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대는 계속해서 곽 경감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어 엉겨 붙었다.

“이놈아. 나라가 안 되는 것은 네놈 같은 군인 놈이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곽 경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역부족이었다.
전광대는 추경감을 번쩍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구둣발로 마구 밟기
시작했다.

“이 늙은 놈아. 오늘 내 손에 한번 뒈져봐라.”
전광대는 피투성이가 된 곽 경감을 놓아주지 않았다.
“사람 살려요!”

침대에 매달려 두 사람의 격투 장면을 보고 있던 임채숙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냥 두었다가는 자기보다 곽 경감이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철문이 덜컹 열리고 군복을 입은 청년 세 사람이 들어왔다. 맨 앞에 들어온 사람은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데, 권총을 뽑아 들고 있었다. 뒤에 서 있는 두 사람도 군 작업복을 입기는 했으나 계급장을 달지는 않았다. 세 명 모두 덩치가 크고 인물이 좋았다.

“그만 두고 모두 일어서”
권총을 든 청년이 엉겨 붙어 있는 두 사람을 군화로 툭툭 차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누구야?”

그때 낯선 침입자 세 사람을 발견한 전광대가 곽 경감에게서 떨어져 나가며 물었다. 곽 경감도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일어섰다.
“당신들 싸움 말리러 왔어. 저쪽으로 가서 벽에 기대어 서!”
권총을 가진 군복 사나이가 두 사람을 벽 쪽으로 몰아 세웠다.
“빨리 풀어주어.”
권총 군복이 지시하자 두 사람이 침대에 묶여 있는 임채숙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수갑 열쇠 좀 내놓으시지.”

임채숙의 발을 풀어준 청년이 손에 채어진 수갑을 보면서 말했다.
다른 청년이 임채숙의 스커트를 들고 가 급한대로 피에 범벅된 여자의 사타구니를 가리어 주었다.
“너희들은 도대체 뭐꼬? 어디 소속이고? 나는 합수대 전광대 준위다. 관등 성명을 대 봐!”

전광대가 세 사람의 침입자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나라에서 왔다. 당신들 같은 악마들한테서 우리 여성 동지를 구출해 가려고 왔다. 빨리 수갑 열쇠나 내 놓아! 이 권총은 별로 참을성이 없어!”

청년이 권총으로 전광대의 머리를 겨누고 말했다. 곽 경감과 전광대는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말로만 듣던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여기가 어딘 데 첩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도대체 저자들은 그렇게 경비가 삼엄한 이 곳까지 어떻게 들어왔단 말인가?
“너희들이 여기서 무사히 나갈 것 같아? 지금 너희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엄청난 짓인지 알아?”

전광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열쇠나 빨리 내 놓아.”
뒤에 있던 청년이 전광대의 사타구니를 내 질렀다.
“어이쿠!”
전광대가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청년은 그에게서 수갑 열쇠를 빼앗아 임채숙을 풀어주었다.

임채숙의 맨몸에 엉겨 붙은 핏자국을 속옷으로 대강 닦아주는 청년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그는 여자의 얼굴과 숲이 무성한 사타구니까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침착하게 닦아주었다. 그는 찢어진 옷으로 여자의 아랫도리를 우선 가린 뒤 그녀를 돌려 세워 놓고 옷을 입도록 했다.
“그 여자를 어떻게 할 작정이오?”

그때까지 점잖고 있던 곽 경감이 권총 청년을 보고 점잖게 물었다.
“우리가 데리고 갑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야만스러운 짓입니까? 당신들은 아내도 딸도 없어요? 이렇게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하다니. 독재자의 사냥개가 되어도 사냥개 나름이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정권이 유지될 것 같소? 당신들은 나중에 세상이 바로 잡힌 뒤 응당의 벌을 받게 될 것이오.”

권총 사나이가 곽 경감을 향해 조용히 말했으나 여자의 눈에는 불꽃 튀는 분노가 흐르고 있었다.
“자,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지.”
권총 든 사나이가 두 청년과 임채숙을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임채숙은 어느새 옷을 걸쳤다.

“저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키가 크고 하관이 쪽 빠진 얼굴을 한 청년이 권총 사나이를 보고 다시 물었다.
“수갑으로 저 침대에 채워놔!”
그는 임채숙이 묶여 있던 침대를 턱으로 가리켰다.
“곱게 말할 때 이리와!”
키다리 청년이 수갑을 흔들면서 말했다. 전광대가 그 청년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퍽!”

전광대가 번개처럼 뒤로 돌아 서더니 권총 사나이의 팔을 발로 찼다. 사나이는 기습에 놀라 권총을 떨어뜨렸다. 뒤이어 전광대의 두 번째 발길질이 그의 가슴팍을 공격하자 사나이는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아니, 저놈이...”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두 사나이도 손을 쓸 틈이 없었다.
전광대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막 주우려는 순간이었다. 수갑을 들고 있던 사나이가 전광대에게 덤벼들었다. 두 사람이 몇 초 동안 엉겨 붙은 것 같더니 곧 이어 전광대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전광대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곽 경감도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남은 사나이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누구 없어요?”

곽 경감이 문 쪽을 향해 목청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밖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고 곽 경감은 그 청년의 일격에 주저앉고 말았다.
곽 경감과 전광대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얼마가지 않아 두 사람은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말았다.

“빨리 수갑 채워 저 침대에 걸어 두고 나가자!”
그들은 곽 경감과 전광대의 한쪽 팔을 수갑으로 침대 스프링에 매 달아놓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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