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BC와 로이터 인터뷰, 미국 뉴욕 방문 날 맞춰 언론보도
-. 한국 대통령 처음 '북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발언'...비핵화 지속 방침도
-. "통화스와프 없이 3,500억 달러 투자 시 1997년 외환위기 직면할 수 있어"
-. 안철수, "북한 완전 비핵화 영원히 불가능...김정은 핵 보유 채 통일 멀어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보도된 영국 BBC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80회 유엔총회 방문에 앞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보였다.

지난 19일 BBC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면서 ‘비핵화’ 대신 ‘핵 동결’을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했고, 같은 날 로이터 인터뷰에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투자에 대해 통화 스와프가 전제되지 않는 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한반도 안보 지형과 한미 동맹 등 가장 민감한 현안을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어서 국내외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9일 BBC, Jean Mackenzie 서울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진행이 된다면) 북한 핵 프로그램 동결에 대한  '트럼프-김정은' 간의 합의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BBC 캡처]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9일 BBC, Jean Mackenzie 서울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진행이 된다면) 북한 핵 프로그램 동결에 대한  '트럼프-김정은' 간의 합의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사진=BBC 캡처]

■ 북한 핵 보유 인정…“비핵화 대신 동결이 현실적 대안”

이 대통령은 BBC 인터뷰에서 “북한은 매년 15~20개의 핵무기를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며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전제에서, 당장은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궁극적 목표를 향한 헛된 시도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 일부라도 성과를 낼 것인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2022년 ‘핵보유국’을 자처하고, 영구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한국 정부 수반이 처음으로 북한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발언으로 평가된다.

기존 한국 정부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기조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달 아시아·태평양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할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다시 시도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는 “두 정상은 일정 부분 상호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다시 만난다면 한반도와 세계 안보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 북·중·러 밀착에 대한 경계…“한국은 진영 갈등 최전선”

이 대통령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참석한 장면을 언급했다.

그는 "중국·러시아·북한이 한편으로 긴밀히 협력하고, 한국·미국·일본이 또 다른 한편으로 협력을 심화하는 악순환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것은 한국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가 두 개의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한국은 국경 바로 옆에 중국과 러시아를 둔 불안정한 위치”라며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두 진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며 "군사적 긴장 악화의 나선에서 벗어나 평화적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제80차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 3박 5일간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이 대통령은 23일 총 196개국 정상 중 일곱 번째 순서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24일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직접 주재하게 된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안보리 의장국을 맡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유엔이 평화를 창출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며 “안보리 개혁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강화를 거부하며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현실을 인정한 발언이다.

■ 통화 스와프 없이는 투자 불가…“1997년 외환위기 악몽 우려”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두고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만약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7월 한미 양국은 미국의 고율 관세를 완화하는 대신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구두 합의를 했으나 세부 협상에서 상업적 타당성과 투자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투자여야 한다는 데는 합의했지만 미국 측 협의안은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며 “합리성을 담보하는 세부 합의가 가장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불리한 조건을 설명하기도 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두 배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보유하고 있으며, 엔화는 국제 통화로 인정받고 있고, 이미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안전장치가 없어 위험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9일 Josh Smith, Hyunjoo Jin and Heejung Jung 서울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로이터 캡처]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9일 Josh Smith, Hyunjoo Jin and Heejung Jung 서울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인출해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로이터 캡처]

■ 관세 협상 시한과 한미 동맹의 시험대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과 유사한 합의를 한국에도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고율 관세 부과를 지속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혈맹 간에는 최소한의 합리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이 불안정한 상황은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자금을 본인이 직접 선정하고 미국이 통제하겠다고 밝히며 협상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의 국방 기여를 확대하는 데 이견이 없다"라면서도 “안보 문제와 통상 문제는 분리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통상 협상이 얽히는 것을 경계했다.

주한미군은 현재 약 2만 8,500명이 주둔 중이며, 미국은 방위비 증액을 지속 요구하고 있다.

■ 현대차 이민단속 사태와 한미 신뢰

로이터 인터뷰에서는 미국 내 현대차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단속 사태도 언급됐다. 300명 이상의 한국인 노동자가 구금되며 양국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대통령은 “한국인들이 수갑에 채워진 모습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며 “그러나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라 과잉 법 집행의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사과했고 합리적 대책을 모색하기로 했다”며 동맹 신뢰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2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김혜경 여사와 출국하며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2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김혜경 여사와 출국하며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 국내 정치권 반응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 정치권에서도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현실을 직시한 발언”이라고 옹호했다. 민주당 대변인은 “북한의 핵 보유는 이미 기정사실이 된 상황에서 무조건적 비핵화만을 고집하는 것은 공허하다”며 “동결을 통해 긴장을 관리하고, 외교적 공간을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가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영원히 불가능한 길로 들어섰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김정은은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모든 목표를 달성하게 되고, 한반도의 통일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여야의 시각차는 뚜렷했다.

민주당은 “통화 스와프 없는 무리한 투자 요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했지만, 국민의힘은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하면 한미 동맹이 흔들리고 경제에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의당은 또 다른 목소리를 냈다. 한 의원은 “동결을 넘어 평화 체제 논의까지 병행해야 한다”며 “남북 관계 개선과 군비 축소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제 전문가 평가

국제 안보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핵 동결’ 발언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 현실주의적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는 ‘핵 없는 한반도’라는 이상 대신, ‘핵 관리’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도쿄대의 한 교수는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과 미국 내 강경파에게 ‘한국은 안보 파트너로서 불안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동맹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경제 전문가들도 경고를 보냈다.

뉴욕의 한 금융 분석가는 “한국이 통화 스와프 없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경우, 외환시장이 불안정해지고 단기간 내 외환위기 수준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대통령의 경계심은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이 대통령의 BBC·로이터 인터뷰는 한국 외교·안보·경제 전략에서 두 가지 키워드를 드러냈다.

하나는 북한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동결 관리’를 통한 긴장 완화와 대화 재개의 모색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무리한 투자 요구에 대해 통화 스와프 등 안전장치 없이는 응할 수 없다는 경제 현실주의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강화하려 하면서도, 국내 경제 안정과 안보 균형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인터뷰다.

“민주주의 한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유엔총회 연설로 세계에 전하려는 그는, 동맹의 틀 속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실용주의적 행보를 택하고 있다.

국내 정치권과 국제 전문가들의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향후 한반도 전략의 전환점이자, 동맹과 경제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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