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가마솥 같은 무쇠 욕조에는 김이 나는 물이 절반 쯤 차 있었다. 헌병대의 당번 사병들이 어느 틈에 준비를 해 놓았다.

욕실로 끌려간 은실은 어쩔 줄 몰라 얼굴만 벌겋게 된 채 옆으로 몸을 꼬며 서있었다.
미야자끼는 욕조 밖에 선 채 물을 퍼서 자기 몸에 끼얹었다. 그리고 다시 은실을 쳐다보았다.
"뭐해요. 빨리 옷 벗고 들어와 등 좀 밀어 달라니까. 옷부터 벗어요. 내 앞에서 처음 옷 벗는 것도 아니잖아요. ㅎㅎㅎ."
은실은 점점 난감해졌다.
'...."

'여기까지 와서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참자. 이렇게 해야 기생 족보에서 빠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벌거벗은 왜놈의 등 좀 밀어 주었다고 해서 창녀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
은실은 자신을 달랬다.
"은시루 상"

미야자끼가 다시 독촉했다.
"등만 밀어주면 되는 것이지요?"

은실은 결심하고 오비(허리끈)를 풀었다. 일본 여자 옷 기모노는 벗기가 쉬웠다.
항상 싸움터의 한 복판에 있는 사무라이들이 아내와 잠자리도 번개처럼 해치워야 할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남자가 요구하면 일 치룰 태세를 취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의 옷을 벗기 쉽게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여자 기모노의 등에 메고 있는 베개 같은 것은 그것을 펴서 일 할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도 한다.

은실은 남자의 벌거벗은 모습 좀 보았다고 해서 정절을 잃는 것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두 번, 세 번 다짐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하야꾸!"

미야자끼가 다시 독촉했다.
은실은 기모노를 벗어서 천천히 접었다. 들고 나가서 욕실 앞에 두고 다시 들어왔다.
미야자끼는 은실의 벗은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은실의 나신을 한 구석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은실은 미야자끼의 느끼한 시선이 자기의 온 몸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은실은 태연해지려고 애를 썼다. 한 손으로는 샅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젖가슴을 가렸다. 그러나 가슴을 가린 손은 터질 듯한 팽팽한 유방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미야자끼는 황홀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은실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감상하고 있었다.
은실은 갑자기 커진 미야자끼의 남성을 흘깃 보자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 까지 부끄럽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싹 가시었다.
"내 마라, 어때요?"

은실이 자기 거시기를 흘깃 훔쳐 본 것을 눈치 챈 미야자끼가 짓궂은 질문을 했다.
'마라'(魔羅)란 남자의 상징을 이르는 일본의 고어다.
"마라가 뭐예요?"

은실이는 눈치가 있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면서 물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말이 조선에도 있던데..."
미야자끼는 거시기를 슬쩍 들어보였다. 은실은 얼굴을 돌려버렸다.
"욕탕에 들어가 돌아서면 등을 밀어 드릴게요."
이번에는 은실이 명령을 했다.

은실은 남자의 벗은 몸을 보고도 자신감이 생겼다.
'남자란 여자 앞에서는 별 존재가 아니야. 동물과 다를 것이 없어.'
은실은 혼자 무슨 철학이라도 깨달은 기분이었다.
"아, 그러지."

미야자끼는 성큼성큼 걸어서 욕조로 들어가 등을 내밀었다.
은실은 미야자끼의 등에 물을 끼얹은 뒤 비누질한 수건으로 등을 천천히 밀었다. 손이 직접 미야자끼의 등에 닿지는 않았다. 

한참동안 눈을 지긋이 감고 있던 미야자끼가 입을 열었다.
"수건질만 하지 말고 손바닥으로 좀 박박 밀어 봐요."
은실의 피부가 직접 몸에 닿지 않은데 대한 불만이었다.
은실은 수건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등을 밀었다. 탄탄한 남자의 근육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이제 시원해요?"

