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각지는 ‘경계령’, 우리 정부는 ‘마스크 착용’
임현택 회장 “아이들 병에 쓸 약이 없는 정부”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뉴시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발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도, 대만 등은 국가적으로 경계 태세를 높이며 철저한 대비에 나섰다. 우리 보건당국은 ‘마스크 착용 권고’ 수준에 머무른 가운데 병·의원 현장에는 치료약이 동났다. 이에 의료계의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약 수급 문제를 지적하지만, 보건당국은 민관협의체를 통해 상황을 확인 중이라는 입장. 이와 관련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1년 내내 보건당국에 요청했지만,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다”라며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에서 유행 중인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내성균이 유행할 뿐만 아닌 의료계가 관련 의약품 수급 문제를 지적하며 위험상황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6일 질병관리청 감염병 표본감시에 따르면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10월 4주차 126명에서 11월 4주차 270명으로 한 달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1~12세 소아청소년 환자가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급성호흡기감염증으로 환자의 기침, 콧물 등 호흡기 분비물의 비말 전파 또는 환자와의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2~3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 흉통,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2~6주까지 기침과 전신 쇠약이 지속될 수 있으며, 드물게 피부의 다형 홍반이나 관절염, 수막염, 뇌염 등 호흡기 외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은 코로나19와 같은 제4급 법정 감염병이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감염자 엑스레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제공]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감염자 엑스레이.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제공]

소아청소년과 의사들 "소아 진료 대란 온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 확산세를 두고 국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안일한 대처가 이어진다면 소아 진료 대란이 온다고 경고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소아청소년과는 낮은 수가, 열악한 처우 등의 문제로 사실상 폐과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 4일 대한아동병원협회는 “마이코플라즈마 소아 감염병에 대해 보건 당국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라며 “코로나19를 반면교사로 삼아 마이코플라즈마 유행을 대비한 정부 차원의 사전 대책 마련 등이 요구된다”라고 밝혔다.

협회는 “소아청소년 진료 현장 필수 인력이 부족한 데다 독감 환자 등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급증해, 만약 마이코플라즈마가 유행하게 되면 소아 진료 대란이 올 것”이라고 정부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진료 현장은 이런 우려로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질병관리청은 새로운 병원균이 아니고 국내서 치료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에 대응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마스크 착용 등 개인 방역 수준을 높이는 걸 권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픈런, 마감런으로 인한 환자 및 보호자의 고통과 코로나 때의 교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라며 “인도나 대만 등은 마이코플라즈마 자국 유입을 예방하기 위해 경계령까지 취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인데, 우리나라는 소아 필수 의료 부족으로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대서특필 되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 지금도 대기 시간이 3~4시간은 기본인데 마이코플라즈마 폐렴까지 유행하게 되면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통은 감당하기 힘든 상태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창궐 시 진료·항생제 대란? 보건복지부 “대비하겠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대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의약품 제조·유통협회 등 관련 단체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에서 소아 호흡기질환 의약품 중심으로 현장 수급 상황 등을 확인 중이다. 

특히 항생제와 해열진통제 등 소아청소년 의약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현장 수급 동향을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전국 의료기관에 제약사의 해당 의약품 공급 확대 계획과 대체가능 동일제형·제제 의약품을 안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확산 우려가 커지는 만큼, 질병관리청과 협조해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소아청소년 의악품 부족에 즉각 대응해 현장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소청과의사회 “약 수급 정부에 1년간 수없이 요청했지만, 해결 의지 없는 듯”

지난 6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취재진에게 “이 병에만 듣는 항생제가 있는데 수급이 거의 됐다, 안 됐다 한다”라며 “의사는 답답하게 이를 데가 없다. 전쟁하는데 무기 없이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임 회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 복지부와 식약처에 수없이 해결을 요청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났는데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라며 “개개인마다 증상이 다르겠지만, 중증으로 이어지면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약도 없는 걸로 봐서 보건당국이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싶다. 아이들 병을 치료에 쓸 약이 없다는 게 이해가 가는가”라며 “너무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이게 나라인가. 벌써 12월이다. 제가 연초에 1년 안으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된다고 누누이 얘기를 했다. 해가 지나도 움직이지 않으면 도대체 정부는 왜 필요하고, 국회는 왜 필요한가”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시민들도 많은 우려 속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의 동향을 지켜보는 가운데, 의료계는 여전히 초조하게 보건당국의 대안을 기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생명이 좌우된 일이 지체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온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