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흉악해지는 ‘촉법소년 범죄’, 처벌 강화할 수 있을까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자 화장실에서 불법 촬영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 중학생의 처벌을 호소하는 청원이 올라와 ‘촉법소년’에 대한 공분이 일었던 바 있다. 최근까지도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촉법소년(만10세~14세 미만)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으로 처벌을 대신한다. 2017년 청와대 국민청원 도입 이후 ‘소년법 개정’ 관련 청원은 무려 2천여 건에 달한다. 촉법소년 연령대의 범죄가 늘고 소년 범죄로 보기 힘든 수법까지 등장하면서 형사 처벌을 할 수 있는 범죄자의 연령대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년법 개정’ 요구 국민청원 2천여 건 달해
-해외서도 엄격 처벌 논의…정부, ‘피해자 아픔’ 합의 필요

지난 12월 말 몰래 부모의 차를 몰고 100㎞가 넘는 눈길 고속도로를 운전한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형사 처벌이 불가능한 촉법소년이어서 인근 파출소에서 대기하다 부모에게 인계돼 논란이 일었다. 누리꾼들은 무면허로 위험천만한 새벽 눈길 주행을 한 이 소년에게 질타가 이어졌고 물론 현행 법제도에 대한 불신도 쏟아냈다.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현행법상 촉법소년(10세 이상 14세 미만)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으로 처벌을 대신한다.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단 인식 때문에 여론은 수시로 들끓는다. 국내외에서 촉법소년 범죄가 갈수록 흉악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말 중국은 고의 살인·상해 등 일부 범죄의 형사 처벌 연령을 기존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춘다고 결정했다. 

만 13세, 어린듯 어리지 않은 나이

만 13세를 학령으로 환산하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교 1학년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현행법에서는 형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나이다. 1953년부터 명시된 형법은 형사미성년자 나이를 만 14세 미만으로 규정해 이보다 어린 소년범들은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 또 소년법은 보호처분 대상을 10세부터 18세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즉 만 10~14세 미만의 촉법소년들은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도 소년법에 따라 봉사활동,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만 받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촉법소년의 범죄 건수가 늘어나고 수법도 지능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월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는 ‘장애인을 판다’는 글이 게시됐다. 이를 발견한 다른 이용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글쓴이는 ‘촉법소년이라서 콩밥 못 먹는다’고 맞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 해당 글을 게시한 사람은 만 14세 미만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2월에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초등학생을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 남자 중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학생은 형사상 처벌 대상이 아닌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이었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13살 딸아이가 화장실 도촬 피해자가 됐다”며 “이 사건은 명확한 성범죄다. 게다가 디지털 몰카 관련 범죄라는 점에서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다. 미성년이라는 미명하에 흐지부지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지만 법률적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촉법소년도 형사 처벌하자’는 의견이 잇따라 올라오는 실정이다. 

대검찰청 검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소년 사범에 대해 벌금형이 선고되는 약식재판 청구 건수는 2010년에 비해 2019년에는 42.1%가 감소했다. 검사가 피의자에 대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공판 청구 건수는 2019년 19.2%나 증가했다. 이는 죄질이 나쁜 소년 범죄가 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서울소년원 재원 보호소년 150명, 김천소년교도소 재소 소년수형자 82명을 대상으로 처벌 전력을 조사한 결과, 엄격한 처벌을 받은 경우일수록 재범빈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조정…정부 “사회적 공론화 더 필요”

교육부는 2020년 초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선을 기존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낮추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자 중대한 학교폭력 행위의 경우 초범이라도 구속 수사를 가능하도록 하는 등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대처를 강화한다는 점이 포함된 ‘제4차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기본계획(2020~2024)’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6월 초 ‘렌트카를 훔쳐 사망사고를 낸 청소년에 대한 엄중 처벌을 원한다’는 국민 청원은 한 달간 100만7040명의 국민 동의를 얻어 청와대가 입장을 밝혔다. 답변자로 나선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촉법소년에 대한 형사 처벌 부과 문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며 “범죄소년을 교육시켜 다시 사회로 복귀시켜야 하는 사회복지 및 교육적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정부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강 센터장은 “정부는 촉법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아픔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소년법 개정과 관련된 4차례의 공청회와 6차례의 국민청원 답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가 소년의 재범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라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美, 형사책임 연령 가장 낮아…유럽도 ‘엄벌화’ 논의 진행

한국형사정책연구원(KIC)의 ‘소년강력범죄에 대한 외국의 대응 동향 및 정책 시사점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공직선거법 연령 인하와 소년흉악사건으로 인해 소년법 적용연령 인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론이나 다른 법률과의 관계상 연령을 인하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소년강력범의 처우에 대한 점검과 소년범죄 통계 현황을 비추어 봤을 때 실익을 찾기 어렵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은 각주별로 형사책임 연령이 7세~10세 등 상이하긴 하나 전 세계 국가 중 연령이 비교적 낮은 국가에 속한다. 미국은 소년강력범에 대한 대응을 관할포기(waiver)제도를 활용해 신속하게 검찰과 법원 간 형태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소년강력범에 대하여 엄벌화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2017년 뉴욕주에서 형사처벌 연령을 오히려 상향하는 입법안이 통과되면서 오히려 엄벌화 경향에 제동을 걸고 있다. 

영국은 형사책임연령이 10세로 다른 EU국가에 비해 연령기준이 낮지만 10세~18세 미만의 범죄사건은 소년법원에서 약식재판으로 심리가 이루어지고 성인 사건과 동일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 독일은 소년사법 적용연령을 18세~21세 미만인 ‘청년층’까지 두고 있고 청년층에 대해서는 소년사법절차를 진행할지 성인사법절차를 진행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독일사회에서도 엄벌화 논의가 진행됐으나 이후 개정방향이 강력처벌보다는 주로 징계처분이나 경고 구금을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이는 형태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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