은실은 마음의 여유까지 가지게 되었다.
"은시루 상의 손은 천사처럼 부드럽구먼. 하하하"
미야자끼는 무엇이 웃으운지 말끝마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등은 그쯤하고 가슴도 좀 밀어주지."
미야자끼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은실을 향해 정면으로 돌아섰다.
"어머!"
 
33. 이 선을 넘으면 짐승

갑자기 돌아서서 은실을 바라보는 바람에 은실이 움찔했다. 정면으로 자신의 나신이 노출되었다. 두 손으로 아래를 황급히 가렸다.
"하하하. 다 보았는데 새삼스럽기는..."
"그래도 안 되요. 눈을 감든지 돌아서든지."
은실은 얼굴이 빨개졌다. 황급히 두 손으로 그곳을 가리려다 다시 한손을 그곳을 가리고 한팔로는 젖가슴을 가렸다.

"와 기레이나.(멋지다)"
은실의 몸을 정면에서 바로 본 미야자끼가 진짜 감탄을 하는 것 같았다.
"은시루 상은 살결도 희고 부드럽게 보이지만 몸매도 기가 막혀요. 그거 가린 손 좀 비켜 보아요."

미야자끼가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했다.
"안 되요."
"거, 밑에 손 좀 치워 봐요."
"거긴 절대 안 되요."
은실의 빨간 얼굴이 더욱 익었다.

"그곳은 신성한 곳입니다. 생명을 창조하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일본의 조상은 그곳을 숭배하여 신성하다는 뜻으로 불렀어요."
"신성하다는 뜻으로요?"
은실이 호기심이 생겨 물었다. 미야자끼의 학술적인 감정을 더욱 부추기고 싶었다.

"나는 도교 제국대학 국어(일어)학과를 나와서 잘 알아요. 만뇨슈(만엽집)라는 일본 고대사 책에서는 여자의 그것을 호토라고 불렀어요. 호토(富登)는 조선말로 부등이라고 읽어요. 일본 황후 중에 한 분은 이름을 호토라고 지은 일이 있어요. 어떤 학자들은 만뇨슈나 고지끼 같은 일본 고대 역사 기록이 조선말을 빌려다 쓴 것이라고도 해요. 나는 대학 시절 공부하면서 전혀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미야자끼는 아주 특이한 군인이었다. 기생을 발가벗겨 세워놓고 학술적인 역사 이야기를 하다니.

"어떤 근거가 있는데요?"
은실이도 조금은 호기심이 일었다. 벗은 몸이 아주 보이지 않게 주저앉아서 질문했다.
"호토는 조선말로 한자를 읽으면 '부등'이라고 한다지요. 부등은 조선의 고대언어인 여자 상징을 지칭하는 즉 오늘날 조선 사람이 쓰는 여자 거시기 말과 비슷하잖아요."
"ㅎㅎㅎ... 호토는 그 뒤 어떻게 변했어요?"

은실이 다시 질문을 했다. 미야자끼가 딴 욕심을 못 내게 생각을 돌려놓으려는 생각이었다.
"일본 사람은 여자의 상징을 '꼬'라고 한 글자로 표현해요. 동양 3국, 즉 일본, 조선, 중국에서는 일본의 '꼬'인 아들자(子)자를 각각 다르게 해석해요. 중국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하듯이 학문이나 도를 이룬 사람의 이름에 '자'를 붙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남자를 뜻하지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대로 여자를 뜻합니다. 여자 이름에 하루꼬, 하나꼬, 히데꼬 하는 식으로 여자 이름에 갖다 붙이지요."
"정말 그렇군요.

"그뿐 아니라 여자의 거시기도 '꼬'자가 붙어요. 여자 상징을 나타는 말은 3백 여 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 '꼬'자가 붙어요. 간꼬, 메꼬, 짠꼬 같은 것이지요. ㅋㅋㅋ."
은실은 목욕을 마친 미야자끼의 온몸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잠깐 사이에 남자의 나신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자끼는 유까다를 다시 걸치고 다다미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부부인데 따로 자야 하나?"
"그렇게 약속 하셨잖아요."

"자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몰라. 내 마음 나도 모른단 말이야."
"대일본제국 천황폐하의..."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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