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강 형사도 개가 튼튼한 쇠줄에 묶여 있는 것을 알고 걸음을 재촉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 역시 호화의 극치였다. 화려한 색상의 카펫이 마루를 덮고 있고 벽은 우윳빛이 도는 대리석, 천장에는 오색영롱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강형사가 눈이 휘둥그래져 둘러보는데 변 사장이 다가와 자리를 권했다.
“정말 댁이 으리으리하군요.”

첫인사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강 형사는 구 연희도 제법 차려 놓았지만 지금 변사장 집을 보니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허. 웬걸요. 제 나이도 쉰이 넘었는데 그저 불편 없이 살만한 집이죠. 허허허.”
박봉의 두 경찰관의 기를 죽이는 말이었다.
“집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되는 건지요?”

“음......대지가 한 천백 평쯤 되나? 건평은 350평이지요.”
“스크랩을 하던 중이셨던가 보군요.”
추 경감이 물었다. 두꺼운 유리 탁자 위에는 스케치북과 신문들, 가위와 풀이 놓여 있었다.

“예, 마침 이때 오셨군요.”
변 사장은 대답을 하며 주섬주섬 물건들을 모아 한쪽으로 밀어 붙였다.
“묘숙의 기사를 스크랩하던 중이었습니다. 묘숙이는 역시 명사더군요. 죽어서도 온통 떠들썩하더군요.”

“아니, 그럼 죽은 기사가 난 것을 스크랩하고 계셨더란 말씀이세요?”
강 형사가 물었다.
“죽은 기사를 뭐 좋다고 스크랩하느냐 싶으신 모양이군요.”
변 사장은 씁쓸하게 말했다.

“이 스크랩은 묘숙이에 대한 모든 글들이 다 모아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 개인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변 사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유리 탁자 위의 칠보 자개함을 열어 담배를 한대 집었다.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추 경감에게 담배를 권하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자신도 담배를 피워 물고는 물끄러미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금 도금이 잘된 날씬한 맵시의 라이터였다.
“경감님. 라이터가 시원찮으신 것 같던데 이걸 쓰시죠.”
변사장이 라이터를 추 경감에게 밀어 주었다. 추경감이 두 손을 들어 만류를 했다.
“아, 아닙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보다 하시던 말씀이나 계속하시죠.”

“허허, 그러시다면......경감님, 경감님은 사람이 신문 지상에 이름이 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 때문에 방위성금이라도 낼 때 신문 한 모퉁이에 실린 자신의 이름이 그렇듯 뿌듯한 것이지요. 그런데 신문에서 인터뷰를 한다든가 글을 써달라고 한다든가 하는 일이 정치가도 문인도 아닌 사람에게 얼마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묘숙이는 그
얼마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변 사장은 먼 과거를 회상하는 듯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예쁘장한 아가씨가 하얀 사기 쟁반에 주스를 가지고 다가왔다.
“한 잔씩 드시지요.”
컵을 내려놓은 아가씨는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는 나갔다.
“따님이신가요?”
강 형사가 물었다.

“아닙니다. 뭐랄까? 말하자면 집에서 제 심부름이나 하는 아이죠. 딸들은 둘 다 시집을 보냈어요. 작은 놈은 지난 3월에 식을 올렸지요.”
“회사에는 개인 비서가 따로 있지요?”
강 형사가 웬 비서를 집에까지 두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예, 뭐 조그만 회사지만 제 직책도 직책이고, 또 이 집도 관리를 제대로 하자니 배워먹은 가정 도우미를 두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부인은......”

“묘숙이 집에 갔어요. 마누라는 집안의 소소한 일은 참 잘하지만......”
“경영이란 문제는 또 다르단 말씀이군요.”
추 경감은 주름투성이 얼굴에 다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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