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 여기서 뭐하는 짓들이야?”
곽 경감의 말에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남자는 곽 경감의 아래위를 훑어본 뒤 역습을 했다.
“당신은 누군데 이 창고에서 어물거려요?”

“난 회사에 자재를 대는 노량 기업 간부요. 재고를 좀 보러 왔었지. 근데 당신들 둘이서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신 아내 좀 불러올까?”
곽 경감의 그 말은 약효가 있었다. 금세 사나이가 기가 팍 죽었다.
“잘 몰라 봐서 미안합니다. 우리 일은 못 본 걸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짜샤 빨리 가서 일해.”
여자가 비실비실 뒷걸음질로 나갔다.
“남의 떡방아... 아니 사생활에 참여는 않겠소. 대신 한 가지만 물어 보겠소.”
곽 경감이 사나이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창고 말고 비밀 창고가 또 없어요?”

“비밀 창고라뇨?”
사나이가 어리둥절해졌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놓은 그런 곳이 있을 것 아니오?”
사나이는 곽 경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리 따라 오시오.”

곽 경감은 그가 쉽게 나오는 바람에 오히려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그는 창고를 나와 뒤로 돌아 갔다. 
긴 담장 끝에 조그만. 출입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위험! 출입 엄금’이라는 붉은

글씨가 씌어 있었다.
“여기가 뭐하는 곳인 가요?”
곽 경감이 문을 열려는 사나이를 보고 물었다.
“나도 잘 몰라요. 여긴 평소 와 본 일이 없거든요.”
사나이가 약간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시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그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비원 복장을 한 사람이 나와 고함을 질렀다. 경비원은 곽 경감과 같이 있는 사나이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 김 반장 아니시오? 근데 여기서 뭣하세요?”
김 반장이란 사나이가 멋쩍은 듯이 대답했다.

“여기 구경 좀 하려고...”
“여기 들어가시면 위험해요. 여긴 약품 창곱니다.”
그때 곽 경감이 나서서 말했다.
“알고 있어요. 나는 실은 세관에서 나온 사람인데 여기 수상한 물건이 있다고 해서...”
경비원이 곽 경감의 아래위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 보시지요.”

그가 쉽게 문을 땄다. 김 반장 이라는 사나이는 슬그머니 없어지고 곽 경감이 그를 따라 들어가 보았다. 담장 안에 그리 크지 않은 창고가 하나 있었다.
곽 경감이 사나이를 따라 들어서자 이상한 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창고 안에 들어가자 더 심했다.

창고 안에는 상자와 밀가루 포대 같은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고약한 냄새는 더욱 코를 찔러 손으로 코를 막았다.
“이게 모두 뭐 하는 약품인가요?”
“이건 모두 원단 염색하는데 쓰는 것 같았는데요. 먹으면 목숨을 잃거나 중독 되는 물건들이 많다고 하던 걸요.”

곽 경감은 더 이상 돌아보아야 소득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 곳을 나왔다.
그는 다시 남서울 이라는 공장으로 가 보았다. 
미성보다는 훨씬 큰 공장이었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흔들고 두드려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곽 경감은 공장 주변을 돌아보다가 한 곳에 조그만 옆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그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곽 경감이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넓은 마당은 폐품이 된 기계들과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공장이 폐쇄된 지 오래 된 것 같았다. 
곽 경감이 여기에 인질이 갇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곽 경감은 신경을 바싹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사무실인 듯한 작은 건물로 가 보았다. 유리창이 깨지고 거미줄이 여기 저기 늘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여기 저기 사무용 테이블들이 제 멋대로 놓여 있었다.
곽 경감이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훑어보았다. 이상하게도 먼지가 묻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용하고 있거나 얼마 전까지 사용했다는 뜻이 아닌가?
곽 경감은 더욱 긴장한 채 밖으로 나와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로 가 보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색다른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창고 안에 물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바닥에는 스치로폴이 깔려 있고 앞에 세 개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마치 임시 강의실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가 수상해.”

곽 경감은 재빨리 벽에 붙어 섰다. 
어디선가 인질을 거느린 무장 청년들이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질들을 수용한 곳이 아니라면 사교 집단 신도들이 숨어 있던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창고를 원래 목적인 창고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가 벽에 붙어 서 있었으나 인기척이 없었다. 

곽 경감은 다시 그 창고를 나와 다른 곳으로 가 보았다. 어떤 창고에는 먹고 버린 음식 쓰레기며 라면 봉지 같은 것이 가득했다. 또 어떤 곳은 침실로 사용했는지 낡은 모포가 수십 장 쌓여 있기도 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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