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간호협회 “기존 인력 복귀가 우선돼야 하는 것이 옳다”
OECD 기준 턱없이 부족한 간호사, 증원 아닌 환경 조성 우선

대한간호협회. [박정우 기자]
대한간호협회.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간호법 제정이 무산되고, 정부는 열악한 간호현장 개선을 위해 정책을 발표했지만, 간호계 반응은 차갑다. 정부의 간호대 정원 증가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표현했다. 단순히 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닌, 간호인력 현장 이탈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가운데 의료기관마다 병상 증설에 나서 간호 업무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한간호협회는 또 다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며 제도적 보완을 외친다.

정부가 의대와 더불어 간호대 정원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간호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신규 간호사가 늘어난다고 해도 과중된 업무로 대부분에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가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5학년도 간호대 정원이 확대될 예정이다. 규모와 대학별 정원 배정방식은 연내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매년 확대되고 있었지만, 늘어나는 의료수요를 고려하면 지금보다 더 증원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아울러 매년 1000명씩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과 다르게, 간호대 정원은 2008년 이후 꾸준히 확대돼 왔다. 16년 사이 2배가 증가했다.

특히 2019년부터 매년 700명씩 늘려 현재 간호대 입학 정원은 무려 2만3183명이다. 더불어 특별전형, 입학 외 정원 등까지 더하면 매년 배출되는 신규 간호사는 약 3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 간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임상 간호사 수는 1000명당 4.94명으로 OECD 평균 8.0명(2020년 기준)에 비해 절반을 조금 웃돌고 있다. 때문에 지방 중소병원 등은 간호사 인력난을 겪고 있다.

OECD 기준 절반 웃도는 인력, 증원만이 답 아니라는 간협

간호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의 간호대 입학 정원 증가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실제 현장을 들여다 보면 간호대를 졸업하고 면허를 취득해도, 의료현장에서 떠나는 간호사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약 48만1000명이지만, 이중 73%만이 간호사로 재직 중이다. 특히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 간호사의 경우 비율이 훨씬 낮다. 증가율은 높지만, 그만큼 간호인력이 유지되지 못하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의 연평균 증가율은 OECD 평균보다 4배 이상 높다. 하지만 면허 간호사 대비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임상 간호사 비율은 52.8%로 OECD 최하위권 수준이다.

간호계는 ‘과중한 업무량’, ‘열악한 근무환경’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자료에 따르면 간호사 사직률은 2020년 기준 19.7%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사직자 중 절반에 가까운 45.2%는 간호사의 본래 업무 범위 이상으로 과도한 업무에 지쳐 사직을 택했다고 밝혔다.

상황은 국립대병원도 마찬가지, 과반수 입사 후 2년 이내 퇴사

지난 10월16일 국회 교육위원회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대병원들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전국 국립대병원 15곳에서 퇴사한 간호사는 총 4638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2년 이내 퇴사한 인원은 2736명으로 전체 퇴사자에 59.0%에 달한다. 심지어 1년 이내 퇴사한 인원은 1971명으로 42.5%다. 연도별로 2021년 기준 2년 이내 퇴사자는 57.7%였으며, 지난해는 60.5%, 올해 7월까지는 58.3%로 연말까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대병원 중 퇴사자가 가장 많은 곳은 충남대병원 세종분원으로 2년 이내 퇴사자 비율이 75.6%였다. 전북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2년 이내 퇴사율은 64.7%로 총 133명이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는 7월까지 61명이 퇴사했다.

서동용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역 간 갈등을 이유로 간호법을 거부하기만 했을 뿐 정작 의료현장의 간호인력 부족 문제로 기인한 과도한 업무경감을 위한 노력은 전혀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적정 간호인력에 재설정과 간호사 처우개선 등 의료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며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현장은 환자 수에 비해 의사도 턱없이 부족하고, 기피 진료과는 전공의가 없어 결국 간호사에게 업무가 밀려드는 실정이다.

