게 확인하고 살피겠다”라며 “식약처 본부 및 관계 기관 등과 협력해 철저히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 역시 “추가 위반 사항이 있다면 검토하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오히려 GMP 규정 비판하는 진단기기 업체

식약처의 처분이 검토 단계에 있다던 지난해 12월29일 래피젠을 찾았다. 담당자는 만날 수 없었고, 래피젠의 영업 및 대관업무 담당 임원은 취재진에게 “해당 사안과 관련해 직접 보고 받은 일이 없다”라며 위반 사항 조치 관련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박재구 래피젠 대표는 취재진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표는 지난해 8월 일요서울에 “진단키트의 중요한 부분들은 GMP 상황에서 (제조)했고, 포장 같은 것은 바깥(외부 비인가 시설)에서 해도 되는데”라면서 “현재 바깥에서 하기도 한다”라고 제조 공정 과정 중 일부가 GMP 비인가 상태에서 진행됐음을 시인한 바 있다. 이어 “GMP 규정이 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라며 GMP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외부 비인가 시설을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박 대표는 “품질이 뭐... 저도 이거 20년 했는데 그 (위반될) 상황을 모르고 판단하거나 진행을 했겠냐”고 되물은 박 대표는 “GMP를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가 하는 개념”이라며 “사실 플라스틱 하우징 같은 것들은 전량 외부에서 들어온다. 그것까지 GMP를 받을 수는 없다”고 직접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GMP 위반을 일부러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일부 개념 없이 행동한 데서 오는 문제점”이라며 “그러니까 식약처에서도 (처분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여 GMP위반의 문제점을 래피젠에 근무해 온 직원들 탓으로 돌렸다.

코로나19 진단기기 관련 사항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식약처가 관련 업체들의 위반 사항을 확인하고도 행정 절차상 지연 또는 봐주기식 조사라는 의혹에 놓인 것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독감이 크게 유행하면서 진단기기업체들이 서둘러 독감 진단키트 판매에 나섰다. 식약처가 독감 진단키트를 두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조 공정에서 GMP위반 사항이 적발돼 행정 처분 대기 중이던 래피젠. 식약처는 "래피젠의 추가 위반 사항이 적발되고, 이의제기와 법적 대응 등으로 징계 절차가 미뤄졌다"고 밝혔다. [이창환 기자]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조 공정에서 GMP위반 사항이 적발돼 행정 처분 대기 중이던 래피젠. 식약처는 "래피젠의 추가 위반 사항이 적발되고, 이의제기와 법적 대응 등으로 징계 절차가 미뤄졌다"고 밝혔다.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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