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 경감과 전광대는 참담한 신세가 되어 거의 30분이나 지난 뒤에 구출이 되었다.
이 일로 수사본부는 발칵 뒤집혔다.

“이 멍청한 친구야. 어떻게 해서 안방에서 도둑을 맞는단 말이야.”
신 대령이 두 사람을 불러 놓고 펄펄 뛰었다. 그러나 멍청한 것을 따지면 그들보다 자체 경비 책임자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말이 합동 수사본부 조사실이지, 이 곳은 경찰의 특수수사대인 대공팀이 쓰고 있던 악명 높은 안가였다. 그러나 그 악명이나 소문보다는 훨씬 허술한 장소였다. 민가들과 사무실 건물이 섞여 있는 평범한 곳에 아무 표시도 없는 4층짜리 건물이 그곳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보통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복장의 경비 두 명이 있을 뿐이다. 좀 다르다면 경비원이 늙은이가 아니라 젊다는 것뿐이었다. 여기만 들어서면 아무도 지키거나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여러 갈래로 되어있는 복도를 지나면 문패 없는 방만 여러 개 있을 뿐이었다.

이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비밀에 붙여져 있을 뿐 아니라 감히 이곳을 불순한 생각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삼엄한 경계 같은 것이 필요 없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51. “네 여편네나 데려다...”

백장군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리기 까지 했다.
“화내지 말고 차근차근 이야기 해 보시요.”

“화내지 말라구요? 당신들이 정말 정권을 맡은 집단이오? 아니면 폭력배, 떼도둑, 깡패 집단이오? 깡패의 세계에도 최소한의 의리와 윤리가 있는 법이오. 그런데 당신들은 칼잡이 깡패만도 못한 집단이오. 도대체 죄 없는 여학생을 잡아다가 그런 야만스런 짓을 하다니. 국민들이 이 일을 알면 모두 치를 떨 것이요.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만... 그 악독한 나치 독재자들도 당신들처럼 그런 잔인한 고문은 하지 않았을 거요. 생체 실험을 했다는 일본의 731부대도 그런 못된 고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요. 순결한 여학생의...”

“이봐요. 백 장군 흥분하지 말고 내 말도 좀 들어요. 우리 만나서 의논합시다. “
“만나자구요? 흥! 한가한 이야기하고 있군요. 여하튼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요. 당신들 독재 정권이 그냥 자리만 내 놓으면 불문에 붙이려고 했지만 임채숙에게 한 짓을 보고 우리 상부에서는 결심을 달리 한 것 같소.”
“달리 하다니요?”

총리의 전화를 모니터하고 있던 장관들이 잔뜩 긴장했다.
“이제 스무 명 남아 있는 사모님들의 숫자가 한꺼번에 두 명씩 줄어들 거요. 열 번이면 끝나게 되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당신들 같은 깡패 집단과는 다시 더 협상하지 않을 것이요.”
“아니 백 장군...”
김 총리는 그가 전화를 끊으려는 줄 알고 황급히 그를 불렀다.

“오늘 오후에 당신들의 그 천인공노할 만행을 전 국민 앞에 폭로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 이내에 당신들이 이 사건의 책임 하나를 더 보태 국민 앞에 사과하고 대통령 이하 깨끗이 사임하지 않으면 하루에 인질 두 명씩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할 것이오.”
“백 장군...”
그러나 전화는 끊어지고 말았다.

“뭐야? 마누라쟁이들을 한꺼번에 둘 씩 죽인다고? 잘 한다 잘해.”
녹음된 전화 대화 내용을 다시 들어본 국무 위원들은 모두 기겁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박인덕 공보장관은 대낮부터 얼굴이 벌겋게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주정 반 진정 반 투정을 하고 있었다.
“그 녀석 전화 건 곳은 추적되었겠지?”
고일수 법무장관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오늘 오후에 국민 앞에 폭로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총리가 자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들은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민독추가 분명히 총사퇴에 대통령을 거론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백성규가 전화를 건 곳을 추적해서 알아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전화를 건 곳은 영등포 역에 있는 공중 전화였다.

내각 비상 대책위는 공포분위기라기 보다 자포자기의 심정이 지배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기들이 나서면, 이 정권의 권력자들이 칼을 휘두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온 그들이 이렇게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했다는데 대해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날 오후. 정말 그들이 우려하는 일이 또 하나 벌어졌다.
“고약한 일이 생겼습니다.”
정일만 육군 장관이 총리실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날 오후 각 언론 기관에는 프랑스인 미국 선교사 스미스 목사로부터 이상한 전갈이 왔다. 자기가 한국에 와서 관찰한 새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차나 한잔 나누자는 내용의 초청이 종교 담당 기자들에게 왔었다. 스미스 목사는 한국의 인권 문제에 관해 독한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정보기관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느닷없이 조류(鳥類)에 관한 논문 발표를 한다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았다. 초청을 받은 기자 중에는 거의 절반 정도가 오지 않았다.

그가 오차를 나누자고 한 미국계 호텔의 한 룸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약간 묘했다. 테이블 위에는 차를 마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앞 테이블에는 간단한 마이크와 녹음 장치만이 있었다. 참석한 기자들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거 미안합니다. 미쳐 준비가 안 되어서...”

약속 시간보다 십여 분 늦게 스미스 목사가 나타났다.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테이블에 앉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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