대한간호협회 “무조건 간호인력 증원보다는, 기존 인력 복귀 먼저”

지난 8일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일요서울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간호현장은 여전히 열악하다”라고 상황을 밝혔다. “정부에서 지난 3월과 4월에도 발표를 했지만, 간호사 처우 관련해 종합대책들을 발표하더라도 현재 의료법상에서는 도움받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정부 대책들이) 그냥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게 간호법이다”라며 “간호법이 만들어져야 재원이 마련되고 실제로 간호사의 근로환경이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뒷받침이 된다. 그래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게 정부에서 노력은 해주지만 실제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실효성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관계자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간호사에 대한 지원정책 일환으로 간호인력취업교육센터 등의 설치 운영을 통해 재취업교육과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병원 현장에 다시 돌아와 일을 하는 40대 이상 간호사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 간호사 증가율은 전체 간호사 증가율보다 3.3배 이상 높았다. 2020년 말 전국 요양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21만6408명 가운데 40대 이상은 7만1662명으로 2년 전인 2018년 말보다 1만3194명(22.57%) 늘어났다. 이 중 39세 이하 간호사는 14만4746명(77.43)이었다.

관계자는 이를 두고 “무조건 간호인력을 증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장에 종사했던 간호사들부터 복귀시키려고 하는 정책이 우선인 것이다”라며 “이런 복귀 정책도 함께 추진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의료기관 활동 간호사 중 4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 이를 연령대별로 보면 40대 이상이 2018년 18.79%에서 2020년 19.86%로 1.07%p 높아졌고, 50대 이상은 9.53%에서 10.57%, 60대 이상은 2.16%에서 2.51%, 70대 이상은 0.12%에서 10.18%로 각각 상승했다.

의료기관 종별 간호사 노동강도 [대한간호협회]
의료기관 종별 간호사 노동강도 [대한간호협회]

무분별한 병상 증설로 간호사 근무환경 악화

간호인력 근무현장의 열악한 상황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 A종합병원 간호사는 “병원에 병상 수는 늘고 있지만, 신규로 간호사를 채용하지 않아 업무강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전남지역 B병원 간호사는 “간호사 업무 과다로 초과 근무가 일상이 됐다”라며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휴식 부족으로 언제까지 환자 곁을 지킬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의료기관들이 매년 병상 수를 크게 늘리면서 간호사 업무 강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또 신규로 채용되는 간호사 수가 증가하는 병상 수에 따라 적정하게 배치되지 못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간호협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간하는 ‘건강보험통계(2018년~2022년)’를 분석한 결과 요양기관 병상 수는 2018년 말 70만7349병상에서 2022년 말 72만4212병상으로 1만6863병상이 늘어났다.

특히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요양병원을 제외한) 병상 수는 35만6067개로 5년 전보다 3만8661개 병상이 늘었다. 이로 인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병상 수가 전체 병상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29%p 증가했다.

이렇게 병원들이 앞다퉈 병상을 늘리면서 상급종합병원 대비 종합병원과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노동강도는 2018년 말 1.73배와 5.66배에서 2022년 말 1.8배와 6.84배로 각각 높아졌다.

한편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8개로 OECE 국가 중 가장 많다. 아울러 평균 수치인 4.3개에 비해 약 3배 수준에 달한다. 열악한 환경에 더해 맡아야 할 병상 수도 많은 것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무분별하게 병상을 늘리는 것을 막고 간호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해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병원 설립요건을 강화하고 간호사를 간호필요도에 근거해 적정하게 배치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강제하는 법적, 제도적인 장치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간호사 배치수준은 환자의 사망률, 패혈증, 재입원, 재원기간, 중환자실 입원, 병원감염, 낙상, 욕창 등 여러 가지 환자의 건강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며 “만성적 간호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규 배출 인력만 늘릴 게 아니라 먼저 간호사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가는 이유를 제거하고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인력에 대한 근무환경 개선과 배치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 [박정우 기자]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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