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저 변국보 사장입니다. 강 형사님 계십니까?”
변 사장이 이른 아침에 왜 전화를 했을까? 강 형사는 바짝 긴장을 했다.
“예, 제가 강 형사입니다. 변 사장님 말씀하세요.”
“예, 저, 빨리 이곳으로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네? 이곳 이라니오?”

“저희 회사 말입니다. 귀신이 사람 잡겠습니다.”
귀신이 사람을 잡는다니, 변 사장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강 형사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요? 차근차근히 해주십시오.”
“차근차근히 할 시간이 없어요. 하여튼 빨리 와주십시오.”
“아직까지는 별일이 없는 겁니까?”
“예, 아직은 괜찮으니 빨리 와주세요.”
“알았습니다.”
강 형사는 알았다면서 수화기를 놓기는 했어도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가 없었다. 마침 추 경감이 들어왔다.

“어이구, 이거 무슨 날씨가 그래 이 모양이야. 자칫하다간 땀에 빠져 죽겠는 걸 그래.”
추 경감은 눈가에 주름을 지으며 허허 웃었다.
“경감님, 지금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변 사장한테서 방금 전화가 왔는데 급히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 무슨 일이라는데......”

“모르겠습니다. 빨리 와달라고만 하더군요.”
강 형사는 느긋하기만 한 추 경감이 답답하게 보였다. 그런 이야기쯤이야 차에 타고서도 충분히 할 수가 있는데 미적미적 여기서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직은 별일이 없는 게로군.”
추 경감은 그러면서 담배까지 꺼냈다. 강 형사는 불쾌지수가 높은 탓도  있었겠지만 얄미운 생각도 들어 라이터를 꺼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추 경감은 또 지포라이터를 꺼내서 철컥거렸다.

“뭐, 귀신이 사람을 잡겠다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해댔지만......”
그 말에 추 경감은 라이터에서 손을 뗐다.
“뭐? 그게 정말이야?”

“예, 하지만......”
강 형사가 다시 설명을 하려는데 추 경감은 불도 붙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다시 물었다.
“어디로 와달라고 그랬지? 집인가?”
“아닙니다. 회사로 와달라고.....”

강 형사는 괜히 주눅이 들어 말을 더듬거렸다.
“회사라고? 뭐 회사라도 상관없어. 강 형사, 뭐하는 거야. 빨리 가보자구.”
추 경감은 가만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마치 자기가 강 형사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닥달을 했다.

무진회사로 가면서 강 형사는 갑자기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추 경감과 자신은 이 사건을 동일하게 바라보고 추적하고 있는데 추 경감은 뭔가 자신보다 더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강 형사는 또한 잠시 후에 배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추 경감이 분명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었다.
“경감님,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강 형사는 낮은 목소리로 추 경감을 불렀다.
“무슨 말인가?”
추 경감은 무심히 강형사를 돌아보았다.
“경감님은 분명 이번 사건에 대해 저보다 더 알고 계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가르쳐 주십시오. 저는......”

강 형사는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러나 추 경감은 강 형사의 심각한 얼굴을 보더니 오히려 빙긋이 웃었다.
“난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건에서도 자네보다 더 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

그 말에 강 형사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막연하던 배신감이 현실로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경감님은 항상 나보다 먼저 사건의 핵심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게야.”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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